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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잎의 여자 (구) 문지 스펙트럼 8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3월
평점 :
품절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오규원 -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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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라고 하긴 뭐하고..
그냥 잡담 정도..

오랫동안 시를 읽지 않았지만.

옛날엔 이원이나 서정학, 김혜순, 유하 같은 시인의 시들이 좋았다.
이미지들이 신선하고 읽기 재밌고 재치있고...

진술이 많은 시들은 솔직히 읽어봐야 지루했고..

그런데 요즘들어 그런 시들을 읽으면 어렵고 불편하다.
시 매니아에서 일반 시 독자로 변모했기 때문인가?

오규원 교수님의 위에 올린 시같은..
그냥 사담같은 진술시들이
요즘엔 참 맘에 든다.

오규원 교수님은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으셨는지 몰라도
난 늘 그런 생각 때문에 죄책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조급하고, 그러면서 게으르고, 또 그래서 스스로가 원망스럽고
그러해서 후회하고, 또 그러는 것들이 모두 부질없고 그래서 허무하고..

사람은 누구나 잘못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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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는 뛰어난 이야기꾼이 아님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훌륭한 몽상가이고 멋진 스타일리스트다.
스필버그보다 왕가위가 더 좋은 것과 같은 이유로 하루키의 소설에 '원츄~!'를 달아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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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매우 재미있는 소설임에는 분명하나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미흡한 면들이 있었다.

내가 이 소설을 읽기 전 들었던 줄거리는, 벨기에의 한 여성(아멜리 노통)이 일본인 회사에 들어와 말도 안되는 시스템 속에서 1년동안 겪은 이야기라는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굉장히 신랄하게 1년동안의 체험을 바탕으로 시스템의 허와 실에 대해 고발하는 식의 내용일 것이라 추측했다.

처음엔 주인공이 영화 아멜리에의 여주인공이나 빨강머리 앤이나 밑줄긋는 남자의 여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듯한 '엉뚱한 소녀' 캐릭터라 놀랐고, 그래도 그 캐릭터로 더 재미있게 이 상황을 풀어나갈 것이라 추측해 매우 뒷 내용이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내 기대를 완전히 채워주진 못했다.

그냥 공상하기 좋아하는 한 벨기에 여자가 일본인 회사에서 상사에게 찍히고 혼나며 화장실 청소부로 전락하는 이야기로, 결론은 '일본인들은 역시 이상하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편견으로 가득찬 한 서양인이 매우 개인적인 시각에서 쓴 소설이다.

주인공은 천진난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아멜리 노통은 그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일본인은 이상해, 일본 대기업 시스템은 비 합리적이야, 일본 여성들의 삶은 비참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주인공은 그렇지 않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변명'하겠지만'. - 동양인들은 다들 바보같군, 까지 안나간게 다행.

아멜리 노통이 겪은 일은 다소 과장은 있을지언정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실로 부당하게 그런 일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그녀가 미쳐 파악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드림픽쳐스21이라는 이상한 회사에 4년을 다녔다. (나도 아멜리 노통처럼 회사 생활에 대해 글을 써볼까? 그럼 제목은 이상한 회사의 지연 정도면 좋을까)

처음 1년은 아멜리 노통이 그러했듯, 멍청한 사람들과 싸우느라, 그들에게 반발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했고..

그 다음해는 돈이 없다는 경제적인 문제와, 직원들의 이기심, 그리고 한국 애니매이션의 비참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내가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로 고민했고..

3년째에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다던지 하는 일로 매우 위축되어 어둠속에서 조용히 지냈고, (이 해 겨울 또 한번의 격렬한 싸움이 있었지만)

4년째 되는 해에는 왠지 아무런 에너지도 몸에서나오지 않아 아무 생각없이 나른하게 조용히 회사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4년전에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지금 보고 있고, 그땐 깨닫지 못했던 것을 지금 깨닫고 있는 것을 안다.

그때 내 눈에 보였던 시스템의 문제들이, 그때는 단순히 '이상'해 보였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문제의 핵심이 뭔지 파악할 수 있다. 다만 해결할 수 없을 뿐.

먼 미래가 되면 해결할 수 있는 지혜도 생겨날까?

두려움과 떨림에 대한 내 결론은

- 아멜리 노통은 아주 글을 잘 쓰는 작가다
- 그러나 아멜리 노통은 왠지 성격이 나쁘고 약간은 이기적인 사람일 것 같다. (그리고 왠지 B형이나 ab형 같다)
- 그래서 나는 그의 문장이 맘에 들지 않는다
- 이 소설은 편견덩어리다
- 그래도 재밌게 잘 읽힌다. 적어도 소설로만 볼 때는 재밌고 잘 쓰여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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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재미있다.아이디어도 좋고, 내용도 산뜻하고 연애소설이면서 유치하지도 않다.

새삼 줄거리를 다시 늘어 놓지는 않겠다.

이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다.(뭐 간혹 '독자'와 '작가'의 관계에 대해서, 독서에 대해서, 문득 문득 말하려는 것이 보이긴 하지만.. 그쪽으로 끌고나가면 마무리가 힘들어 지므로 그냥 사랑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마치련다)

뻔한 사랑 스토리엔 여자와 남자가 나온다. 가끔 남자나 여자가 한명 더 끼어 삼각관계가 되기도 하고, 서로를 방해하는 방해세력이 더 추가 되기도 한다.

주인공 콩스탕스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다가 책에 밑줄을 긋는 미지의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십분 공감이 된다. 어떤 한 '개인'을 사랑하기엔,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단점이 너무 크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상한선은 턱없이 높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실체라면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

나는 우정이나 사랑 등에 대해 너무 큰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고 사랑 또한 하지 않는다. 주로 만나는 사람들도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은 매우 많다. 소설가 만화가 시인 영화감독 음악가 등등등. 좋아하는 사람의 목록을 쓰려면 한시간을 끙끙거려도 한 페이지를 채울까 말까인데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쓰라면 줄줄이 쓸 수 있다.

오히려 주위에서 숨쉬고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만난 적도 없는, 다른 시대의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멀고 먼 한 사람이 남겨둔 소설이나 시 한편에 더욱 공감한다. 매일 만나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사람보다, 생면부지인 어느 작가가 더 내 마음을 잘 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들의 작품이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란다.

하지만 그들을 실제로 만나고, 현실에서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난 그들과 어느 정도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 '책'을 다루고 있으므로 책에 한정지어 말하겠다. 즉 내 말은 '사람'보다 '책'을 사랑할 수 있는 확률이 내겐 더 크다는 거다. (공감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을 것 같은데) 그 책을 쓴 사람은 불완전하더라도 책 속의 작품은 완전할 수 있다.

책은 부담도 적다. 책은 싫으면 덮어버리면 끝이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불편하다. 또 그 사이에 수많은 오해들이 쌓여 벽을 만들고, 정말 성격이 나랑 안맞는 인간들과 손을 잡고 그 벽을 깨느니 차라리 영원히 안만나고 사는 게 나을 정도다.

그래서 콩스탕스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책을 사랑한다. 정확히 말하면 어느 작가를 사랑한다. (죄송.. 이름은 까먹었다) 그 작가의 소설을 전부 읽을 무렵, 콩스탕스는 어느 책의 밑줄에서 새로운 책을 소개 받는다.

그 후로 그녀는 책을 사랑하지 않고 책에 밑줄 긋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책보다는 '밑줄 긋는 남자'가 조금은 더 현실적이다. 하지만 현실에 널부러져 다니는 보기 싫은 남자들보다는 차라리 사랑하기 쉬운 상대다.

그래서 그녀는 어이없게도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밑줄을 찾아 수많은 책들을 읽게 된다.

한 청년이 그녀 앞에 자기가 밑줄 긋는 남자라며 나타났을때 그녀는 실망한다. (그 실망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보이지도 않는 '밑줄 긋는 남자'를 그 멀대 같은 청년이 이길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러나 결국 '밑줄 긋는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콩스탕스는 멀대 청년과 이어진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결말이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별로 맘에 들지 않는 결말이다.

미지의 작가 -> 보이지 않는 밑줄 긋는 남자 -> 멀대 청년으로의 사랑의 이전은.. 다른 사람들의 눈엔 '환상보다는 진실된 사랑을 찾은'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눈으로 볼땐 퇴행이다. 약게도 현실로 눈을 돌린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 시시한 사랑인가? 어쨌든 사랑에 대한 건 나도 모르니까 물어보지 말길.. 머리 아프다.. 뒷수습 안되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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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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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다시 나온 김영하의 신작을 읽었다. 역시.. 이름값을 하는 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꽃]은 청승, 신파 일색일 수도 있었던 1900년 초 조선의 한 사건을 김영하 식으로 쿨하게 풀어가고 있다.

집,학교,회사,작업실등을 오가며 전철에서 찔끔거리며 읽느라 거의 몇주를 가방에 넣고 다녔지만.. 자리 잡고 앉아 읽으면 앉은자리에서 쑥 읽혀버릴 정도로 여전히 속독감 있는 문체.

역시 예상대로 마지막 장을 덮을때의 뒷맛은 씁쓸했다.

하지만 정말 멋진 소설이었고.. 아직까지, 한국에서 이런 좋은 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기쁜 한 편 (요즘 한국 작가들 소설이 워낙 맘에 안들어서..이거 영화고 뭐고 집어치우고 다시 소설을 써서 한국문단을 살려야 하는거 아냐? 하고 오버를 떨던 중이었고...-_-) 나도 빨리 뭔가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언제나 든다)

어쨌든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이 소설은 파란의 1900년대를 살았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다. 각종 신분,직업의 조선인들이 대륙식민회사에 속아 4년동안 멕시코의 채무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모티브.

인간의 인생도, 이상향이라는 국가도, 제도도, 모든 것이 불완전하며, 허무하게 사라질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의 꿈도 좌절되고, 사람들은 계속 변화되고, 그들이 머물렀던 농장이나, 한반도에 남아 있던 대한제국이나 고종황제나 그들 자신 모두 결국 세월 속에서 사라져버린다.

혁명은 계속되지만 바뀌는 것은 없다.

청승맞은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문득 나는 어떤 역사를 거쳐 어느 누군가의 자손으로 태어났을까 궁금해졌다.

아무리 쿨하고 모던하게, 서구화된 이미지 속에서 깔끔한 삶을 살고 싶어 한들 내 속에도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 저변에 흐르고 있는 무언가, 내가 학습되어 얻은 나의 취향이 아닌 학습되기 이전부터 갖고 있던 피 속의 무언가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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