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구판절판


나는 어렸을 적부터, 대상이 사람이든 이데올로기든 조직이든, 더 헌신하는 사람이 느끼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열정이 지나간 뒤의 황폐함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왜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열정적인 사람이 상처받는지에 대해 분개했다. 이것이 그 어떤 이념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인생의 근원적인 불합리이고, 부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랑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크기, 깊이를 깨닫는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든 대화는 최음제이며, 인생에서 깨달음만 한 오르가슴은 없다. 상처는 그 쾌락과 배움에 대해 지불하는 당연한 대가이다. 사랑보다 더 진한 배움을 주는 것이 삶에 또 있을까... 사랑받는 사람은 배우지 않기 때문에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 사랑하는 것은 자기확신, 자기 희열이며, 사랑을 갖고자 하는 권력 의지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 이후에 겪는 고통은 사랑할 때 행복의 일부인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쿨 앤 드라이', 건조하고 차가운 장소에서는 유기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마음이 사유의 기본 조건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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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annerist > 20050910_백건우 베토벤 소나타 공연후기

 아마 올 하반기 서양고전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의 최대 화제 중 하나는 백건우 선생님이 DECCA레이블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프로젝트를 시작했는 걸거다. 한 작곡가에 깊이 몰두하는 백건우 선생님은 라벨의 피아노곡 전곡,, 프로코피에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을 하면서 그때마다 좋은 평 - 이 말로 백건우 선생님의 행적을 수식하는 건 사실 실례다 - 을 받아왔기에 그만큼 기대도 되고. 모든 피아니스트들의 꿈 중 하나 아닐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그것도 메이져 음반사에서 낸다는 건.

여튼간에. 그 프로젝트의 첫빠따로 나온 이 음반, 백건우 선생님의 베토벤 중기 피아노 소나타 음반에 대해 들려오는 평이 하나같인 찬사 일색이다. 특히나, 매너가 좋아하는 23번은 리히테르의 그림자가 겹쳐보인다는 말에는 귀 쫑긋해질수밖에 없었으니. 작년 모처에서 '열정' 을 기가 막히게 두들겨대셨다는 말에 반신반의하기도 했지만 그건 핏줄 비슷한 사람끼리 해주는 덕담에 가깝겠지 어림짐작했었다.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거라. 마침 부산에서 백건우 선생님의 연주 스케줄이 잡혀있기에 별 망설임 없이 예매. 3만원짜리 A석은 다 동나고 5만원짜리 S석이 있다. "음악을 듣는데 있어 눈은 방해가 될 뿐이다"라는 리히테르의 말이 기억나 역부러 피아니스트의 손모양새가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소리는 명확히 퍼져나올 왼쪽 앞자리.

여튼간에 자리잡고 두근두근. 공연시간을 기다린다. 개 우라질리스틱 코리안 타임은 여지없이 적용되고. 다섯시 다 되었는데도 1/3이 비어있다. 매너가 예매했을때 90%정도가 매진이였는데. 종 치고도 느릿느릿 꾸역꾸역 밀려드는 포유류들은 대체 뭐냐고.

좌우간 드디어 시작. 무대 저편에서 백건우 선생님 걸어나오시자 밀려드는 박수소리. 응? 근데 걸어나오시다 만다. 무대 조명이 너무 밖아서인지 천정을 가리키고 뭐라뭐라 말씀하시는 백건우 선생님. 잠시 후, 거의 피아노 건반이 보일락말락한만큼 어둑어둑하게 조명을 줄이고 나서야 다시 걸어나오신다. 그 헤프닝에 잠시 웃음.

그때 매너 머리를 스치는 리히테르의 말. "음악을 듣는데 있어 눈은 방해가 될 뿐이다"

역시나. 그렇다는데. 그럼 거기에 응해주는게 음악 듣는 이의 자세겠지. 빙긋 웃으며 매너는 안경을 벗어버리고 눈 감아버린다. 피아노 치는 대가의 모습을 눈에 못 담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쓸떼없는 감각 끊어버리는 게 음악에 집중하긴 더 좋겠지. 하는 순간. "비창"의 첫 화음이 울린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첫 화음을 어떻게 짚는지 들으면 대강 분위기 파악이 되는 곡이다. 쿵- 이 아니라 궁- 이다. 기대했던 것 만큼 육중하게 짚지 않는다. 비통한 느낌을 과장하지 않고 덤덤하게 하나하나 소화하는 느낌. 좋게 말하면 이렇게 나쁘게 말하면 조금 밋밋했던듯. 손에 힘을 빼고 사뿐사뿐 건반을 짚어나가는 느낌이었다. 소리없이 숨죽여 슬픔을 삼키는 모습을 묘사해내고 싶으셨던걸까. 좀 힘있게 몰아쳐야 할 부분에서 끝까지 밀지 않고 그 앞에서 한 발자욱 물러서는 느낌 때문에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더라. 아니면, 매너가 너무 러시안 피아니스트들의 '비창'에 익숙한 탓인가? 근데 "비창"이란 제목 자체가 그렇듯이 - 더구나나 베토벤이 직접 인 제목 아닌가 - 밀 때 확실히 미는 게 정답. 이라고, 에밀 길렐스의 스튜디오 녹음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여튼간 조금 아쉬운 연주. 실연에서만 들을 수 있는, '비창' 멜로디, 그 극적 대조를 누린 게 어디냐 싶긴 하지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번.

멜로디가 상쾌한 느낌이 들어 8번과 함께 초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중 매너가 좋아하는 곡. 여기서부터 백건우 선생님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확실한 극적 대비와 '이때다'싶을 때 끝까지 밀어내는 느낌이 정확히 들기 시작했다. 피아니시모와 포르티시모 사이의 무한하다싶은 대비와 간격에 넋을 잃으면서도, 무겁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더라. 상쾌하고 화려한 느낌의 주 선율을 잘 살렸던게 기억에 남는다. 듣는 내내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연주. 드디어 웃으며 박수를 치는 매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6번.

매너도 잘 안 들어본 곡이라... 그냥 눈 감고 듣다가 잠시 졸아버리다. -_-;;;;;;;;;;; 
그래도 그 기분좋고 행복한 느낌이란...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드. 디. 어. "열정"이다. 가슴 두근두근. 드디어 도입부. 따~ 라라~  헉- 했다. 건반을 아주 여리게 짚어나가신다. 어느 정도의 드라마를 만들어 내시려고 하시나... 하는데. 순간 귀를 의심했다. 격렬한 화음을 왼손 오른손 할 것 없이, 묵직하게 그것도 거의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쌓아간다. 템포나 분위기는 제르킨에 가까운데 묵직하게 건반 짚어나가는 느낌은 정말 리히테르나 길렐스에 닮아 있다. 듣기 부담스러울 정도의 박력을 유지하면서도 전체 멜로디 구성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편안하다. 그리고 한 소절 한 소절, 한 음 한 음 살아 꿈틀대는 느낌이라니...

어느새 1악장 마지막. '폭발'이라는 말 이외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무시무시한 속도와 박력으로 몰아친 다음 다시 한없이 여린 목소리로 멀어지더라.

그리고 주제와 변주를 주고 받는 2악장. 여리게 시작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점점 빨리지면서 '열정'의 불꽃을, 그 불씨를 보이지 않게 이어나간다. 이제껏 들어본 2악장 중 가장 빠른 템포였지만 조급하다기보다는 3악장에 폭발에 대비해서 도화선까지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옮겨가는 느낌. 딱 리히테르의 프라하 실황 2악장의 감성. 그리고 드디어 도화선에 불이 옮겨붙었다.

!

페달을 깊게 밟지 않고 다소 드라이하게 같은 화음을 두드리면서 시작. 이거 정말 리히테르 프라하 실황 분위기잖아. 하는데. 정말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와 미친듯한 열기가 불어닥친다. 이제껏 들었던 그 어떤 "열정"보다 빠르고 격렬하다. 정말 '제대로'미쳐 돌아간다. 시간이 흘러가는게 아깝기 그지없지만 그걸 인식조차 못할 정도로 멍- 하니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드디어 코다. 무슨 말을 붙이는데 군더더기다. 그런 묵직함과 속도가 가능하다니... 이건 번스타인의 차이콥스키 4번을 이야기할때 매너가 쓴 표현이지만, 석유 드럼통에 불붙인 다이너마이트 던져넣은 모양새라는 말 밖엔... 아... 그리고 끝.

코리안 타임에 연주중에도 움직이는 매너 없는 사람들 많았지만, 음악 콩나물 대가리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그 분위기만은 감지했는지, 사람들 모두 폭발한다. 미친듯한 환호성과 기립박수. 매너도 홀린듯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쳐 댔으니. 매너 좋으신 백건우 선생님, 커튼 콜 몇 번을 받으시고 아주 낭만적이고 아련한 앵콜곡 한 곡까지 선물해 주시다.

역시나. 나오니깐 사람들 구름같이 모여서 사인 받으려 줄 서있고, 백건우 선생님 CD판매대에서는 미친 듯이 사람들이 CD를 사고 있다. 그거 자제하느라 혼났다. 사인을 받을까 하다가 에이 뭐... 이정도 선물도 감지덕지지. 하고 한 발자욱 물러서다. 예전 풍월당에서 프로코피에프 협주곡 CD에 받은걸로도 충분한걸. 더 욕심 부리면 아니되지...



역시나... 그 힘든 연주 하시고도 우리의 백건우 선생님, 한시간동안 팬들과 사진 찍어주시고 같이 웃어주시며 마지막 팬까지 사인 다 해 주셨단다... 아...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앞으로도 많은 연주자들의 많은 곡 많이 음반 남겨주시길... ^_^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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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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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밀 할아버지, 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

"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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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중요한 구절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은걸까....(실은 아직도 아리송~)

할아버지는 사랑없이 살수 있다! 라고 대답한것 같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셨다는 말이 그말을 부정하신건지..... 

나의 이 오독을 바로잡아 주실분 안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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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때 보다 읽고 나서의 느낌이 강한책이다.

뭐 이런 놈이 다있어? 그러면서 보다가..... 마지막엔.... 이런 놈이구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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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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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읽고 별로 감동이 없어서...
너무 짜임새 있고, 중의어를 멋지게 잘 이용했고, 묘사 탁월하고..
소설로서는 멋진데, 맘에 잘 와 닿지를 않았다.
내가 느낌이 약한가보다 했는데...

작가가 어떤 잡지에서 한 이말이 갑자기 내 뇌리를 쾅! 치고 말았다.

".....늙고 병든 몸이 가진 슬픔과 이와 대조적으로 살아 있는 것의 어쩔 수 없는 아름다움을 그냥 그리고 싶었던 거지요. 그리고 그 주인공 새끼.(여기서 깜짝 놀램) 아주 질 나쁜 놈이지만 그 젊고 생명이 넘치는 여직원에 대한 아스라한 사랑은 진짜거든요. 사람 안에 그런 게 함께 있으니까 괴로운 거지요."

사람 안에 있는 그 이중성!... 진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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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생각하는 너부리 > 결혼에 대한 따뜻한 시선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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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우리의 삶에 있어 중대한 일(인륜지대사)에 속하며,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만큼 결혼에 대해서는 누구든 하고픈 말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결혼에 대한 책들도 많이 있는데 그것들은 대강 다음의 세 가지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1. 결혼을 전투로 바라보는 책(결혼은 현실이다),

2. 결혼을 달콤한 환상으로 생각하게 하는  책(결혼은 둘이 하나되는 것이다),

3. 결혼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책(결혼은 해도, 안해도 후회다).

이런 책들을 읽고 나면 결혼한 내 입장에서는 혼자서 잠자는게 두려워진 내가 너무 의존적인건 아닌가 반성하거나 늘 티격태격하는 내 결혼생활은 뭔가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의심하거나 아직 결혼하지 않고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역시 대강 세 가지 반응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나면 결혼생활이란게 말처럼 간단하게 독립적이고 동등한 두 사람의 관계라거나 하나보다는 행복한 생활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성인이 만나 같은 공간, 경험을 공유하며 생활해나가는 것이니 만큼 꽤 복잡한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에쿠니 가오리는 결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단정짓기 보다는 그저 나와 다른 한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며 그와의 관계에서 현재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리는 편안하고 따뜻한 인간관계로 그려내고 있다. 예를 들어,  작가이기 때문에 따로없던 주말이란 개념을 회사원인 남편을 통해 갖게 되고, 주말이란 시간을 즐기게 되며, 여행을 가겠다는 말에 어디로 가냐든지 언제 가냐와 같은 질문대신 대뜸 밥은? 이라는 말을 하는 남편을 미워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포도의 씨까지 빼줘야 포도를 먹는 남편에게 그럼 먹지마 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해주고 함께 기쁨을 나눈다. 다른 배경의 두 사람이 만난 이상 그 사람도 나도 잘못하는 부분이 있고 원망스러운 부분이 있는건 당연하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상대의 잘못에 화내고 내가 손해본다는 생각보다는 상대방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여유있는 결혼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결혼에 대해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시선이 신선했다. 결혼이란게 어려운 이유가 한 번 하면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의 탓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녀는 미래를 바라보기 보다는 현재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가질 수 있는 행복에만 집중함으로서 서로를 얽매지 않는 편안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결혼생활에서 이래야 한다는 룰 같은건 없는 거 같다. 그저 함께 있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누리고, 서로를 편안하게 해주면 그걸로 최선이 아닌가 싶다.  물론 결혼 생활의 최대 난점인 아이 문제가 이 책에는 등장하지 않아 아이를 가진 부부는 너무 안이한 글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꼭 아이문제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결혼을 두 사람의 인간관계로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인거 같다. 더불어 남편에 대해 쓴 글들이 참 재미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 결혼에 관심없는 사람, 결혼한 사람 모두 재미있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읽으면서 일본의 3대 여작가에 속하는 사람의 결혼생활도 별 수 없군, 피식 웃게 되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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