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공학과 남녀합반은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차와 맞먹는 차이가 있다.  남녀공학은 단지 남학생 여학생이 있는 학교를 뜻하지만 남녀합반은 남녀공학중에서도 극히 선택(?)받는 학생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짐이였다. 남녀합반의 선택권에서 탈락되어진 평범한 학생들은 남녀합반을 마치 지구의 해바라기가 태양을 바라보듯 동경했지만 실상 남녀합반인 친구들에겐 활활타오르는 태양만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불편한 생활이였다. 특히 체육시간을 전후로... 

우리학년은 모두 남녀합반은 아니였다. 총 7개의 학급 중 (7개 학급이라고 작은학교라며 지금의 학교와 비교하면 곤란하다.  한반에 적어도 52명 이상씩은 꽉꽉 채워넣어 오죽하면 절반의 사물함을 복도로 내다놓았으니까) 딱 한반만 남녀합반이였고, 나머지 반은 모두 성별에 따라 나뉘어져 있었다. 학기초 일부 배포좀 있는 학생들은 남녀합반의 선택받은 남녀출입권을 교묘히 이용하여 책을 빌린다던가, 체육복을 빌린다던가 하는 핑계를 삼아 남녀합반을 만남의 광장으로 사용하였으나 남학우반이나 여학우반은 선생님 심부름이라하여도 감히 들어올수가 없었다. 수십명의 여학생들 속에 있는 남학생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지 않나! ㅋㅋ 

각설하고 1998년 4월 1일. 만우절. 한일전이 열리던 그날! 다른 경기도 아니고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두 국가간의 축구경기를 앞두고 우리 1학년 350여명과 2학년 및 3학년 선배들까지 가정에서열띤 응원을 할 수 있도록 주장하였으나 이러한 원성을 무참히 묵살하고 야자는 진행되었다. 슬슬 경기시간이 되자 갑작스럽게 스피커에서 한일전을 시청해도 좋다는 방송이 나왔다. 이럴꺼면 진작 집에 보내주지! 사실 원래는 야자 진행하고자 했으나 감독중인 선생님들은 하필 그날 야자감독이라는 이유로 한일전을 놓치기가 아쉬워서 TV앞을 전전긍긍하다가 이럴바엔 속편하게 '얘들이 하도 보고싶어해서 공부가 제대로 안된다'는 것을 핑계삼아 자신들의 TV시청권을 사수하려던 것이였다. (후일담이지만 승률을 두고 돈내기까지 했다는 것이 어는 수업시간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흘러나오기도 했었다.)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모든반에서는 "우와~!"하는 우뢰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으나 우리반만은 "에이~뭐야!"하는 탄성이 나왔다. 그도그럴것이 하필 우리반 TV녀석이 아주!! 완전!! 지대로 맛이 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반장은 감독선생님을 찾아가 "이럴꺼면 집에 보내주시지. 우리반 TV고장나서 못본단 말이예옷!"하고 하소연을 하였고, 형평성을 고려해 우리는 그날 야자시간 금녀의 반인 3반(남학생반-그날 야자감독 쌤네 반임과 동시에 축구로인해 절반가량의 학생들이 야자를 튀어 가장 널널했던 반)출입권을 얻었다. 확실히 남녀공학중학교를 나온 여자얘들은 3반은 이제 우리반! 인듯이 아무렇지 않게 쏟아져 들어가 축구를 보았지만 여중을 나온 대다수 학생들을 비롯하여 특히나 부끄러움쟁이 초연이는 내옆에 꼭 붙어앉아 연신 뺨을 붉게 밝히고 있었다. 야. 야. 아무도 너 인식하지 않거든.. 너만 왜 난리니? 

역시나 맨 뒷줄과 교실뒷편의 일부 사물함 위는 남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명당자리는 주인이 빨리 나타나는 법이지.. 그렇다면 나도! 뭐니뭐니해도 TV시청은 뒤에서 관림해야 눈도 아니 아프고, 목도 아니 아픈지라 남학생들이 깔려있는 뒷자리를 향해 가는데 초연이 녀석이 자꾸 내 교복 윗자락을 땡기며 '앞에서 보자'고 속삭여댔다. 아 녀석. 축구보자니까 왜 못생긴 지뢰들을 인식하고 그러는 거야! 아니면 지 혼자 앞에서 보던가 왜 졸졸 따라오면서 앞에서 보자고 하는거임?! 나는 녀석의 작은 외침을 깨끗이 묵살하고 비어있는 사물함 위로 껑충 올라갔다. 초연이는 활활타는 얼굴을 한 채 내옆에 겨우 올라와 앉았다. 거참 결국 어디 혼자 가지도 못하고 붙어있을 것을 앙탈은...그리하여 나와 초연이 몇몇 여학생들이 무수히 많은 지뢰들 사이에 자리를 잡아 한일전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날 난 여자와 남자의 놀이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새삼 깨달았다. 온국민이 사랑하는 축구의 룰조차 제대로 모르는 여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이였던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시절 쉬는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방과후에도, 주말에도 축구를 하면서 놀던 터라 비록 동네축구 정하는게 룰이였지만 기본적인 축구룰은 알고있었다. 내가 자연스레 알고있는 축구룰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어!하고 생각했던 나의 착각은 그날 완전 산산조각이 났다. 대다수의 여자들은 축구를 보기만 할뿐 아는 것음을.. 그저 남의 골문에 들어가면 우와!!  우리 골문에 들어가면 아~! 우리 선수가 볼을 잡으면 아싸!! 남의 선수가 볼을 잡으면 우씨~!한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나 초연이는 당최 공부나 할 것이지 왜 여기 앉아 저걸 보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어머 우리선수 왜 경고 받아." / "백테클했잖아. 심판이 백테클에 민감한가보지." 

"어머 우리 공인데 왜 저쪽팀 그냥 줘?"/ "오프사이드잖아~!"/ "옵뭐? 그게 뭔데?"/ "아~! 진짜 절로 가서 봐! 너 땜에 중요한 장면 다 놓치잖아!' 

그녀의 궁금증이 증폭될수록 나의 짜증은 심해져만 갔다. 그 당시 나는 심적으로나 표면적으로나 우리나라의 승리을 위해 기도했지만 사실 축구천재 나카타의 현란한 기술에 빠져있던 상태였다. 하필 그가 적극적인 모션을 취할 때마다 녀석의 질문이 쇄도하는 통에 나는 도통 나카타의 감격의 드리블에 집중할 수 가 없었다. 점차 그 녀석의 질문이 많아짐에 따라 나는 자연스레 눈으로는 화면을 보고 입으로는 녀석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 차라리 약아빠진 녀석이라면 내치기라도 할 것을.. 이건 뭐 순진해서 그럴수도 없고.. 

전반전이 끝나고 규현이가 슬쩍 뒤를 돌아보고 묻는다.   

"너 축구 즐겨보냐?" / "왜?"  

"아니, 여자애치고는 많이 알아서^^;"/ "관심의 차이지뭐. 여자애라고 꼭 연예인에만 미치는 건 아니니까." 

 "아 맞다! 너 초등학교때 니네반 남자애들 사이에서 축구하던 애구나!" / "그래서?!."  

느닷없이 제형이라는 아이가 끼어든다. 

"그래서 니 다리가 튼튼한 거구나 ㅎㅎㅎ."/ "하하하" 난 일부러 과장된 웃음을 지으며 살기가득한 눈을하고 녀석을 향해 살며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올려줬다. "흠흠.."녀석은 재빨리 TV로 시선을 옮겼고, 난 후반전에도 초연이의 캐스터 겸 해설자가 되어야했다. 그날 나는 2:1의 승리에 너무 기쁜나머지 약 40분갸량 남은 야자시간동안 흥분의 도가 속에 헤엄치고 있었다. 나카타도 멋있지만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황선홍아자씨가 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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