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kimji > 슬픔을 재우기 위해

  유채꽃이 만발하다는 소식이 뜻 모를 제주행의 설렘을 만들어주었다. 나의 제주행이라는 것은 기실 들뜸이나, 기쁨, 혹은 관광이 될 수 없는 의미들로 가득 차 있었고, 또한 여행보다는 떠남,이라는 의미에 조금 더 치중하고 싶던 나의 의도된 마음이 무색하도록 자꾸 유채꽃의 눈부신 노란빛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쩌면 나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뤄지지 않을 부질없는 욕망이라는 것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내 자신이 갖는 감정 치고는 희망,이라는 단어는 너무 사치스럽다는 것마저도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짐을 꾸리면서 나는 이 책을 무심한 척, 그러나 [자거라, 네 슬픔아]라는 제목을 마음에 품으며 골랐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낯선 섬에서 슬픔 따위는 명료한 제목처럼 집어던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문예지 [현대문학]의 표지 사진을 담당하고 있던 구본창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였고,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사진정도는 슬쩍 넘겨보았으므로 그 사진이 주는 여운은 익히 알고 있었다. 책의 구성은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작가가 그리고 있을 내용에 대한 기대는 사실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저 제목이 주는 이미지만 부여잡고 이 책을 골랐으니까. 책은 그렇다. 구본창이 찍은 사진, 그리고 그 사진의 연상에 따른 작가의 사변적인 이야기들. 그러나 그 사변적인 이야기 속에는 소설적 구도에 따라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담한 작가의 개인적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찌보면 그런 개인적 단상들조차도 작가가 익히 우리에게 소설을 통해 다소 고집스럽게 보여주던 -세상에 대한 여린 시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에 대한 강한 경외감, 삶에 대한 진지성과 연민을 표현한 애잔한 필체- 이미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떠난 이가 산 중턱의 낯선 방에 오롯이 앉아 읽기에 적절할 만큼 고즈넉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작가가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유독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연치고는 너무 우연적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제주에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제주에 관한 글만 더욱 강하게 기억하고 싶은 지도 모를 일이다. 독자의 개인적 체험과 맞물려 책에 대한 객관적 언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이 책에 대한 단상을 기억하고 싶었다. 제목에 걸었던 기대처럼 내가 슬픔을 버리게 만들지도 않았고, 또한 어렴풋이 가졌던 봄과 희망에 대한 이미지들이 모두 나의 부질없는 헛된 욕망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일이라든지 제주라는 특수한 공간의 우연과는 별개의 문제로 말이다.

  남편을 잃은 친구와 함께 떠난 길에서 찍은 플라로이드 사진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항구에서 만난 낯선 여자와의 하룻밤 인연이라든지, 혼자 밥을 먹는 자신에게 식당 아주머니가 건넨 삶의 애착에 대한 격려, 기찻길과 죽음에 대한 기억, 고향과 가족애, 그리고 인간관계의 틀을 만들어주는 삶의 근간에 대한 진지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거짓말처럼 잊어버리는 작가의 비일상적인 일상에 대한 기록들이 나에게는 강한 이미지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재에 대한 애달픈 몸부림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소멸을 다시 재생으로 의미부여 하고 싶은 인간의 나약함이 보였다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슬픔을 잊는 대신 잔인하게 내 안의 슬픔을 꾸역꾸역 꺼내 보이게 했던 글이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작가가 제주에서 만난 어느 처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내 슬픔의 뿌리를 만났던 것이다. 바다 한 복판에서 목 놓아 우는 처녀, 그리고 왜 울었는지 묻지 말라고 말하던 그 처녀의 이미지가 모질게 나를 후벼 팠던 것이다. 자거라, 네 슬픔아. 부디 자거라, 그리고 다시 깨어나지 말아라. 그 제목을 나도 목 놓아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아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는지 모른다.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고 회복되지 않는 아픔은 없다는 것을. 그것이 무뎌지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며, 결국 변질되었을 뿐인 상처와 아픔이 왜곡된 기억으로 남아 소멸된 것처럼 여겨질 뿐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 상처는 아물고 아픔은 회복된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시간은 어느 누구도 가늠할 수 없지만 결국은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뼈가 으스러지도록 고통스러운 일이, 그래서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도 인생이라는 길고 너른 과정에서 보면 아주 작은 티끌일 뿐이라는 것을. 그 티끌이 될 찰라의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로 기억하게 만드는 이 책은 그래서 의미로운 작업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찰라의 복판에 이 책을 읽은 독자인 나로서도 충분히 의미로웠던 것이다.


  구본창의 사진은 군더더기가 없다. 냉소적이지 않으나 뜨겁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담백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한 장의 사진은 그 사진을 보는 이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아프고 그러므로 슬프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다. 사진 한 장이 주는 아름다움은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신경숙은 그 마음의 움직임을 잘 묘사한다. 그것은 슬픔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재우는 일이라는 것, 아니 인간이기 때문에 잠재울 수밖에 없는 슬픈 슬픔을 사진과 글로 보여주는 책이다.


  
 

 

 

  제주는 유채꽃이 만발했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리고 내가 돌아오던 날에는 안개가 짙었으며 비가 많이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쉽게 돌아왔다. 이제 돌아왔으므로 더 큰 슬픔 속에서 슬픔을 잠재우기 위해서 무던히 애써야 할 것이다. 문득 책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누군가 인간의 여행이 계속되는 것은 언젠가는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돌아왔으므로 살아야 하겠다. 그것이 부재기억을 부여잡고 사는 인간의 숙명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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