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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
강판권 지음 / 지성사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산딸나무
산딸나무에 꽃이 피었다.
하얀 잎 4장씩 머리위에 쓰고 서 있는 모습은
흰 나비가 소풍 나왔다 잠시 쉬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순결한 신부를 떠올리게도 한다.
눈 인사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다가가 쓰다듬어 보았다.
잠시 나무와 나눈 대화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지친 내게 위안과 힘을 주었다.
이렇게 내가 나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불과 몇년되지 않았다.
소나무와 전나무도 구별할 줄 몰랐었고
그껏해야 은행나무, 단풍나무정도나 알아볼까
나무에 대해 무지하던 나를 나무에 관심을 가지게 해주고
주변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 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은 나의 나무에 대한 여행의 출발점이었고
다른 일련의 나무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고
나무들을 만나보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된 책이다.
나무에 대해 조금이나 알게 되니 이제는 도시 이곳 저곳에 말없이 서있는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다양한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아주 잠시의 시간이나마 그들과 나누는 대화가 나에게 힘이 될 때가 참 많다.
물론 이 책은 단순하게 나무에 대해 그 생태를 설명하거나 하는 책은 아니다.
나무를 통한 역사 읽기, 문화 읽기라고 할까?
머리말의 '배려'와 '기다림'의 이야기와
그가 내놓은 새로운 공부론도 인상적이지만
나무와 관련된 단상들과 그가 풀어 놓은 이야기들은 살아가면서 참고로 할 만 한 것들이 많다.
요즘처럼 신경써야 할 것들 많고 왠지 중심없이 바쁘고 부산할 때
그가 이문재 시인의 '석류는 폭발한다'라는
시와 함께 풀어놓았던 석류의 이야기를 떠 올려 본다.
석류는 우리에게 게으르고 게을러서 게을러터지길 요구한다.
뭔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일에 한없이 게을러야 한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쓸데없는 데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의 차이도 자기가 하는 일에 얼마나 부지런한지,
아니 자기일 이외의 것에 얼마나 게으른지에 있을지도 모른다.(p.163-164)
나는 이 책을 읽고 마음속에 살구나무 한그루를 심었었다.
그리하여 난 지금 살구나무 숲을 꿈꾼다.
쓸데없는 일들에 게을러터지면서 나의 살구나무가 커다란 숲을 이루는 그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