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여행의 어원을 따라가 보면 현대의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자유, 즐거움, 해방 대신 노동과 수고, 고통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떠남과 되돌아옴에 대한 내 심정이 고대 프랑스 여행자들의 그것과 맞닿아 있었다니 이제껏 소외 당하던 내 취향이 지지받는 듯했다. 시간을 좀 뛰어 넘었다한들 어떠랴. 

 

 나는 반복되는 일상, 그 예측 가능함이 주는 안정감이 좋다. 새로운 것이 때론 좋기도 하지만 거지반 짧게 반짝이며 타자로 스칠 뿐, 단순 체험을 뛰넘은 감흥이 드물었기에  난 그저 익숙함이 주는 그 편안함에 머물고 싶다. 지금 생각하면 나름의 자기방어 기제인 듯도 한데 사실 좀 더 그럴듯한 이유는 게으름같다. 여행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그저 그런 풍경들에 오히려 심쿵하고 그 안도감이 내겐 여행의 가장 짜릿하고 궁극적인 기쁨이라고 할 만큼 내 여행의 목적은 일상으로 되돌아 오기 위한 출발같다.

 

 작가는 신화나 영화 속에 등장한 여행들을 소개하는데 이들은 대체로 깨달음을 주는 여행들이었다. 죽지 않는 비결을 찾아 떠나지만, 결국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거나, 원래 찾으려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을 얻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잘 짜여지고 편안하고 쾌적한 여행을 선호하는 우리의 여행에선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정작 여행은 목적지 자체보다 목적지에 다다르는 동안의 경험이 목적지를 부각시킬 수 있음에도, 대개 목적지에만 강렬한 초점을 맞추는 우리 여행의 관행은 천편일률적인 확인만으로 끝난다. 여행이라기보다 관광이라는 이름이 마땅해 보일만큼 수동성만 남은 우리의 여행이 초라해지는 지점이다.

 

 작가에게 여행은 낯선 곳에서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으로 인해 자신의 현재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게도 생각지도 못했던 지금의 습관과 원칙을 만들어준 여행이 있었다. 10여 년 전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 3년 반 동안 머무르게 되었는데, 수 년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떠날 곳이라는 제약은 그곳에서의 시간과 공간에 안심하고 뿌리내리기 힘든 불안 요소였다. 늘 되돌아감을 염두하고 고만고만한 짐을 꾸리며 생활했는데, 그곳 생활 1년여 되던 해,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등교하게 되면서 내게 뜻밖의 자유가 불쑥 등장했다. 난 그 생소한 시간을 산책으로 그냥저냥 썼다. 산책 중 몸집 큰 외국 아주머니들이 달리기를 하는 걸 보면서 '나도 해볼까 ~?' 하고 종종종 달려봤는데, 걷는건지 뛰는건지 당사자만 판단할 수 있는 그것이 올해 11년 차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 달리기 습관은 현재 내 정체성에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축이 되었으니 굉장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그곳에선 한국에 있었다면 모르고 살았을 유명 브랜드 제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당시 난 필요가 아니라 한국에선 절대 이 가격에 살 수 없다는 논리로 물건을 사 모았다. 정작 한국에 있었다면 살 생각조차 안했을 물건이었는데 말이다. 허허~ . 그런데 문제는 달러 가격텍이 빛 바랜 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옷장에서 종종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 물건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민망하다. 하지만 깔끔한 깨달음도 준다. 종종 등장하는 부끄런 증거물들은 쇼핑시 싸다고 한 개 더 챙길까 고민하는 순간 영락없이 내 눈앞에 두둥 떠올라 그 갈등을 말끔하게 정리해 주니 이보다 편리할 수 없다. 이처럼 셋방살이 같았던 낯선 곳에서의 몇 년은 지금 내 삶의 미묘한 균열을 내기도, 중심을 세우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이다. 습관적으로 보고 제약없이 머물기에 무뎌딘 시선에 다시 날을 세우고자 우린 우리가 속한 공간과 잠시 거리를 두고 싶은지도 모른다. 세상을 사물을 난생 처음 바라보았던 그 경이로운 기억을 소환하고자. 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주로 여행지 사진, 음식 사진, 숙소 사진 등 행복을 극적으로 시각화한 인증사진을 노출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인증하고자 하는 건 행복보다 행복해 보이는 것. 그것 같다. 남다른 발견과 깨달음의 서사 대신 찬라의 연출만 담은 그 인증 사진을 따라 떠나고 떠나고 또 다시 환상을 재생산한다. 내가 내 인증사진에 입힌 극적인 효과만큼, 타인의 인증사진을 받아 들일 때도 할인된 시각이 필요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현대의 여행은 명품 열풍처럼 그저 과시용으로 마구 소비되는 건 아닐까. 떠나고 싶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있으니까 떠나는 여행으로. 인류가 과학의 발전을 등에 업고 지구와 생명에 휘두른 가치관이 그대로 개인의 여행관에 투영되고 있는 것 같다. 목적과 탐색없이 남의 여행 리뷰만을 쫓아 나선 여행은, 유리창으로 가로막혀 현장에서도 그곳과의 접속을 방해한다. 남을 시켜 좋은 구경을 하고 오게 하고 나중에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는 유럽 귀족이나 조선의 양반들처럼 우리도 겉도는 인증만 남발하고 있는 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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