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선생님이 29세, 1972년에 쓰신 작품이다. (내가 이 해에 태어났다) 두말 필요없는, 타고 난 글천재시다. 이 작품은 양희경 쌤 연극 약력 첫번째에 나오기 때문에 재출간 하자마자 손에 넣어 읽었다. 사실 나는 황석영 쌤 작품을 <오래된 정원>부터 봤다. 옥고를 치르시고 나오신 후, 방북하고 온 반항아 빨갱이(!) 작가님으로 만난거다.ㅎㅎ 평양출신 산부인과 의사인 ‘한‘영덕은 그저 올바르고 고지식한 사람일 뿐이었다. 평범한 그가 남북분단 역사의 파도 속에 휩쓸려 불행한 인생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줄거리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되지만, 그 시절에는 대단한 문제작이었을 듯 싶다. 양쌤은 어떤 역이셨을까? 동생 한영숙 아니었을까? 희곡은 과연 어떻게 각색되었을까? 그땐 무대위까지 관객을 앉힐 정도로 흥행이었다는데, 연극무대가 지금보다 훨씬 사회적 의미가 깊을 때였던 것 같다. 양선생님 파릇하시던 그 때의 무대를 상상하며, 영화보듯 훅 내처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글들은 작가들이 30대 즈음에 쓴 글이 많다.스스로 연륜과 통찰이 어느 정도 있다고 믿게 되며 열정과 치기마저 가득한 시기. 가장 팔팔하게 살면서도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무엇에든 저돌적이 될 수 있는 시기. 여문 듯 여물지 않은 글 속에 자기를 아낌없이 드러낼 수 있는 순수함이 있는 시기. 자신의 다짐과 바램을 이룰 수 있는 인생이, 무한히 이어질거라 믿는 시기. 잘난척마저 물컹한 살 속의 오돌뼈같이 매력이 되는 시기. 그런 글이 나는 좋다. 30대의 정신으로 살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