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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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분은 예전에도 느껴본 적 있었다.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그와 개인적인 경험을 교류하지 못해서인가 그의 글은 내겐 많이 겉돌았다.  눈썹에 힘을 주고 여러번 반복해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속속 등장, 내 소양이 많이 얕다는 책망이 들고 뒷맘이 허전했다.  간혹 용어 사전을 펴놓은건가 싶기도하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문장들을 누덕누덕 기워낸 듯도 하고.... 이러한 열거들은 작가의 박식을 눈치채게 하기보다  나를 그의 글에서 소외 시켰다.   얄팍한 책의 두께, 큼지막한 글씨,넓은 행간 간격. 작가의 말대로 다음 작품을 내기전에 특별판으로 낸 글이라고,그리 알고 읽어 달라는 말이 책을 덮고 나니 정말 옹색한 포석이었다는 느낌과 함께 머리가 띵해진다.   

그의 글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경한 어휘들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80년대를 살아낸 선배들은 지금도 술자리에서 그런 대화를 나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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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드의 여왕 (구) 문지 스펙트럼 3
알렉산드르 셰르계예비치 푸슈킨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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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글이든 단시간에 폭풍처럼 읽어제낀다면 띄엄띄엄 토막토막 시간나는대로 놨다 들었다를 반복한 경우보다 그 감도는 강하리라. 누구에게라도. 허나 예외인것만 같은 책을 만났으니 바로 이 책이었다. 내겐.   

너무나 갑작스런 문화환경의 변화를 목전에 두고 머리 속이 곤죽이 되어버린  최근의 내 어수선한 생활속에서도 이 책은 너무나 잔잔하고 다정하기만 하였다. 다소곳한 새색시 마냥.    격렬하지 않았으나 마음을 울렸고, 낭만적인 사랑과 유머로 미소도 끌어내었고, 목가적인 풍경화를 꺼내보여주기도, 우연을 기대하게도, 환상을 얘기해주기도 했으니.  자그한 책. 짧은 글들.  

푸슈킨이 1799년 모스크바 출생이라는데,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필체는 너무나 세련되고 우아하여라.  나도 스페이드 여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 미소를 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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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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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허기와 함께 찐빵이 떠올라 얼마전에 교외를 달리다가 발견한 찐빵집으로 더듬더듬 돌진. 어디였는지 분명치 않고 그저 한 번 지나친 도로 위였던 찐빵집 입간판.  한 장 사진으로 머리속에 박혀 있다가 뜬금없는 허기와 함께 선명히 떠 올랐다. 그 당시 멈춰 한 봉지 들고 오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냥 지나쳤던 아쉬움이 이리 오래 남아 결국은 다시 먼 길을 되짚어 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했다.  진빵을 뜯어 먹으며 바라 본 차창 밖 빨간 벽돌이 가득 쌓여 있는 벽돌공장.  어찌 이런 우연이있단 말인가.

벽돌 공장이 내 눈에 들어 오기 전에 마주친 또 하나의 우연이 있었으니. 점심 식사 중 옆 테이블에서 탁자 세 개를 붙여서 고만 고만한 아이들 넷에게 연신 숫가락질을 해대던 덩치 큰 한 여인. 그 엄마를 보면서 아마도 춘희가 그 정도의 체격은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우연. 키 180에 체중은 120k  정말 보기 드문 체격이었는데.

고래를 읽고 있었기에 눈에 들어 온 것들일까.  난 책을 읽으면서 내 현재 속에서도 소설의 조각들과  마주치는 경험을 종종 한다.

고래는 가련한 춘희를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옆에서 본 것같이 말하다가도, 가끔 전해들은 것처럼 얘기하다가, 또 가끔은 그 속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풀어 놓기도 한다.  변사처럼 끼어드는 작가의 해설이 생뚱맞기도 했고, 띠엄띠엄 말해줘서 마치 남의 집 사랑방에서 옆 동네 떠도는 소문을 귀동냥하는 기분도 느꼈다. 화자는 확실히 뭔가 바쁜일이 있었는지 무지 급하고 시간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를 끝내자,듣는 나 조차도 휴~~  그가 전해준 춘희의 이야기는 여러 인간들의 희안하고 다양한 원초적인 욕망과 가학, 분노, 야만, 찐득한 인연, 동일 패턴의 노골적 암시,열거하기도 버거운 여러 종류의 법칙(소문의 법칙, 아랫것들의 법칙, 구라의 법칙,사랑의 법칙,무지의 법칙 기타 등등의 법칙)을 담고 있었다. 특히 욕망부분에 많은 지면이 할애되었다.  책의 부피만큼 길고 아픈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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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여름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16
하타 코시로 그림, 후지와라 카즈에.하타 코시로 글, 김정화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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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 설렁하는 걸레질에도 이내 등줄기가 후줄근해진다. 드뎌 여름의 가혹한 시련이 시작되는가 보다.  두 아이들과 견뎌야 하는 이 계절은 나의 인내를 어지간히 눌러짜서는 끄떡도 않고, 긴~ 시간 내게 머물것 같다. 지레 겁부터 먹지 말자. 바로 방어모드 짜아 잔. 

리뷰 여행을 통해 얻게 된 책이 아니라 직접 서점에서 나의 낙점을 받은 책이기에 그런가, 난 이 책이 너무 사랑스럽다.   일단, 가느다란 선으로 쉭 쉭 그린 단순 깔끔한 그림. 수박 한 쪽 사각사각 씹으며 쉽게 그렸을 것 같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담을 무지하게 덜어주는 편안함.  그럼에도  없는 거 없이 구색을 다 갖춰 살림을 차린 세심함이 내 맘을 홀딱 말아 먹는다.  더불어 본전 생각도 멀리 멀리.   용케 서 있는 것 같은 그 선풍기 앞에서 아이들은 가녀린 미풍을 맞으며 쥬스 마시고 TV를 보고 있다.  난 선풍기가 거기 있었다는 걸 이 책을 구입한 한참 후에야 발견하고 너무나 대견하게 그 선풍기를 바라 보았다. 희미한 하늘색 바람도.

둘레 둘레 찾아보시라  아기 자기한 소품들에 빙그르르  씨이익  헤헤  와우

도시에서의 무료한 여름방학을 보내던 두 형제가 시골 외삼촌에게 놀러가서 정말 마법 같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 온다는 스토리다. 

"저녁밥을 먹고 나니 졸려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잠이 들었다.  이불은 보송보송하고 해님 냄새가 났다." 

정말 해님 냄새가 화악 끼쳐왔더랬다. 나도 맨날 이불을 바깥 베란다에 널고 깔기를 반복했기에 그 냄새가 해님 냄새였다는 걸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단박에 알아차렸다.

이 책은 간직하고픈  어린 시절 여름 방학을 꼭 싸매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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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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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연실색 

이 글이 자전소설이라니 숨통이 조여오는 것 같다. 어찌 이토록 심하게 경직되어 있을 수 있는가. 부하직원은 질문할 필요가 없다. 그냥 상사의 지시만 따르면 된다.  부당하다던가 억울하다던가 해명이라던가 그런건 오히려 더 큰 소용돌이를 몰고 온다.  상사가 날리는 모멸과 모욕을 신음소리 한마디 흘리지 말고 모조리 몽땅 온몸으로 다 받아내는 게 부하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대응이다.  이런 논리가  이성이란걸 지닌 인간세상에 존재하는가. 부아가 치민다.  정말 여기 그려진 모습이 일본이란 말인가. 경악 그 자체다.  

일본인이 아닌 벨기에인인 아멜리가 그린 일본 이야기다.  이 글을 읽은 일본인의 해명을 꼭 한 번 듣고 싶다. 

난 햇빛이 담겨져 있는 책이 좋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날 다운시켰다.  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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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06-06-08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사실 일본이 아니더라도, 그런 상사를 만난다면 한국도 다르지 않더라는 말씀 드리고 싶어서 댓글 남깁니다.-_-;;;

AppleGreen 2006-06-09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제가 듣고 싶었던건 상사에대한 대응이 아니라, 소설서 언급된 직장내 지배구조가 정말 가능한지, 외국인이 관찰한 일방적일 수 있는 얘기를 읽었으니, 그 구조의 속사정을 알고 있을 내국인의 얘기를 듣고싶어서 일본인 언급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그런 험악한 지경은 아닌걸로 알고있기에..
제 서재에 처음으로 댓글을 남겨주셨어요. 마냥 신기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