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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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초능력적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모방범 사건 이후 9년이 흐른 어느날 겨우 그 사건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프리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마헤하타 시게코의 사무실로 하기카니 도시코라는 아주머니가 방문한다. 도시코는 시게코에게 몇달 전 교통사고로 죽은 늦둥이 아들 히토시에게 신기한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들이 죽기전에 그린 그림이 아들 죽고 난 후에 알려진 살인사건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보라색 박쥐 풍향계를 단 집안에 있는 회색 소녀의 모습...이 한장의 그림으로 이 사건에 대한 조사는 시작된다. 소년이 그린 그림은 정말로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 집의 모습과 유사했다. 흔히 볼 수 없는 박쥐모양의 풍향계가 그러했고,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 체 15년이라는 시효가 끝나고 나서야 발견된 소녀의 시체가 바로 그 거실에 묻혀있었기 때문이다. 시게코는 그림과 사건사이에서 히토시가 과연 16년간 침묵속에 묻혔던 사건을 누군가에게 얻은 정보로 알아낸 것인지, 아니면 초능력-사이코메트리라고 하는-을 통하여 알아낸 것인지 조사하기 시작한다.  

한 소녀의 죽음.. 그녀의 죽음은 처음부터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부모로부터 살해당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였지만 그 시체를 자신의 거실바닥에 묻었다는 점. 16년간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다가 우연찮은 화제사건으로 집이 타버리자 급히 경찰에게 16년전의 살인과 사체유기에 대해 순순히 털어놨다는 점. 그리고 이것을 아무로 연고도 없는 히토시가 누군가의 기억을 통해 엿보았다는 점이였다. 이런 석연찮은 점을 시게코는 시게코 대로 나는 나대로 시게코를 따라 조사하고 추측해나갔다.  

   
  부모로 부터 살해당한 소녀-자기집 거실에 묻히다  
   

 아카네는 비행소녀였다. 그것도 아주 질이 나쁜.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소녀.. 처음부터 악마의 본성을 타고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차가운 피를 타고난 소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고 그녀를 낳고 기른 부모가 과연 그녀를 죽일 수 있을까? 우연한 실수나 (뻔한 스토리리겠지만 뭐 밀치고 싸우다 보니 계단에서 굴렀다던가 하는) 제3자의 살인을 뒤집어 쓸수 밖에 없는(어린 동생의 실수로 죽임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동생의 기억이 없어지는)등의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시체를 묻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자식을 죽인것만으로도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을 텐데, 남아있는 자식을 위해 시체를 유기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두 부모의 높은(?) 침착성과 뻔뻔함에 칭찬을 해줘야 하는가! 하는 의문점이 날 괴롭혔다. 정말로 세이코에 의해 아카네는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세이코마저 잃을 수 없었던 부모들이 모든 죄를 자신들이 뒤집어 쓰는 것으로 하고 시체를 유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리 아카네가 질투의 대상으로 세이코를 대했다고 해도 친언니, 친자매의 끈으로 연결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세이코의 아카네를 향한 지나치게 차갑고 냉정한 마음도 이러한 나의 생각을 뒷받침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생각은 너무 쉬운 추측인 동시에 너무 뻔한 설정이였다. 이러한 설정을 따라갈 미유키여사가 아니더라. 

   
  왜 16년의 세월동안 비밀을 묻었나
 

 16년의 시간.. 일본의 살인사건 시효는 15년이라고 한다. 아카네가 죽임을 당하고 이 사실이 수면아래 잠들어 있는 시간 16년동안 남아있는 가족은 어떤모습으로 살아갔을까? 언니가 가출했다고 16년을 믿어 온 세이코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이 진실은 그녀로 하여금 그 시간만큼의 강도로 진실을 알고싶은 강한 욕구를 불러들이기에 충분했다. 집의 화재로 인해 이 사건이 밝혀졌지만 사실 땅에 묻은 그녀의 시체는 단순히 화재로 인해 밝혀질 만한 것은 아니였다. 얼마든지 더 숨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고통속에서 함구해 오던 도이자키 부부가 자신의 죄를 밝힌 것은 어찌보면 더 나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자기 자식을 죽여놓고 시효가 끝나자 마자 그동안의 죄책감을 덜어보고자 자수를 하다니.. 세이코를 위해 사실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다. 법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죄를 묻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세이코는 이 사건으로 이혼을 당하고 친구를 잃고 더이상 평범한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 정말로 세이코를 위했다면 시효가 끝나자마자 밝히는 행동따윈 못했을 것이다. 나처럼 그들의 행동을 더욱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텐데, 아니 그들 자신이 더욱더 이중의 죄책감을 지고 살아갈 것 임에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도이자키부부가 자수를 한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 또다른 이유에 도이자키 부부말고도 누군가가 이 살인사건을 알고 있는 제3자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다. 그로부터 히토시의 크레파스가 움직였을테니... 

   
 

 실타래처럼 얽힌 사건들

 
   
아카네의 죽음. 부모의 살해. 진실을 알고 싶은 세이코. 사실을 알고 있는 제3자의 존재와 그의 비밀. 누군가를 통해 사건을 엿본 히토시의 능력. 진실을 쫓는 시게코. 이 6면이 엉클어진 큐브를 맞추는 것처럼 한면 한면 맞춰지고 비로소 모든 면이 모두 완벽히 맞춰졌을 때 조금을 시원하고,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전자는 아마도 복잡한 실타래를 풀었기때문에 느끼는 희열이고, 후자는 어쩌면.. 남은 이들에게는 고통이 된 그 사건이 아카네에게는 오히려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 슬픔, 그토록 갈구하던 애정에 대한 욕구를 잊은체 낙원에서의 삶이 시작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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