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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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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너무 오래 기다린 탓일지 몰라.난 굉장히 완벽한 걸 원하고 이거든. 그래서 어렵다고 생각해."

"완벽한 사랑을?"

"아니, 아무리 내가 욕심쟁이라지만 거기까진 바라지 않아. 내가 바라는건 그저 내 마음대로 하는 거야. 완벽하게 내 마음대로 하는 것.
가령 지금 내가 자기에게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면 말이야, 그러면 자기는 모든 걸 집어치우고 그걸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헐레벌떡 돌아와서 '흥, 이런 건 이젠 먹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그걸 창문으로 휙 내던지는 거야.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거란 말이야."

"그런 건 사랑과는 아무관계가 없는 겉 같은데"하고 조금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관계가 있어. 자기가 알지 못할 뿐야."하고 미도리는 말했다.

"여자에겐 말야, 그런 게 굉장히 소중할 ‹š가 있는 거야."

"딸기 쇼트케이크를 창문으로 내던지는 행동이?"

"그래 , 난 상대방 남자가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어. '알았어, 미도리, 내가 잘못했어. 네가 곧 딸기 쇼트 케이크가 안 먹고 싶어지리라는 것쯤은 짐작했어야 했는데. 난 당나귀 똥만큼이나 바보스럽고 무지한 것 같아. 사과할 겸 다시 한 번 다른 걸 사다 주지. 뭐가 좋아?초콜릿무스?아니면 치즈케이크?"

"그러면 어떻게 되지?"

"난 그렇게 해서 받은 것만큼 어김없이 상대방을 사랑할거야."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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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못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절판


"너도 나랑 같잖아. 자연스러움을 연기하고 있잖아.
사실은 너도, 자신은 다른사람들과 다른 무슨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잖아.무지하게 우월감을 품고 있으면서 일부러 멍청한 듯이 행동하잖아. 네 쪽이 훨씬 더 그럴듯하게 연기하고 있어. 넌 아주 자유로워 보여. 난 그걸 좋아했어. 다른 애들처럼 이런 저런 틀을 만들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말야 언제나 자유롭다는 건 진짜로 자유롭지 않은 거라구. 나도 마찬가지지. 네가 말한 그대로야.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나를 좋아해. 그런 연기를 열심히 하는 것이 나의 취미야. 어중간하게 자유인 흉내 따위는 내지 않아"
-?쪽

다른 사람과는 다른 무슨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나는 그녀의 말을 되씹어 보았다. 나야말로 자연스러움을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변형된 아부나 작위는 싫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걸 너무도 멀리하고 싶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덮어쓰고 만 것은 아닐까. 사람들에 대한 아부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아부를.

인간에게는 시선을 받아들이는 안테나가 붙어 있다. 타인의 시선이나 자기 자신의 시선을 받으면 사람은 반드시 아부라는 독을 생산해 낸다. 나는 그 독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만 했다. 모모코나 어머니가 시원스러운 것은 그런 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언제나 명확히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문득 껍질 벗기는 칼이 떠올랐다. 그것으로 채소 껍질을 벗기듯이, 나의 이상한 자의식을 벗겨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게 할 수 있을때 나의 겉모습과 속마음이 일치하는 날이 올 것이다. -166쪽

선생님, 삼각형의 세 각을 합하면 180도가 되잖아요. 일직선이 되는 거지요. 고통의 각을 세 개 모으면 그것도 일직선이 됩니다. 여섯 개를 모으면 360도가 됩니다. 동그랗게요. 더이상 아프게 하는 뾰족한 각은 없습니다. 나와 아카마는 이미 한 개의 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는 빨리 일직선이나 동그라미가 될 수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지구도 둥글잖아요."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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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은 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2월
구판절판


" 세월이 지나면 아랑 전설을 새롭게 쓰는 이 기획을 이어갈 누군가가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도 결코 이 이야기를 완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 옛날 아랑 전설을 만들어 퍼뜨리던 이야기꾼들처럼 나도 그리고 그도 하나의 징검다리에 불가하니까. 그게 이야기를 만드는 자들의 운명이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이야기의 주인이라고 착각하지만 이야기의 주인은 이야기다. 그들이 우리의 몸을 빌려 자신들의 유전자를 실어나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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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코멘트 ...

이야기를 쓰는 것이 즐거웠던 것은, 이야기 속에서 내가 신이 된 것처럼 뭐든 맘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법을 배우고, 실제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면서, 사실은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내 이야기의 끝을 모른다. 미리 정해 두어도 이야기는 계속 다른 방향으로 튄다.
나도 내 이야기 속의 캐릭터들을 잘 모른다. 어느 정도 설정을 끝내주면, 이야기가 성장하면서 그들도 같이 변화한다.
'이야기는 스스로 진화한다'. (문창과 시절 이광호 교수님이 했던 말인 것 같다)
정말로.. 이건.. 못 느껴본 사람은 모른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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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 탐사와 산책 15
유지나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9월
품절


<백설공주>나 <신데렐라><디즈니 공주 특선집>을 보던 여자아이는 어른이 되어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는 한국 여자 체형과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흰 드레스를 입고 서양식 고성을 본뜬 조잡하기 짝이 없는 웨딩홀에서 떡칠한 얼굴로 결혼기념 사진을 찍는다. 나는 고궁이나 대학로 같은 데서 드레스 입고 사진을 찍는 여자들을 볼 때마다 공주표 벤치마킹 포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유치찬란한 장난을 언제나 멈추려는지,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유지나의 영화산책> 중, '하수상한 공주 동화 뒤집기'
(프린스 앤 프린세스와 슈렉의 전복적 매력 중에서)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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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구판절판


오랜 옛날부터 서민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현실에 삶을 바쳐 왔다. 적어도 과거에는 이렇게 무의미하게 삶을 바치면서 어떤 절대적인 대의가 있다고 상정이라도 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이상 환상을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은 아무 명분도 없이 자신들의 존재를 던지고 있었다.

중략..

그런데 회사 밖에서, 숫자로 뇌가 세척된 경리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만큼이나 두개골에 구멍이 생긴 동료들과 의무적으로 맥주를 마시고 터질 듯한 지하철을 몇 시간이나 타는 것. 이미 잠든 아내, 벌써 무감각해진 아이들, 물 빠지는 세면대처럼 당신을 빨아들이는 잠, 아무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모르는 드문 휴가. 삶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제일 끔찍한 것은, 이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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