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내성적으로 살겠다 - 내성적인 당신이 변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이유
에비스 요시카즈 지음, 강한나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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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순수하면서 동시에 자극적인 제목이다. 함부로 입밖에 내서는 안될 것 같은, 내 얼굴이 다 붉어지는 듯한 그런 제목. 이렇듯, 내성적이라는 단어는 세상에 당당하지 못하다. 내성적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만큼이나 소심하고, 자랑스럽지 못한. 이해받지 못하고 수용되지 못하면서, 억울하다고 이해해달라고 말도 함부로 하지못하는 그런 사람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내향성'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그리고 나도 '언제까지나 내성적으로 살겠다'고 소심하게 외친다.

 

 사실 나도 한번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봐야지 싶은 마음에 평상시보다 말을 많이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역시 잘 안 됐다. 무리해서 이야기하려 할 수록 내 결점이 들통나버린다고 할까. 오히려 평상시의 나로 있는 편이 더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60p.)

 이것이 일반적인 내향성 사람의 모습이다. '내가 틀렸구나, 나도 외향적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하지만 이것은 고기를 씹어먹고 있는 토끼를 보는 것 만큼이나 어색하고 이상하다. 내향성이란 틀린 것이 아니고 조금 다른 것이다. 고쳐야 할 것이 아니고,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역시 나는 인간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176p.)

 사람들은 내향성에 대해 오해한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내향성의 사람들까지도 자신의 성향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향성, 내성적 성격이란 단지 소심하고 조용하고, 남들과 잘 못 어울리는 반사회적인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좋아하고, 깊이있게 이해하고 수용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다만 내향성의 사람들은 들뜸의 역치값이 조금 낮은 것 뿐이다. 외향성의 사람들이 100만큼의 활기가 있어야 신이 난다고 하면, 내향성의 사람들은 1~10정도의 활기로도 충분히 즐거움을 느낀다. 오히려 그보다 높은 자극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불편함을 느끼는 데, 이 부분이 내향성의 사람들로 하여금 반사회적이라고 오해를 받도록 한다.

 

 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내향성의 멋진점에 대해서 배우게 되기보다는 '성향'이라는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란 으레, 모순스러운 가치관을 동시에 갖게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내가 쓴 글을 읽듯, 감탄스러운 공감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내성적'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달고 쓴 글이라고 하기에는 갸웃갸웃 하게 되는 단순히 자신의 '가치관', '행복론'을 이야기하는 글들이 자주 발견되었다. 정말 좋은 글들 이지만, 제목아래 집합을 하기는 조금 의아하다고 할까.

 

 그래도 차별적 의사표현을 강하게 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외향적인 사람과 내성적인 사람, 돈이 많은 사람과 가난한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모두 똑같은 '인간'이다. 그것만큼은 항상 기억해둬야한다. (39p.)

 그래서 오히려 제목에 갖혀서 읽기보다는, 좀 더 포괄적이고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 책을 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내향성이니 외향성이니 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 정한 하나의 틀이 아닐까. 혈액형별 성격이나 관상등이 100% 맞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내향성과 외향성을 구분짓는 일도 비슷한 것 같다. 내향성 사람이라고 모두 같은 내향성이 아니고, 외향성 사람이라고 모두 같은 외향성이 아니듯,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나와는 다른 수 많은 사람들을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아닐까. 그냥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그들의 입장을 들어보고,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조금 지루하고 심심해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향성의 사람들도 모두 하루하루의 자그마한 행복과 즐거움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외향성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당신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당신의 존재와 미소 하나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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