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끼.a.들.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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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 소원이 뭐였는 줄 아니?"

"언제까지나 너를 지켜줄 사람을 갖는 것."

"...어떻게 알았어?"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어렸을 때 나는 사랑하는 것은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아주 깊은 속에 있는 아주 내밀한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서로에게 옮겨주듯 말해주는 것, 비밀을 나눠 갖는 것이라고.

다른 사람은 못 알아듣는 이야기를 그는 알아듣는 것이 사랑이라고.


좀 더 자라 나를 지켜줄 사람을 갖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원히 나를 지켜줄 사람을 갖는다는 것은

약한 나의 존재들을 얼마나 안정시켜 줄 것인가.

새벽에 혼자 깨어날 때, 길을 걸을 때, 문득 코가 찡할 때,

밤바람처럼 밀려와 나를 지켜주는 얼굴.

만날 수 없어 비록 그를 향해 혼잣말을 해야 한다해도

초생달같이 그려지는 얼굴.

그러나 일방적인 이 마음은 상처였다.

내가 지켜주고 싶은 그는 나를 지켜줄 생각이 없었으므로.


좀 더 자라 누구나 다 자신을 지켜줄 사람을 갖고 싶은 꿈을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랑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거기다 우리가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사랑은 영원해도 대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아야 했을 때,

사랑이란 것이 하찮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영원을 향한 시선과 몸짓들이 어느 날 꿈에서 깨어난 듯이 사라져버리다니,

멀어져버리다니..


사랑은 점점 그리움이 되어갔다.

다가갈 수 없는 것, 금지된 것. 이제는 지나가 버린 것,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향해 그리움은 솟아나는 법이다.

사랑을 오래 그리워 하다보니 세상일의 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성과 소멸이 따로 따로가 아님을....

아름다움과 추함이 같은 자리에 있음을....

해와 달이, 바깥과 안이, 산과 바다가, 행복과 불행이.


그리움과 친해지다 보니 이제 그리움이 사랑 같다.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사라지고 멀어져버리는데도 사람들은 사랑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은 건 사랑의 잘못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의 위력이다.

시간의 위력 앞에 휘둘리면서도 사람들은 끈질기게

우리들의 내부에 사랑이 숨어살고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아이였을 적이나 사춘기였을 때나 장년이었을 때나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을 관통해 지나간 이름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신경숙 . 아름다운 그늘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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