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해 정의를 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특징들을 이야기 한다. 덧붙여서 자본주의, 시민,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개념이 어째서 서양에서만 존재하였는지 그리고 서구 부르주아 자본주의 기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본주의 발달과정에서 특히 서양 종교가 가지는 관계에 대해서 추적하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관계를 추적해 나가는데 저자는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경제적으로 발전된 지역이 특별히 종교개혁을 받아드릴 소지를 가졌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프로테스탄트의 종파적 특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즉, 이 책에서 저자가 연구하려 한 것은 근대 자본주의 발달 과정 속에서 종교적인 직업윤리가 수행하는 역할이다.
서문에서 이어지는 이러한 문제를 답하기 위해 저자는 ‘자본주의 정신’을 먼저 정의 내린다. 자본주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이라 보고 이를 인용한다. 시간과 신용은 금이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철학은 자신의 자본을 증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으며 노력하는 것이 개인의 의무라고 본다.
베버는 노동에 대한 정의에서 노동은 그 자체가 절대적인 목적이고 직업은 사명으로 실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노동, 직업에 대한 사명이라는 윤리는 당시 가톨릭교회의 도덕과는 대립되는 것이다.
칼뱅주의는 예정설에 따라 인간은 선택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누어진다. 이 예정설의 선택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함에 있어서 노동이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 가장 좋고 궁극적으로 유일한 수단으로 파악함으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만들어 내었다. 즉, 자신이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확신은 일상의 싸움을 통해 각자가 그 소명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싫증나지 않는 직업 노동이 요구되었고 노동을 통해서 종교적 의심이 해소되었다. 이러한 노동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부의 획득은 신의 축복이라 보았다. 베버에 따르면 이러한 사상으로 인해 칼뱅의 사상은 세속에서의 금욕주의로 흐른다고 한다. 이러한 금욕주의에서는 태만과 육욕을 배척하는 것 뿐 아니라 직업은 신의 영광을 위해 일하라는 신의 명령이 된다. 저자는 이러한 칼뱅파의 현세적인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은 재화획득을 전통주의적인 윤리의 장애에서 해방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익추구를 합법화시켰다고 본다. 이렇게 발생한 직업노동이 시민계급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심된 역할을 하는 자본가로서 만들게 하였다고 말한다.
* 막스 베버와 루이 알튀세르
베버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형성과 발전을 살펴볼 때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 특히 칼뱅파의 금욕주의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그는 칼뱅파의 예정설을 징후적인 독해를 통해 윤리로서 확립되는 금욕주의를 분석하고 주석에서는 사실적인 행태들과 반박에 재반박을 가하면서 그 근거들을 덧붙이고 있다. 저자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에서 종교와 자본주의와의 연관관계를 연구함으로서 알튀세르에 앞서서 상부구조가 토대에 미치는 영향을 증명하였다. 이러한 문제는 알튀세르가 이론으로 체계화 시켰다.
알튀세르와 베버 둘 다 토대/상부구조 공식에 따른 기계적 해석을 지양하였다. [프로테스탄티즘의 맨 마지막 문장 “~ 일방적인 ⌜유물론적⌟ 문화, 역사해석을 역시 일방적으로 전신주의적인 인과적 문화‧역사해석으로 대체시킬 의도 는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동일하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예비 작업으로 주장되지 않고 탐구의 결론으로 주장된다면 역사적 진리의 자격은 둘 다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맑스의 유물사관을 비판하는 동시에 자신의 연구가 인과적 해석으로 변질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알튀세르는 경제적 토대만으로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상부구조가 토대를 완성한다고 보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상부구조가 토대에 대해 규정성을 가지며 상부구조는 저마다 어떤 고유의 효율성을 가지며,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가진다고 본다. 예를 들어 노동자의 자녀가 부르주아적 의식을 가질 수도 있는데 이는 의식의 자율성을 보여주고, 이러한 의식을 갖는데 영향을 줄 수 있는 문화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튀세르는 중층결정이라는 개념으로 문화의 영향력- 특히 이데올로기-을 지적하고 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경제’라는 단일한 요소로 역사의 변혁이 결정 되지 않으며 여러 가지 요인이 결정한다고 보면서 정치, 종교가 최종심급의 역할을 했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알튀세르의 이론과 비슷하게도 엥겔스가 요셉 블로흐에게 보낸 서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유물론적 역사관에 따르면 역사를 궁극적으로 결정짓는 요소는 실생활에서의 생산과 재생산이다. 마르크스도 나도 이 이상 주장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 이 말을 경제적 요인만이 유일하게 결정적인 것이라고 바꿔 말한다면, 그는 이 명제를 무의미하고 추상적이며 엉뚱하게 변조시킨 것이다. 경제적 상황은 기반일 뿐이며, 상부구조의다양한 구성요소들 역시 역사적 투쟁의 과정에 영향을 주거니와 때로는 그 형태를 결정짓기도 한다...우리는 스스로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지만, 무엇보다도 매우 한정적인전제들과 상황 하에서만 그러하다. 이들 중 경제적인 것이 궁극적으로는 결정적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것 등등, 그리고 심지어 인간들의 마음에 남아있는 전통들도,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역시 한 역할을 담당한다. - 엥겔스
이 편지의 글을 보면 경제적인 요인이 최종심급이 되고 상부구조가 경제적 생산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견해의 시작이 베버와 알튀세르에게 와서 시작 된 것이 아니라 이미 맑스와 엥겔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결정론의 비판에 있어서 베버는 그 시작을 열었다고 보이며 특히 종교라는 한 가지의 상부구조가 가지는 경제적 토대에 대한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알튀세르의 경우 이데올로기가 토대와 최종심급에 주는 영향력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베버는 알튀세르주의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