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재미있다.아이디어도 좋고, 내용도 산뜻하고 연애소설이면서 유치하지도 않다.

새삼 줄거리를 다시 늘어 놓지는 않겠다.

이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다.(뭐 간혹 '독자'와 '작가'의 관계에 대해서, 독서에 대해서, 문득 문득 말하려는 것이 보이긴 하지만.. 그쪽으로 끌고나가면 마무리가 힘들어 지므로 그냥 사랑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마치련다)

뻔한 사랑 스토리엔 여자와 남자가 나온다. 가끔 남자나 여자가 한명 더 끼어 삼각관계가 되기도 하고, 서로를 방해하는 방해세력이 더 추가 되기도 한다.

주인공 콩스탕스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다가 책에 밑줄을 긋는 미지의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십분 공감이 된다. 어떤 한 '개인'을 사랑하기엔,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단점이 너무 크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상한선은 턱없이 높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실체라면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

나는 우정이나 사랑 등에 대해 너무 큰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고 사랑 또한 하지 않는다. 주로 만나는 사람들도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은 매우 많다. 소설가 만화가 시인 영화감독 음악가 등등등. 좋아하는 사람의 목록을 쓰려면 한시간을 끙끙거려도 한 페이지를 채울까 말까인데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쓰라면 줄줄이 쓸 수 있다.

오히려 주위에서 숨쉬고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만난 적도 없는, 다른 시대의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멀고 먼 한 사람이 남겨둔 소설이나 시 한편에 더욱 공감한다. 매일 만나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사람보다, 생면부지인 어느 작가가 더 내 마음을 잘 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들의 작품이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란다.

하지만 그들을 실제로 만나고, 현실에서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난 그들과 어느 정도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 '책'을 다루고 있으므로 책에 한정지어 말하겠다. 즉 내 말은 '사람'보다 '책'을 사랑할 수 있는 확률이 내겐 더 크다는 거다. (공감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을 것 같은데) 그 책을 쓴 사람은 불완전하더라도 책 속의 작품은 완전할 수 있다.

책은 부담도 적다. 책은 싫으면 덮어버리면 끝이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불편하다. 또 그 사이에 수많은 오해들이 쌓여 벽을 만들고, 정말 성격이 나랑 안맞는 인간들과 손을 잡고 그 벽을 깨느니 차라리 영원히 안만나고 사는 게 나을 정도다.

그래서 콩스탕스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책을 사랑한다. 정확히 말하면 어느 작가를 사랑한다. (죄송.. 이름은 까먹었다) 그 작가의 소설을 전부 읽을 무렵, 콩스탕스는 어느 책의 밑줄에서 새로운 책을 소개 받는다.

그 후로 그녀는 책을 사랑하지 않고 책에 밑줄 긋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책보다는 '밑줄 긋는 남자'가 조금은 더 현실적이다. 하지만 현실에 널부러져 다니는 보기 싫은 남자들보다는 차라리 사랑하기 쉬운 상대다.

그래서 그녀는 어이없게도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밑줄을 찾아 수많은 책들을 읽게 된다.

한 청년이 그녀 앞에 자기가 밑줄 긋는 남자라며 나타났을때 그녀는 실망한다. (그 실망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보이지도 않는 '밑줄 긋는 남자'를 그 멀대 같은 청년이 이길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러나 결국 '밑줄 긋는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콩스탕스는 멀대 청년과 이어진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결말이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별로 맘에 들지 않는 결말이다.

미지의 작가 -> 보이지 않는 밑줄 긋는 남자 -> 멀대 청년으로의 사랑의 이전은.. 다른 사람들의 눈엔 '환상보다는 진실된 사랑을 찾은'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눈으로 볼땐 퇴행이다. 약게도 현실로 눈을 돌린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 시시한 사랑인가? 어쨌든 사랑에 대한 건 나도 모르니까 물어보지 말길.. 머리 아프다.. 뒷수습 안되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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