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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 S.E. - [할인행사]
왕가위 감독, 양조위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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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드디어 <2046>을 보았다.



<2046>은 왕가위가 꾸는 꿈 속 같은 영화다.



우리가 꾸는 꿈은 한 장 한 장의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 영상이 뇌에 저장되었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자동적으로 스토리가 이어져 한 편의 꿈이 된단다. (그래서 꿈은 황당하고 비논리적이다)



<2046>도 그러하다

이 영화는 왕가위 영화 세계가 꾸는 과거와 미래, 시간과 사랑에 대한 꿈이며

빠져있는 퍼즐 조각 중 하나이고

아니면 그 세계 자체이기도 하다.



<2046>이 왕가위 영화의 전작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기무라 타쿠야가 등장한다는 점 정도일까?

기무라 타쿠야는 왕가위의 연출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토리도 캐릭터도, 촬영종료일도 알 수 없는 가운데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또 상당부분 드러내서 화를 냈다고도 하던데..장만옥은 그래도 좀 심했다...-_- 한 세 컷 나왔나..)



하지만 기무라 타쿠야는 차우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일 뿐이니

그가 이 세계의 결말이나 영화의 내용을 모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생긴 기무라 타쿠야는 영화의 내용을 알건 모르건 어쨌든 안드로이드 왕정문에게 말한다.

함께 가지 않을래? (이 대사가 맞나.. 기억이 잘 안나네.. 근데 저건 레카 마지막 대산데..;;;)

낡은 안드로이드 왕정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열차는 2046으로 계속 달려간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그곳에 가면 기억을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2046에서 돌아온 사람은 없다고 한다.

낡은 안드로이드 왕정문은 구멍에 비밀을 속삭인다.



이 소설을 쓰고 있는 차우 (양조위)는 호텔 2047호에 투숙해 있다.

화양연화에서 장만옥과 이별하고 어느 새 느끼한 바람둥이가 되어버린 양조위는 이 영화에서 3명의 여인을 만난다.



먼저 공리가 연기한 수리첸.(수리진?)

화양연화의 장만옥과 같은 이름을 하고, 절대 장갑을 벗지 않는, 베일에 쌓인 여인.

(이 수리진이란 이름은 아비정전에서 장만옥의 배역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양조위는 과거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떠나보내게 된다.



그 후 홍콩에 온 양조위는 유가령(루루)를 만난다.

아비정전에 출연해 아비(장국영)과도 사랑을 나눈 적이 있는 댄서 루루.

동사서독에서 눈이 멀어가는 맹무살수 양조위의 바람난 아내로 나왔던 유가령이다.

검은 말을 붙잡고 흐느적거리던..;;;

(흠..그렇다면 화양연화에서 양조위의 바람난 아내로 등장했었어도 좋았겠군.. 조건만 맞았다면)



유가령은 왕가위 영화에서 늘 찬밥인 것 같다.

이번에도 그녀는 이렇다 할 사건도 없이 나오자마자 죽는다.(안드로이드로 출연하긴 하지만 아쉽게도 이 의상과 헤어스타일이 너무 안어울린다.-_-)

(그녀의 애인인가 뭐로 나오는 장첸은 왜 1분 정도 나오더니 유가령을 살해하고 그 뒤론 전혀 나오지 않는가..-_-;)



그 방에 장쯔이가 투숙하게 된다.

바람둥이 양조위는 장쯔이와 관계를 갖게 되지만, 다른 것은 다 빌려줘도 마음만은 주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호텔 사장의 딸 왕정문과 비밀을 공유하게 되고, 함께 소설을 쓴다.

하지만 왕정문은 캘리포니아가 아닌 기무라 타쿠라가 있는 일본으로 떠나버린다.

(참! 기무라 타쿠라의 포마드 기름에 딱 붙은 2대 8 가르마는 못봐주겠다. 앞으론 다신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왕가위가 영화로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애초에 서사 따위엔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그의 영화에서 스토리나 내러티브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세계는 한 권의 시집과 갖고, 그의 영화들은 시집의 부분 부분을 나눠가진 같은 시제의 연시들이다.



그는 스토리가 아닌 정황과 이미지로 말한다.



사랑은 또각이는 하이힐 소리와 함께 찾아오지만, 그것은 엇갈림 속에서 사라진다.

나와 함께 떠나지 않을래?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들은 작은 구멍에 말못한 비밀을 속삭이고는 묻어버린다.

과거는 그렇게 구멍 속에 묻힌다. 앙코르와트에서. 낡은 호텔의 2046호 벽 안에서. 안드로이드의 차가운 손가락 사이에서.

기억은 취생몽사 한 잔으로 지워져버린다.

우리들은 기억을 찾아 2046으로 가는 열차에 오른다. 2046은 미래이지만, 그곳은 또 과거다.

우리들은 엇갈림 속에서 끊임없이 레일 위를 돈다.

삶의 유통기한이 다 하는 날 발없는 새는 땅에 내려와 눈을 감는다. 그러나 사실 그 새는 처음부터 죽어있던 새다.



나는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

해 본적도 없고 이해도 할 수 없다.

만약 정말 세상에 사랑이란 게 있다면, 그것은 꼭 왕가위의 영화같을 것 같다.



그나저나 영화 본 지 몇 시간 안지났는데.. 벌써 대사들이 가물가물하네.. 늙었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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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SE - [할인행사]
스티븐 달드리 감독, 제이미 벨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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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겨울에, 나는 당시 서브작가였던 아이와 함께 회사에 남아 이 영화를 보았다.
레카가 14화까지 방영을 하고, 회사가 극도로 어려워져 직원들이 반 이상 나가고, 남은 인원들이 한달에 겨우 한 편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사장님은 14화 이후를 제작하느냐 마느냐 고심하다가 제작을 단행키로 결정했고, 남은 사람들은 꾸물거리며 조금씩 조금씩 15화,16화를 이어 만들었다. EBS에선 14화 이후에 다시 1화부터 재방영을 하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의 항의에 리플을 달아주기 바쁠 때였다.

예술을 하면 배고프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게 주체 못하는 끼를 감당 못해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 사람들 치고 배 안고픈 사람 거의 못 봤다.
가스에 쌀까지 떨어진 만화가들, 여기저기 옮겨다닌 서너개의 회사에서 모두 임금이 체불되었다며 노동청 드나들기 바쁜 애니매이터들, 시 한편에 만원도 안되는 원고료를 받으며 최저생계비 지급대상자가 되어 살고 있는, 그래도 문단에서는 꽤 알아주는 시인들, 1년에 벌어봐야 300만원 벌기도 힘들다는 소설가들, 겉으로는 고상한 발레단의 발레리나지만 한달 6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밤에는 무용 과외나 아줌마들 다이어트 재즈 댄스 강의 등의 알바를 뛰어야 하는 무용수들, 돈 없으면 전시회 하기도 힘든 화가들, 교통비도 안되는 푼돈을 받으며 주말도 휴가도 없이 24시간 내내 뛰어다니는 영화인들, 그나마도 여기 저기 원고료를 떼먹히고 남 좋은 일만 죽어라 하는 프리랜서들, 연예인의 꿈을 꾸며 죽어라 노력하지만 아무리 해도 뜨지도 못하고 나이만 먹어가는 어린 아이들….

예대를 나온 나는, 집안의 반대로 다른 학과에 지원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다시 입학을 했던 예술학도들을 많이 보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까지 꿈에 매달려서 결국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왠걸? 나는 그토록 하고 싶어하던 꿈도 석 달 월급 체불 못 이긴다는 걸 알았다.
뭐.. 요즘이야 이걸 하나 저걸 하나 못사는 건 마찬가지니까 차라리 잘 됐다 싶다. 문학 포기하고 경영과 간 친구도 똑같이 죽쑤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와야 그래도 글쓰겠다며 문창과 들어온 사람 기분이 좀 좋지 않겠는가. (안 그런가..? ^^)

자식이 예술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여기서 두 가지의 생각이 교차할 것이다. ‘예술? 그거 해서 입에 풀칠이나 하겠어? 그런거 시켜줄 돈도 없어.’ – 이 예술이란게.. 돈은 못 벌면서 들어가는 돈은 또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거 시켜주면 나중에 엄청 성공하는 거 아냐? 내 자식의 이 넘치는 끼와 재능을 썪히는 것도 아까운데. 적어도 나처럼 지긋지긋한 인생을 살게 하진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한다.

왜냐면, 예술을 선택해서 결국 성공하게 된 사람이란, 극 소수지만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그런 인물이 한 명 나온다면, 그 집안은 성공 한거다.

너무 옆길로 샜다. 다시 [빌리 엘리어트]로 돌아오자.
빌리는 탄광촌에서 파업 중인 한 광부의 아들이다. 그 집안엔 꿈도 없고 미래도 없다. 빌리의 형은 이미 아무런 비전도 없는 광부가 되었다. 아버지는 늙어가고, 엄마는 죽었고,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파업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빌리의 집은 점점 가난에 쪼들린다.
그러니까 찢어지게 가난한 광부의 집에 춤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 뭐..영화엔 그렇게 설정되어 있으니- 빌리가 태어난 것이다. -이건 꽤나 슬픈 설정이다 -
이제 빌리의 아버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자, 어떻게 할까?
사실 빌리가 춤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아버지로써는 알 수가 없다. 그냥 잘 추니까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발레 학교에 보낼려면 돈도 무진장 들어간다. 아버지와 형이 죽어라 광석을 캐서 버는 돈을 족족 부쳐줘야 하니까 말이다. 그 학교에 간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유명한 무용수가 된다 한들 돈을 많이 벌어서 그 동안 빚 다 갚고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볼 수도 없다.
빌리를 보자. 그다지 착한 애도 아니다. 아빠가 없는 돈에 권투 도장가라고 준 돈으론 엉뚱하게 발레 강습에 들어가고, (태연하게 어른 속이기) 발레라는 세계를 열어준 고마운 선생님한테는 무례하게 대들고, 입학 시험 때 만난 곱상한 학생한테 괜한 자격지심에 주먹까지 휘두르고, 시험을 보고 와선 괜히 집안 사람들에게 툴툴거린다.
아마 학교에 가서도 애들 꽤나 팼을 것이다. 부잣집 아이들에게 열등감도 느꼈을 것이다. 빽있고 돈 있는 것들한테 밀려 주연자리를 못따고 단역만 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결국 빌리에게 모든 것을 건다.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너는 떠나서 성공해라. 너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세계를 누비며 집안을 드놉혀라. 한마디로 입신양명 하라는 거다. (제일 불쌍한 건 형이다. 기껏해야 20대일텐데..)

빌리는 런던(?)으로 떠나고, 아버지와 형은 탄광촌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빌리는 멋지게 성공한다. 아버지와 형은 빌리를 보러 와서 눈물을 흘리며 기뻐한다. 그 한 순간을 위해 10 년 이상을 희생했을 것이다.(어쩌면 영화가 끝난 후에 갑자기 검은 가래침을 내뿜으며 병원으로 실려가 폐암 판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판타지를 실현시켜준 우화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의 반대를 받지만 곧 반대는 기대로 바뀌고, 그들의 따뜻한 희생을 밟고 일어서 결국엔 성공하는, 즉 대박을 날리며 날아 오르는 그런 꿈. 너는 안돼! 못해! 라며 야유를 퍼붓던 고등학교 담임이나 기타 등등 사람들에게 성공한 자의 미소를 지어 보이는 꿈.
그래서 구질구질한 많은 부분들은 알아서 생략되어 버리고, 빌리의 경쾌한 탭댄스와 천진난만한 모습, 춤에 대한 열정만 미화되어 보여진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대박의 꿈을 꾸고 있다. 누구나 언젠가 화려한 시상식에서 소감을 발표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속물 예술가의 모습 같지만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그 한 순간을 위해서 지긋지긋한 현재를 견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도 우리들의 부모님은 여기저기 자식 자랑을 하고 다니기 바쁘다. 우리 딸은, 우리 아들은 작가에요, 음악가에요, 화가에요, 하며. 언젠가는 우리들이 집안의 빚을 청산해주고 대궐 같은 아파트를 사 주기를 꿈꾸며.

휴. 어쩔 수 없지. 죽이 되든 떡이 되든 끝까지 해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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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일반판 - 재출시
박찬욱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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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두난발을 하고 15년동안 tv만 보며 인생을 송두리째 다시 복습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잘못 딸려온 젓가락 하나다. 그는 학교라는 감옥 안에서 16년동안 ‘세상’의 룰을 ‘학습’ 당하고,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으로 가공된 평범한 인간이다. 적당히 결혼해서 아이도 한명 낳은, 친구와 술을 마시다 개가 되기도 하는, 말이 많고 참을성이 없지만 그럭저럭 평범한, 그렇게 남들과 똑같은 규격화된 삶을 살다 죽어갈, 그저 그런 인간이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어느 비오는 날 보라색 우산의 남자가 자신을 찾아오리란 것을 알지 못했다.

현대사회는 정글이면서 관용과 평화로 위장된 유리세계다. 현대인들은 자기 안에서 솟아나는 모든 욕망과 분노와 서글픔과 고독과 시기와 질투도 부정하고 억누르며 ‘쿨’한 모습을 유지해여 하며, 적당히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차도 끌어야 한다. 단잠까지 방해받는 아침형 인간을 강요받으며 일과에 시달리다가도 주말엔 문화인이자 웰빙족이어야 한다.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분업되고, 모두의 삶은 획일화 되었다. 우리는 ‘분노’를 감추고, ‘복수’ 마저도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모두가 웃는 얼굴로 울고 있는 삐에로인 세상, 의미없는 거짓된 말과 이미지가 넘쳐나고 두꺼운 노래방책엔 사랑 노래가 가득하지만 정작 소통할 수 있는 단 한명의 친구도 없는 세상, 분노는 있으되 복수는 불가능한 세상이다.
우리는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가? 우리들은 기껏 상사의 헤드락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퇴근 후 레슬링 도장을 기웃거리거나 여자친구를 빼앗아간 유부남 편집장의 출판사에 취직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서 있다가 점점 그와 똑같은 속물로 변해갈 뿐이다.
그래서 이러한 현대사회에서의 ‘복수’를 다룬 박찬욱 감독의 전작 [복수는 나의것]은 관객들에게 ‘불편’한 영화였다.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복수’는 왠지 찝찝했다. 신하균은 장기밀매업자에게, 또 송강호는 신하균에게, 배두나 배후의 사나이들은 송강호에게, 복수의 화살을 날리지만, 그들의 복수에는 목적지가 없어, 화살은 허망하게 서로의 심장을 뚫고 모두가 자폭한다.
하지만 [올드보이]의 복수극은 약간 다르다. 전작이 복수를 날 것 그대로 내온 회였다면, [올드보이]는 노릇하게 구워내어 빨간색, 보라색의 진한 신화 소스를 뿌려 내온 스테이크다. 관객들은 레스토랑의 미장센에 취하고 사랑이라는 와인의 맛도 음미하고 개그도 툭툭 뿌려서 편안하게 영화의 맛을 감상한다.
이야기 전반에 걸쳐 나열된 신화적인 상징과 이미지들, 그리고 전체적으로 과도한 색감이나 광각렌즈의 빈번한 사용 등은 이 영화에 환타지를 부여하고 휴지처럼 들어가는 ‘유머’는 관객들의 긴장을 이완시켜준다. 그래서 관객들은 이 영화를 마치 신화처럼, 하나의 우화나 동화처럼, 옛날 옛적에 어느 나뭇꾼이 자기 누나를 죽인 사냥꾼에게 복수를 했더라는 전설의 고향처럼 그렇게 편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한 환타지를 걷어내면, 남는 것은 세상과 단절된 한 남자와 세상을 대신해 대표로 복수당한 또 한 남자의 이야기다.
우진은 올림푸스산처럼 높은 건물 꼭대기 펜트 하우스 신전에서, 자신과 똑같은 ‘오대수’를 점지한다. 오대수는 붉은 격자무늬의 네모난 자궁안에서 15년동안 ‘재구성’되어 어느 햇살 좋은날, 옥상에서 탄생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오대수가 아니며,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분노로 가득찬 몬스터일 뿐이다.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금기를 깨트릴 운명을 주고, 대수는 결국 신화처럼 정해진 운명의 길을 그대로 밟게 된다. 자신의 분신을 남긴 이우진은, 모든 분노와 고통과 슬픔을, 그리고 자신도 마저 풀지 못한 어려운 숙제를 오대수에게 전가시키고 고된 삶을 끝마친다. 이제 오대수의 유일한 소통자인 이우진은 죽고 없다.
그는 자기의 이야기를 풍문으로 만들어 버린 ‘타인’에게 자기의 그 고통을, 단절과 금기된 욕망과 상실의 고통을, 그대로 들려주고 위안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 너희라면 할 수 있을까?’ 우진의 마지막 문제. 이제 대수의 답안을 채우면 된다.
기억을 지우는 최면이 성공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장면의 최민식의 묘하게 일그러진 그 미소는 이렇게 써내려가고 있는 듯 하다. ‘아무리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어도 ’사랑할‘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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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 잔혹사 [dts] - [할인행사], (2disc)
유하 감독, 이정진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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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감독이 이소룡을 추억하는 액션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 정도의 정보만을 갖고, 딱 그 정도의 기대를 하고 이 영화를 보았다.
권상우나 이정진도, 한가인도 너무 가벼워 보여서 배우에 대한 기대는 없었고.. 포스터의 이미지만을 보고 내 맘대로 가볍고 유쾌한 액션+로맨스의 킬링타임용 영화라고 생각했다.
유하의 시를 좋아했었고 [결혼은 미친짓이다]도 재밌게 봤었기에 적어도 유치하진 않겠지, 유하가 대본을 썼다니 대사는 좋겠지..하고 봤다.

별 기대를 하고 보지 않아서 인지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꽤 잘만든 상업영화면서도 그다지 가볍지 않았다. -가벼운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
요즘같이 그야말로 내용이 텅 빈 가벼운 한국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그나마 건질 만한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약간을 슬펐다.

이 영화는 권법소년 권상우가 절대고수로 성장해 악을 응징하고 절세 미녀를 얻는 스토리가 아니라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한 소년이 '성장'하는 성장 드라마였다. 그러나 그 '성장'이 진정한 의미의 '성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순수했던 소년은 폭력에 노출되고, 믿었던 우정과 사랑에 버림받고, 온갖 부조리로 가득한 세계를 체험하면서, 자신도 폭력으로 '악'을 응징하기 위해 이소룡처럼 쌍절권을 휘두르게 된다. 그러나 그가 응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쓸쓸히 한 계절이 가고, 그는 지저분한 검정고시 학원에서 자신과 똑같이 낙오된 옛 친구를 만난다. 이소룡 영화들이 막을 내리고 성룡의 시대가 시작되며 소년들은 그렇게 한 시절을 마감한다.


친구 수정이의 리뷰에서, '대한민국 학교 다 X같아' 라는 대사가 너무 친절한 설명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내 주위 사람들 중에도 그 대사가 너무 튄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 말 한마디가, 권상우가 내뱉을 수 있는 마지막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좇같은 학교들을 모두 불 태워 사라지게 할 수도 없고 - 엄석대는 방화를 저질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 대한민국의 교육을 개혁할 수도 없다. 그는 그저 쌍절곤을 휘두르며 발악하고, 한마디 욕을 내지른체 그냥 떠날 뿐이다.

동생 나연이의 말처럼 그 뒤로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나도 폭력으로 가득했던 중,고 시절을 보냈다. 여중을 나왔기에 중학교 때는 좀 나았으나 - 여중에서도 폭력은 여전했지만 - 고등학교로 들어오면서 그 수위가 강해졌다.
하루하도 안 맞고 다닌 적이 없었고, 그렇다고 맞을 만큼 잘못했던 일도 없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선생님들로부터 쌍욕을 들어야 했고, 선생님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욕을 하고 다녔다.
나와 6년이나 차이가 나는 내 동생의 학교 생활도 다르지 않다.
나는 그런 선생님들이 싫어서 늘 선생님과 말로 싸웠다. 가만히 있으면 화를 당하지 않을 것을 꼭 나서서 더 혼났다. (그렇다고 내가 뭐 장금이 같이 의협심이 있다거나 호기심이 많다거나 한 건 아니었고..나도 어느 정도는 선생님과의 싸움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우리들의 학창시절은 암울했다.
우리 교복은 회색이었고, 그래서 모두의 얼굴도 잿빛처럼 우울해 보였다. (그때 아마 내가 쥐떼들이라는 시를 썼었던 듯)
아이러니 하게도 학교 건물은 병아리색과 밝은 에메랄드 색이었다.

학창시절이 즐겁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기억력이 안 좋은 사람들일 것이다. 고통의 기억은 희석되고, 당시의 기억은 좋은 부분만 남아 추억이 되어 버린 사람들.

그러나 나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고등학교 입학 첫날, 처음 7교시를 모두 치루고, 나는 이곳이 정신병원이 아닐까, 내가 무슨 부조리극을 보고 있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이상한 곳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그곳에서 3년동안 갇혀 지내야 한다는 현실을 참을 수 없어 3월,4월 두달을 지옥처럼 보냈다.
그날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이, 이 영화를 보며 다시 떠올랐다. 그 재현만으로도 잘 만든 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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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네이션 2 [dts] - [할인행사]
데이빗 R. 엘리스 감독, 알리 라터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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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무서운건.. 귀신도 악마도 아니고 바로 '사고'구나.
재밌게 봤지만.. 1편에 비해서 작위적이다.
이야기는 엉성해지고 사고장면은 생생해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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