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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의 요리 - 요리사 이연복의 내공 있는 인생 이야기
이연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유난히 시작하기 어려운 책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책. 어려운 책이라 부담스러워서도,
아니면 읽기 싫은데 억지로 읽어야 하는 상황이라서도 아니다. 그냥 오래오래 표지만 쓰다듬으며,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는 게 만드는 책. 읽는
도중에도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아까운 그런 책 말이다.
요즘 나는 누군가의 삶을 듣는 일이 조금 즐겁다. 특히나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의 삶에 대한 용기와 확신까지 생기는 것 같다. '아, 저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는구나.' 하면서, 스스로
더욱 다짐을 하는 것이다. 요리방송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쉐프님들이 여러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연예인들 못지 않은 말솜씨,
화려한 요리기술. 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는 '이연복 사부의 묵묵한 장인정신'이었다. 그저 매체 속에서 꾸며진 것이 아니라, 모든 순간 깊은
애정과 진심이 드러나는 것 같아 계속해서 눈길이 가는 것이다.
...조리법을 담은 책부터 내는 게 뭔가 개운치 않았다.
그것보다는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이야기, 음식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요리사로 살아오면서 겪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누구누구의 특별한 조리법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더 오랫동안 바삭하게 느낄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강해지면, 그런 조리법은 스스로 궁리하게 된다. 방송에서 레시피를 공개할 때면, '그런 비법을 다 말해주면 어떻게 하냐'고 한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면 된다. (149p.)
이런식이다. 음식을 파는 사람이 아니고, 요리를 하는 사람. 더 맛있는 요리로 가게의 매출을
올려야지가 아니라, 더 정직하고 정확한 요리로 사람들이 '그 음식'의 본연의 모습을 알고 좋아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나를 위함이 아닌, 하지만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는 그 마음. 그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유가 '중식 요리사들이 자부심을 갖기를, 중식 요리사에 대한 시선이
나아지기를' 하는 마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요리를, 중식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단순히 자신의 일에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돈이라는 것에서 마음을
멀리두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 일은 요원해진다. 당장 먹을 것, 입을 것이 부족해지면 마음이 다급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멀리하려고
해도 손에 잡힌 한 푼이 아쉬워지면, 애정을 비집고 자꾸자꾸 그 생각이 나게 되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자꾸 편법을 찾게되고, 어느새 애정은
생사가 걸린 업무로만 변해버리는 것 같다.
나는 그러한 생각을 밀어내고 싶은 마음에, 더욱 이러한 책들을 찾게 된다. 돈을 벌기 위해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기합리화를 위해서가 아니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진실된 애정, 그 예의를 잊고 싶지 않아서. 나 자신을, 나의
사명을 똑바로 바라보고 오롯히 집중하고 싶어서. 그렇게 더 치열하게 살아가고 싶어서. 그의 손에 잡힌 중식도만큼이나 묵직한 그의 이야기가 좋다.
새로운 일을 준비하면서, 화려함과 완벽함을 궁리하며 끙끙대고 있던 나에게, 어떤 길로 가는 것이 올바른지, 나는 왜 그 일을 하려고
하는지, 급한 마음에 잊혀지고 있던 나의 가치와 다짐을 깨닫게 해준 그의 이야기가 참 고맙다.
음식을 잘 만들겠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았나?
나는 음식을 할 때 어떤 마음일까?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이연복이라는 사람이 요리를 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198p.)
음식 장사의 특별한 비법 같은 건 나는 잘 모른다. 내가 만드는 요리에 대한 믿음. 그걸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실력, 우리 가게를 찾을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그것만 있다면 '장사가 될까? 안 되면 어떻하지?'라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나부터 돌아본 다음에 할 고민이다. (24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