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출판
와타나베 미치코 지음, 김광석 옮김 / 신한미디어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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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기늠름(元氣凜凜)’이라는 말이 턱 하니 박혀 있는 이 특이한(!) 표지의 책은 작년인가 <동아일보> 정은령 기자의 글에서 처음 만났다. 그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퍽 재미있다는 평이었던 것 같다.

‘편집쟁이’가 된 지도 몇 년이 지났고 내 손을 거쳐간 책이 서점 여기저기에 자리하고 있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내 일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부심은 부족한 편이다. 어찌어찌하다보니 이 일을 하게 되었고 - 입버릇처럼 하는 말,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니 - 이왕 하는 거 정말 잘하고 싶지만 능력 부족은 늘 나를 괴롭힌다. 여러 선배들의 이야기를 직간접으로 엿들으며 나만의 노하우나 신념을 쌓으려고 하는데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고 영원한 나의 숙제일 것이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점,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또한 이 일의 매력이리라 믿는다.

이 책은 일본의 ‘소출판사’ - 정확히 얼마만한 규모인지는 모르겠다. 인터뷰 내용상 열 명 안팎의 출판사를 지칭하는 듯 - 28곳의 편집자(또는 경영자)와의 인터뷰 모음집이다. 일본에는 4,500여 개의 출판사가 있는 듯한데, 그 중 나름대로의 성격을 가지고 적은 수의 책을 꾸준히 내고 있는 출판사를 선정하여 순방한 것이다.

그들에게 묻는 것은 대체로 ‘언제부터 이 일을 하게 되었는가’ ‘원래 출판을 했는가’ ‘주로 어떤 책을 어떤 생각으로 내는가’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출판의 매력은 무엇인가’ 등이다. 간단한 질문과 그에 맞는 간결한 대답 등이지만 독특한 매력도 있고 몇 가지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 있어 지하철에서 줄을 쳐가며 읽었다. 내가 요즘 - 오래 전부터 그랬지만 - 필요로 하는 것은 ‘동업자’나 ‘선배’들과의 교류이다. 그것을 통해 나를 자극하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을 읽은 것은 그런 대로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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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 클럽
배수아 지음 / 해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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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이제까지 읽은 배수아의 '작가의 말' 중 이 책의 '작가의 말'이 가장 신선했던 것 같다. 우선 구체적이고 일상적이며 솔직해 보였다. 특히 이제는 '독특함'이라는 표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토로. '단지 '독특함' 말이다'. 게다가 이렇게 '엽기적인' 작품이 '연애소설'이라니! 어쩐지 유머 같으면서도 진지했다. 난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런 연애는 흔할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 백 퍼센트 동의한다.

그렇다. 이것은 연애소설이다. 어찌 보면 아주 통속적인, 그래서 지독한. 사람은 만났다가 헤어지고 사랑을 나눈 후에 거울을 보며자신의 상처를 살피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치마의 튿어진 단을 떠올린다. 그것이 연애이며 그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삶이다. 한나나 이반이나 무열이나 아방가르드 잡지 편집장이나 그러한 연애 공식에 투철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난 갈비뼈가 부러진 채로 죽어가는 한나보다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 여행을 꿈꾸는 무열이 더 안쓰럽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붉은 손 클럽'에 들어가기에 난 자격 조건이 해당되는가. 난 그 정도로 자유를 꿈꾸며 그 정도로 외로워하며, 그 정도로 이기적인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나만의 신이 없다. 한나에게는 분노와 조급함, 결핍과 냉소의 신이 있다. 그래서 그는 '붉은 손 클럽'의 회원으로 초대받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나태함과 무기력의 신이 있지 않을까?

숨차게 갈증을 달래려는 듯, 후루룩 읽어버렸다. 그래서 시집과 다른 소설을 일단 뒤로 미루고 다시 읽는 중이다. 만약 내가 배수아의 전작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철수>를 읽고 <은둔하는 북의 사람>을 읽고 <프린세스 안나>를 읽었기에 이 책을 기다렸던 것이다. 여전히 배수아의 인물은 결핍되어 있고 냉소적이고 그림자도 없어 보이지만 이제는 더욱 구체적이다. 그래서 반갑고 나의 느낌도 구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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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
이윤기 지음 / 동아일보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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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쨌거나 요즘 만나뵙기 힘든 좋은 어른신 같다. 고리타분하지도 까탈스럽지도 않은 말씀들이 잔소리도 들리지 않고 두고두고 되새겨볼 만하다.

왠일인지 나는 이분이 번역하신 책은 제대로 읽은 바 없고 소설 역시 짧은 작품 몇 읽었을 뿐이지만 전작 <어른의 학교>와 이 책에 맘을 많이 뺏겼다.

다만 여기서 사소한 항의 몇 가지. <어른의 학교>와 겹치는 내용이 있어서 힘이 좀 빠졌다 - 예를 들어 '황진이' 노래 이야기 같은 것.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글들을 묶은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고, 그 문체나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아쉽다.

특히 우리말 쓰기에 대한 내용은 매우 유익하고 감명 깊게 읽었다. 흔히 잘못쓰는 어법에 대한 지적은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제목 중 하나 '옥의 티'라니! 정말 '옥에 티'였다. 이 책에 자주 나오는 많은 오자들은 그야말로 '옥에 티'이다. 심혈을 기울여 책을 내기로 유명한 분이 이 책만큼은 제대로 교열을 보지 않으신 건지. 너무나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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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하우스
장정일 지음 / 산정미디어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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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변신>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자신의 기출간된 4편의 작품, 그리고 무라카미 류 정도의 SM, 92년도에 재미삼아 나도 쳐봤던 구식 타자기에 관한 이야기. '필화' 사건 이후의 첫 작품이라 그런지 좀 독이 오른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소년' 장정일로 '회춘'한 듯한 느낌도 든다.

진지한 존재론적 반성으로 시작했다가 약간의 코미디와 신비주의와 포르노를 거쳐 제자리로 돌아온다. '자기 삶과 불화한 자만이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거린다'는 말은 자신에게 스스로 형량을 선고하는 재판관의 말투이고 '양계장의 닭들은 멍할 거야. 좆 같다고 느낄 거야'라는 첫문장은 자꾸 읽어도 재미있다.

그런데 '보트'랑 '보트하우스'는 무언지 정말 모르겠다. 다 읽고 나니 '얼음 재운 콜라'를 마시고 싶어졌다. 얼음은 있는데 콜라는 없고, 콜라를 사왔더니 얼음이 다 녹아버리는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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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새 본다 - 창비소설집
한창훈 지음 / 창비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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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적인 감수성과 세기말적 허무주의를 너무 잘 나타내서 도리어 생경한 느낌을 주는 것이 요즘의 신진 작가들의 경향이라면 한창훈은 조금은 다른 위치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실제로 농촌에서 생활하며 그야말로 현실과 생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집을 보면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 입으로 소리낼 때 진실로 그 의미를 알 만한 토속어, 사투리들이 살아 있다. 육담일 수도 있고 본능 그 자체일 수도 있는 이야기들에는 해학과 진실이 살아 있어 읽고 나면 이 작가의 다음 작품에 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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