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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의 거짓말 -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하다
최경영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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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뉴스를 보지 않는다. 어느날부터 뉴스는 나를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들었다. 나날이 자극적이고 편파적으로 변해가는 뉴스는 세상살기가 점점 팍팍해졌다는 말로 나를, 혹은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듯 했다. 여기 늘 공영방송이라 자부하는 KBS의 현직기자가 매스를 잡았다. 그리고 대중들을 호도하는 언론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는다. 현직기자가 뉴스와 언론사, 동료들인 기자까지 싸잡아 비난하니 전혀 언론과 관계가 없는 나조차 얼굴이 달아올랐다. 한편으로 예전에는 뉴스를 보며 느낀 불쾌함의 원인을 명쾌하게 찾을 수 없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세상에 감춰진 진실, 우매한 대중을 발아래 두고 자신들의 이익챙기기에 급급한 언론에게 진실을 기대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자유민주주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오랫동안 주식투자의 노하우를 전하는 워렌 버핏의 잣대가 등장한다. 그의 생각과 신념에 대비시켜 한국언론의 잘못된 점을 요목조목 지목한다. 워렌 버핏이 성공하기까지의 길은 한국언론과 무척 대조적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그가 실천한 방법을 반대로 실행하고 있는 한국언론의 무지함과 잘못된 판단은 지금의 뉴스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국민의 신임을 점점 잃어가고 점점 개인화, 다원화되는 사회에 구시대적 발상으로 억지논점을 피력하는 뉴스에 우리는 지칠대로 지친 것이다. 설혹 저자의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 해명해도 의심밖에 남지 않은 나같은 사람에게 공중파의 뉴스란 그저 허상으로 비칠 뿐이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신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예측 능력의 부재가 아니라, 잘못된 전제와 왜곡된 통념입니다. 잘못된 전제에 근거한 예측을 언론이 지속적으로 증폭시키고 대중이 이를 믿게 되면 이른바 '자기실현적' 메커니즘이 작동됩니다. 결국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한 예측이 왜곡된 통념을 낳고 이 왜곡된 믿음이 잘못된 결정을 이끄는 것입니다.       -p.163


저자가 말하는대로 이제 소수의 기득권층 이익을 위해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조차 저버린 언론인에게 쏟아져나오는 방대한 기사는 그저 '소음'에 불과한 것이다. 이 책을 보며 배운 것은 바로 '의심'이었다. 이제 전문가의 의견을 마치 전체의 이야기인 것마냥, 혹은 진실인 것마냥 책임감없이 써내려간 기사를 그대로 믿기란 어려워졌다. 이 기사의 배후에는 어떤 음모가 있는 것인가 매번 의심하고 깊이 생각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워렌 버핏은 '언론인이 똑똑해지면 사회가 윤택해진다'고 했는데 우리 사회가 이렇게 살기 힘든 이유를 모두 언론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으나, 대중을 기만하고 불분명한 근거와 데이터로 진실을 왜곡한 댓가가 언젠가는 그들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우리의 의심과 뉴스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불편함이 그 반증이다. 


멍청하거나 사악한 언론인이 많을수록 대중은 점점 더 가난하고 불행해집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하는 짓을 스스로 멈출 거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그들은 대중이 계속 그렇게 우매한 상태로 남아있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게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이익입니다.    -p.193


 

그러나 저자는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하에 상업성으로 점철된 뉴스에도 분명 한계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뉴스와 언론도 하나의 사업이 되버린 마당에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만으로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목적에 위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론과 뉴스만은 100%객관은 어려울지언정 90%이상의 진실을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뉴스의 이면과 허황된 진실은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여겨졌기에 저자는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KBS의 프로를 볼 때마다 자막으로 나오는 '이 프로는 국민들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되었다'는 멘트가 어찌나 가식적이고 가증스러운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되었다. 그렇게 소중한 수신료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기에 과장된 거짓에 가볍고 자극적인 소재만 쫓게 되었는지 고민해보라 말하고 싶다.
 

한국 언론은 결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국 언론은 항상 '국민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한국 언론이 실제 '국민들'을 취재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들의 주요 취재원은 거의 언제나 소수의 기득권 집단이었습니다.   -p.184


워렌 버핏의 상식과 한국언론의 몰상식이라는 개별된 장으로 구분되는 이야기구조가 한국언론의 취약점을 잘 드러낸다. 몰상식이라 비하될 정도로 언론은 이미 개념을 상실했다고 저자는 구구절절 말한다. 특히 뉴스를 이용한 한국의 주식시장은 절대 개인투자자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주변에서 주식에 투자해 매일 살얼음판을 걷고, 행여나 오를까 내릴까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진실이 저만치서 손을 흔드는데 끝내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 무력함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실은 사장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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