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화씨님께서 2003-09-17일에 작성하신 "2003, 9. 5. 금요일-연일 맑다, 송별 족구, 능길 소식지 발송, 그리고 개운치 않은 귀향"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어제의 풀베기 작업 때문인지 아침이 개운하질 않다. 사무실에 나가서 어제 하지 못한 일을 정리하고 있자니 전성호 씨가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들어 왔다. 그간 동네 어른들과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교 일만 해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는 성호 씨의 얼굴에는 아쉬움 반, 후련함 반이 묻어 나오는 듯 하다. 그동안 이장 사람들을 기다린 이유 중에 하나가 족구 팀을 이루어 신나게 족구를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고, 떠나기 전에 족구 게임이나 한번 하자는 제안을 했다.

하던 일을 접고 여러 명이 마당으로 나왔다. 용재 씨와 흥민 씨, 민종 씨가 한편을 이루고 성호 씨와 재철 씨, 그리고 내가 한 편을 이루었다. 별다른 내기를 건 것은 아니지만 시합을 하기로 했다. 해는 마침 구름에 살짝 가리고 바람이 솔솔 불어와 운동을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다. 3세트를 목표로 게임을 시작했다. 결과는 2:1로 우리가 이겼다. 아무 기약도 없는 게임이지만 성호 씨를 위해 잠시 운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다. 족구를 치고 성호 씨는 용재 씨와 함께 서울로 떠났다. 다시 만날 기약은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드는 이별이었다.

점심을 일찍 먹고 다들 집으로 가자는 계획을 세워서인지 점심을 먹으라는 지혜 씨의 전갈이 이르다. 스팸과 소시지에 신 김치를 넣어서 끓인 찌개가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이렇게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하며 자생적인 개체가 되어 가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찌개 맛에 본인들도 놀란 듯...식사를 마치고 현실적인 최대의 비용인 2만원씩을 차비로 나누었다. 이 일을 영원히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짐을 꾸리고 널었던 빨래를 걷어 방에 갈무리 할 즈음 능길 소식지를 발송해야 한다는 기남 씨의 변이 있었다. 성호 씨 대신 능길의 사무장을 이어 받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싶은 모양이다. 귀향이 다소 늦어지긴 해도 마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450부 남짓한 소식지를 발송하는 일은 전에 하던 발송 일에 비하면 너무나 간단한 일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발송을 마치고 우체국에 간 사람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시간이 되면 일을 도와 달라는 미아 씨의 전갈이 있었다. 얼마 동안의 일인지, 무슨 일인지 감이 오질 않아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일단 하겠다고 했다.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출발 할 것이고 우리도 같이 떠나야 할 테지만 그 시간 까지 만이라도 일을 하자고 마음먹은 기석 씨와 내가 공장으로 들어갔다. 준기 씨가 쏟아지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일을 시키는 방법이나 조력을 청하는 방법이 좀더 세련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건, 일방적인 명령이거나 계획 없이 진행하는 것은 그 실무를 하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거나 불쾌하게 한다. 마님이 마당쇠를 부리듯 일방적으로 언제든 사람을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같이 사는 미덕을 해치는 첫 번째 요건이다. 부지런히 박스를 조립하고 내용물을 채워 나갔다. 열 박스도 채우기 전에 일행이 도착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마음이 급해져 손을 바삐 움직이다보니 짧은 시간인데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별로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가 그만 가야하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똥 싸고 뒤처리 하지 않은 것처럼 찜찜했지만 손을 털고 일어났다.

추석 연휴를 지나고는 가급적 생활을 분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며 우리는 서울로 향했다. 덕유산 톨게이트를 벗어 난지 얼마 안돼서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올 가을은 해도 너무 한다, 휴게소에서 잠시 간식을 한 일행은 다시 서울로 향했다. 민종 씨와 지혜 씨를 중간 지점에서 내려주고 기남 씨와 나는 춘천으로 향했다.

오늘은 마침 아내와 은주 씨의 생일이 겹치는 날이다. 모른 체 넘어가기에는 너무 염치없는지라 세 가족이 모여 삼겹살이라고 구워 먹기로 했다. 차를 세우고 만난 용재 씨와 함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세 집 안식구들이 다 모여 있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는 듯 반기는 아내들에게 별로 할 말이 없다. 너무 먹먹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고 납득시킬지... 그저 침묵하고 있을 수만도 없고...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 온 사람들 같지?” 괜한 너스레로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해 본다.

마음이 곤해서인지 음식도 술도 별로 맛이 없다. 곤한 몸을 핑계로 일찍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다들 뜨거운 밤을 보내시길... 나는? 그냥 잘란다. 너무 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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