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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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A long way down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는 확실히 별로인 제목이다.

하지만 정말 악 소리가 나는 표지 디자이너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문학사상사에서 웬일로 마음 먹고 '세련된' 디자인을 보인 점은 놀랍다.

 

나로서는 닉 혼비를 뒤늦게 알았다.

알라딘의 몇몇 열혈 리뷰어들의 글을 읽고

<진짜 좋은 게 뭐지>(정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제목과 표지에도 불구하고)를 읽고

멋져멋져를 연발한 게 작년 여름쯤이었으니까.

닉 혼비의 전작주의자가 되는 길을 거꾸로 밟고 있는 셈이다.

 

12월 31일, 한 고층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 반상회'를 갖게 된 네 사람의 이야기.

나이, 국적, 직업, 성격, 남들은 흥청망청 새해맞이 파티를 즐기고 있는 순간에

몸을 던지려고 옥상에 올라온 이유 등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이다.

런던 피카딜리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스쳤을 수는 있지만

자기 의지로는 그다지 만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어찌어찌하여 같은 목적으로 모인 이들은 당연히(주인공이니까) 투신하지 않고

어찌어찌한 이유로 자살을 발렌타인데이까지(세밑만큼 불행한 날이니 자살하기에는 '적당한')

그리고 다시 석 달 뒤로 연기하면서

함께 소풍도 가고 파티도 하고 티타임도 가지며

(재미없게 표현하자면) 삶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새긴다.

덧붙이자면 이들은 서로를 아끼거나 격려하거나 따뜻하게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 땜에 내가 못 죽어, 하는 식으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끊임없이 사건사고를 일으킨다. 표나지 않게 서로에게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물론 이 이야기는 3월 31일까지만 다루고 있으므로

그 이후, 6개월쯤 후 바캉스 기간에

그들이 다시 모여 '자살파티'를 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생일쯤인 4월에 자살에 '성공'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움직이고 있지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누구도 아닌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이겠지.

 

신랄하고 때로는 잔혹한, 수다스럽지만 시끄럽지 않은

네 사람의 이야기가 교대로 쉴 새없이 이어진다.

스타벅스 지하에서 네 사람이 모여 생뚱맞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몸서리치는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조니 뎁이 영화 판권을 샀다니, 얼른 개봉하기를 기대.

 

 

누구네 집 파출부처럼 생긴 중년 부인과 소리를 질러대는 실성한 10대, 얼굴이 벌건 토크쇼 호스트...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자살이란 이런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건 버지니아 울프나 천재가수 닉 드레이크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자살이란 이지적인 것이어야 했다.

: 피자 배달 하다 말고 자살하려고 옥상에 올라온,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제이제이.

 

"일관성은 상상력 없는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예요."

: 역시 제이제이의 이야기. 상당히 많이 찔렸다.

 

혹시 이 책을 읽는 당신이 닉 드레이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 그건 마치 그가 온 세상의 멜랑콜리, 모든 상처와 깨져버린 꿈을 다 끓여서 졸인 다음, 그 정수를 아주 작은 병에다 붓고 나서 마개를 닫은 것과 같다. 그리고 그가 연주와 노래를 하는 것은 그 병의 마개를 여는 것과 같아서, 우리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 마치 소음의 벽에 에워싸이는 것처럼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데, 그건 소음이 아니다.

: 역시 제이제이. 당장 닉 드레이크를 들어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엘리엇 스미스 같은 느낌일까?

 

뻔뻔한 마틴, 궁상맞은 모린, 징징대는 제이제이, 통제불능 제스 중

아무래도 제이제이가 내 마음에 제일 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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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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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윤대녕을 편애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두운 찻집이나 도서관 구석 자리를 찾아다니던 때 만났던

그의 작품들 <은어낚시통신>이나 <남쪽 계단을 보라> 등 이후

절절하게 열광하지는 않지만, 늘 끌리어 책을 찾게 된다.

 

이십대 초반, 난 윤대녕 작품의 낭만성이랄까,

독특한 패배의식, 어둡고 건조한 기운을 좋아했고

내심 그것을 '어른들의 세계'와 동일시하며 동경했나 보다.

 

하지만 독자인 나도 나이가 먹어서

이제 그 작품 속 주인공들과 동년배가 되었다.

물론 이제 와서 느끼는 건,

그것이 '어른들의 세계'가 아니고

윤대녕 사람들의 세계, 은어들의 세계라고 생각하지만.

 

함께 나이 먹는 작가에게 느끼는 감정이란 애틋한 면도 있는 것 같다.

10년 넘게 작품을 통해 만나온 윤대녕에게도 역시.

 

이번 작품집 <제비를 기르다>가 출간된 후

- 창비에서 펴냈다는 것도 살짝 놀라움이었는데 -

여러 신문기사들이 공통적으로

"윤대녕의 안정감" "완성" "성숙함" "긍정성"을 이야기했다.

생물학적 나이와 연륜을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 탓이었을까.

 

여전히 그의 작품 속 남자들은

느끼할 망정 폭력적이지 않고 낭만적이고 부드럽다(까칠함이 덜하다, 가 맞을지도).

다소 수동적이고 신비롭게만 느껴졌던 여자들이

좀더 앞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도 달라진 점 아닐까.

 

제비를 기르고 강화와 제주와 일산에 살고

집에 집착하고 혈육의 끈끈함에 끌리는 사람들을

조용하게, 한층 담백해진 어투로 그려낸 이 작품들을 읽으며

새삼 아름답다, 그립다는 느낌을

거부감 없이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작품들은

여행에 대한 동경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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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반양장)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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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밑바닥 인생'의 삶을 그린 작품들을 기억한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장난, 극도의 가난과 핍박에 휘둘리는 인간을 그린 이런 작품들은

종내는, 그래도 희망, 솟아오르는 태양 앞에 선 벅참을 그려내곤 했는데,

<쌀>처럼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이 또 있었던가.

과문한 나는 기억해내지 못한다.

 

쌀 한 줌, 동전 한 닢에

모든 것을 걸어버린 사내, 우룽은

발가락 하나, 한쪽 발, 눈 하나, 성기, 이 몽땅을 잃거나 주어버리면서

양심을, 존엄성을, 인정을, 도덕을 역시 내팽겨친다.

아니, 어쩌면 그런 것들은 애초에 그에게 없었는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포악스럽다는 말로도 부족한 우룽과 그 일가를 지켜보면서

차라리 불이라도 나서 저들을,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던 대홍기 쌀집을

싹 태워버리고 하나도 없었던 때로 돌아갔으면 하고

몇 번이나 바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바람을 무시한(?) 작가 쑤퉁의 힘은

소름 끼쳐 하면서도 이틀 동안 꼬박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너무 '착한' 작품만을 찾아 읽다가 오랜만에

힘있고 인상적인 소설을 읽었던 주말.

 

* 책을 읽으면서 라스 폰 트리에의 무서운 영화 <도그빌>을 떠올렸다.

<쌀>에서는 우룽과 쯔윈, 치윈 자매, 그들의 자식들에 모든 이야기가 집중되면서

나머지 인물들은 '와장가의 사람들은 지켜보았다' 정도의 배경, 구경꾼 역할을 하고 있다.

 

* 중국 문학에서의 이 작품의 가치, 그리고 작품의 배경 등에 대한 좀더 자세한 해설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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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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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청춘소설이랄까 성장소설이랄까

<밤의 피크닉>도 <굽이치는 강가에서>도 그리고 <네버랜드>에서도

불안한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은 함께 밤을 보내고 음식을 나눠 먹고

걷고 이야기를 나눈다.

타인의 비밀을 갖게 된다는 것, 고해를 듣는다는 것은 결코 쉽거나 가볍지 않은 일.

그 점을 분명히 알면서도 역시 그 나이의 호기심이란.

그리고 그 비밀에 자신의 것을 보태고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고

함께 나누면서 괴로워한다.

이 과정이 참 아련하면서도 따뜻하지만 기묘한 냉기가 흐르는데

그래도 온다 리쿠의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참 착하고 순수해서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어른들은 없는 황량한 기숙사에 모여 앉은 네 소년.

눈도 쏟아지고 기묘한 분위기도 흐르는 것이

전형적인 추리물, 공포물의 배경이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비밀과 아픔이 많은 청춘의 이야기.

순간순간 손이 종잇장에 베이는 섬뜩한 느낌에 움찔하기도 했지만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너무 빠른 이 책에 대단히 만족.

딱 이맘때, 추운 겨울, 허전한 연말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어울리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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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멜 팝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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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슈이치 작품들은 묘하다.

말랑말랑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차가운 기운을 숨기지 않는다.

<퍼레이드>도 <동경만경>도 <랜드마크>도 무방비상태로 읽다가,

당했구나, 싶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진작부터 기다렸던 신작 <캐러멜 팝콘> 역시

겉으로는 평온하고 매끈한 관계를 그려내고 있지만

얇은 한꺼풀을 벗기는 순간에 눈을 감고 싶어지는 느낌.

건조하고, 쿨해 보이는 일상, 그 사람들의 비밀을 공유하고 난 후

아, 이것까지는 몰라도 됐어 하지만 여전히 눈과 귀를 향하게 된다.

네 사람의 사계절, 같은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리듬으로 숨을 쉬고 있는 듯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비밀과 아픔을 숨기고 있는,

짭짤하고 텁텁한 팝콘 위에 달콤함 캐러멜 시럽을 덮어씌운다고 해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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