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훔친 남자
후안 호세 미야스 지음, 고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은 말한다. 그가 훔친 마누엘의 그림자에 대해..
하지만 난 말한다. 그가 되찾은 그의.. 훌리오의 그림자에 대해..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커다란 트루먼 쇼의 무대이고, 더 나아가 나의 행동 하나하나는 잘 짜여진 대본 그대로를 옮기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따라서 티비속의 여러 채널들처럼 지금 내가 아닌 곳에 또 다른 내가 마치 재방송처럼 혹은 다른 작품 속에 있는 것처럼 세상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 지구를 다 돌아보면 어디선가 나와 같은 누군가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나와 같은 누군가를 찾기 위해 지구를 다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바로 나와 똑 닮았으면서도 항상 나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내가, 내 발에 걸려 길게 늘어 선 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가끔 나의 역할이 마음에 안 들 때가 있다. 너무나도 현실적이라든가.. 화를 잘 낸다든가..나 홀로만 어려운 곤경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될 때라든가.. 그래서 나는 역할을 바꾸기로 했다.. 또 다른 나를 통해서.. 나의 그림자를 통해서..

 

 

홀리오는 이런 생각이였을 것이다. 사랑하지는 않아도(자신도 알고 있다) 믿고었던 아내의 배신으로 인해, 아내의 배신의 주체로서(당연히 미워해야 정상이지이지만)닮고 싶었던 마누엘의 그림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마누엘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 아내로부터의 이별통보를 받은 그는 마누엘의 집으로 숨어들기 시작하면서 평소 자신이 동경해왔던 그리고 그의 아내가 항상 두둔해왔던 마누엘처럼 숨 쉬고 싶어진다. 물론 아직까지 마누엘은 살아있고 그의 육신 또한 답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존재함이 분명하기 때문에 훌리오는 그의 그림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항상 꼭 끼어 답답하던 자신의 그림자가 아닌 마누엘의 그림자가 되어 거울의 뒷편에서 그의 자유스러움(돈 걱정없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다고 비난했던)을 만끽한다.

하지만 마누엘과  부인의 관계를 알고 난 후(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그는 마누엘의 그림자가 더 간절했을지도 모르지만 훌리아에게 들려주는 그림자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은 자신의 그림자이며, 남의 그림자로 사는 삶은(혹은 남의 그림자를 훔쳤을 경우 그림자의 삶 역시)결국은 고통으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자신이 지은 이야기이므로 확인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래서 결국은 그는 마누엘의 그림자를 마누엘과 함께 묻었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자를 다시 찾아 입고 그의 무대로 되돌아 왔다. 비록 그는 진실을 모두 알지만.. 그의 자리.. 그림자가 아닌(사실은 마누엘 자신도 그를 훌리오의 그림자-남편이 아닌 남편을 대신한 남자일뿐이므로-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의 메일을 통해 들어난 훌리오에 대한 비난을 가장한 질투들 과 라우라가 그에게 집착을 보이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면)실제의 자리로 되돌아 온 것도 사실은 아내의 간통보다도 그 자리 자체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가 항상 꿈꿔왔던 아버지라는 주인공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것 혹은 다른 사람을 동경하는 것은 누구나가 꿈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처럼 행동하고 그 사람처럼 인생을 살아가려다 보면 정작 나는 없고 그의 그림자만 있을 뿐이다. 내가 존재하지만 실제적인 내가 아니라는 것.. 그것은 무대위에서 남의 삶을 흉내 내는 배우들의 연기보다 더 감흥을 얻지 못한다. 오늘 나의 그림자를 살펴보자.혹시 참된 나와 나의 그림자가 어딘가 다른 부분이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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