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트렌드 2017 : 적당한 불편
김용섭 지음 / 부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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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트렌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올해 초였다. (사실 트렌드와 시사 등등의 최신 정보를 담은 여러 용어들을 전혀 몰라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와버린 경향도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수험용의 시사, 이슈, 상식을 다룬 월간지들도 많지만, 역시 책의 형식이 가장 익숙하다. 트렌드 도서하면 역시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가 가장 잘 알려져 있긴 한데, 어쩐지 작년 이맘때 구입을 했다가 실패를 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글이 읽혀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 발견한 책이 이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 트렌드가 곧 밥벌이가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쪽의 제목이 좀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 책이 그냥 재미삼아서 읽을만큼 장난스러운 내용을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체 글의 중심이 조금이나마 '나의 일상'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느낌일까. ​

 내가 트렌드 도서를 읽는 이유는 단 하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내가 최신의 트렌드나 경제동향따위를 공부해서 사업을 벌일 예정인 것도 아니고, 사실 그런 삶은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거리감이 느껴지는게 현실이다. ​단돈 1,2만원을 소비하는 것도 계획을 해야하는 현실에서, 1,2억이 우습게 오가는 책 속의 상황은 역시 현실같은 느낌이 없다. 귀여운 표지와 글꼴과 달리 그런 상세한 정보들이 370페이지에 걸쳐서 서술되어 있다. 앞으로의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그런 해석들도 틈틈이 보인다.

 다소간 모든 걸 너무 '돈'으로만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불쑥불쑥 들지만,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이던 어떤 현상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풀어놓은 대목을 읽을 때면, 새로운 시각이 열리면서 안도가 들기도 한다. 흐트러지고 무너지고 엉망이 되어가는 현실이 아닌, 그냥 자연스러운 변화이며 나름의 이유와 질서가 있는 현상이라는 이야기는 새삼 나의 편협한 시각을 깨닫게 해주기도 했다.

 <라이프 트렌드>라는 이름처럼, 이 책은 우리 대부분의 삶과 꽤 가깝다. 갑자기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미니멀라이프, 청년실업의 현실에 부딧혀 증가하는 캥거루족, SNS를 통한 관계와 같은 생활의 변화들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사업 아이템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포인트를 집어주고 있다.

 단순하게는 우리가 이미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해 오는 것들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지만, 급격한 변화에 휩쓸리다보면 내가 어떤 흐름에 휩쓸리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유행을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기 십상이다. 어떤 원인이 이런 유행을 만들었는지, 나는 지금 어떤 흐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또 우리를 둘러싼 트렌드를 주도해 가고 있는 것은 누구인지 조금 자세하게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 트렌드를 잘 아는 것은 사업자의 입장에서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비자가 똑똑해야 하는 시대, 단편적이고 매혹적인 광고에 속아 후회하지 않으려면, 소비자인 우리도 그들의 정보를 잘 알 필요가 있다. 그들을 연구하고 공부할 수는 없을 지라도, 이런 책을 통해서라도 정보들을 잘 취사선택한다면, 좀더 능동적인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에도 꽤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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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가 없어! 한림 지식그림책 7
이누즈카 노리히사 글, 오시마 히로코 그림, 강방화 옮김 / 한림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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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어린이 그림책이, 과학적 지식을 다루어봐야 얼마나 담겠어? 라는 생각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 ​게다가 제목을 보면, 과학책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런데 책을 펼쳐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쩌면 어지간한 성인용 책보다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의 구성이 좋았기 때문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책의 내용이 어렵거나 너무 깊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꼬리'라고 하는 주제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나는 대학에 와서야 알게된 것을 여기서 만나게 되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이 짧은 책 안에 무작정 단편적인 지식을 전달하므로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탐구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도움으로서, 이 책 이후의 공부까지도 돕고 있다는 점이 매우 눈에 띄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동물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은 덤.

 과학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지겨울 정도로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을 나누지만, 척추동물은 모두 꼬리가 있다는 것, 그런데 꼬리가 없는 동물들이 있다는 것,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진화적, 발생적 이유까지 파고드는 경험은 드물지 않을까. (진화생물학을 들었지만, 그때조차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적은 없었다.) 개괄적인 정보지만, 이런 많은 것들을 이 얇은 책 한권에 매우 쉽고 효율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부모님이 함께 읽기에 좋은 책인 것 같다. 아마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을 '왜 인간은 꼬리가 없을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것이 궁금해져서, 아이와 함께 더 많은 것을 조사해보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고.

 ​아, 그렇다고 이 책이 성인용 교양도서로 적합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호기심 많은 어른분들은 좀더 자세하게 쓰여진 교양서를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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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폭력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 - 화를 참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타다 다마미 지음, 이소담 엮음 / 라이프맵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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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꼭 폭력 또는 공격이란 단어로 표현했어야 했나...

​ 최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단어 중에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단어가 있다. '혐오'. 단어의 발음 자체만으로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나쁘게 바꾸어버릴 것 같은 소름끼치는 이 단어가 어떻게 일상적인 단어가 되어버린 걸까. 혐오라는 단어가 나에게 주는 느낌은 그렇게나 극단적이고, 아주 극소수의 상황에서나 쓰일 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의 '혐오'는 생각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내포하고, 그래서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까지도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정신적 폭력은 가해자도 폭력에 당하는 피해자도 '이것이 정신적 폭력'이라고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 이 책에서 이야기하길 정신적 폭력에서는 가해자조차도 자신이 상대에게 공격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가해자의 다섯유형인 부인형(자신의 결점을 부인), 이득형(불쾌함을 표현함으로서 챙김받고 싶은 마음), 치환형(엉뚱한 곳으로 불쾌감 표출), 선망형(부러운 마음을 비아냥으로 표출), 자기애형(타인을 깍아내림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을 살펴보면 더 그 사실이 극명해진다. 결국 정신적 폭력이라는 것은 '의도'를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내면의 어떤 욕구불만이 겉으로 표출된 것,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화를 입힌 것이란 소리이다.

 물론 의도의 여하를 떠나서, 피해자가 이로 인해 화를 입었다면 이것은 일종의 '가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하면 이것을 '폭력', '공격'이라는 날카로운 단어를 선택하여 '의도치않게 가해자가 되어버린 자'들을 몰아세웠어야 했는지가 찝찝한 의문으로 남는다.

세상을 전쟁터로 만들려는 것일까.

 현대사회는 '모두 각자의 가치관을 지녔다.'는 의미에서 다양화된 사회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개인이 다양한 가치관을 이해하거나 타인의 가치관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어려워졌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관'이라는 껍질 안에 숨은 채로 타인의 가치관에 접촉하거나 이해하려는 행위자체를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 말을 바꾸자면 정신폭력 가해자의 특징인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사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가해자의 의도야 어찌되었건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자신이 소진되는 상황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가해자에게 강하게 맞대응하며 몰아세운다면 그것은 결국 전쟁을 벌이자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하다못해 개구리도 끓는 물에 집어넣으면 튀어오르는 법이다. 이해없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양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책은 초반부에서 '독자를 피해자로 만드는 실수'를 피했어야 했다. 이미 책의 전반에서 그것을 알고 있는 듯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왜 저자는 글의 순서를 이렇게 정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의문스럽다.

 ​상위층이 하위층의 아픔을 쉽게 이해할 수 없듯, 자신의 고통으로 똘똘 뭉친 하위층 역시 상위층의 입장을 쉽사리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다. 나의 아픔과 억울함이 '타인의 탓'인 이상, 더 이상의 이해란 스스로에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그들을 이해해주어야 하느냐'라고 이야기하지만, 진정 양 계층간의 대화가 없이 이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까? 이해를 하고 인정을 해준다는 것은 결코 나와 그들이 같아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냥 단지 그들을 더이상 매몰차게 밀어내고 미워하지는 않게 된다는 의미이다. 소통이다.

 

 만약 당신의 애인이 당신의 말은 들어주지도 않은 채, 자신의 생각만 끊임없이 강한 어조로 강요한다면 당신은 그(녀)의 이야기를 애정어린 마음으로 들어줄 것인가?

나는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라는 생각

​ 이런류의 책의 저자들은 '당신은 아픕니다'라는 말보다는 '당신 옆의 그 사람도 아픕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편이 좋다. 그리고 독자도 '나는 아프다'라는 생각보다는 '우리는 모두 아프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악의를 품고 타인을 공격한다면 몹쓸 짓이지만, 정신적폭력은 그럴 마음이 없는데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므로 '혹시 내가 가해자는 아니었나?', '생각지 못하게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거나 과도한 압박을 주고 있지 않았나?'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신중히 살펴보아야 한다.

​ 정신폭력의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이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주장해야 하는 것' 이외에는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부드럽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 뭔가 찝찝한 시작이었지만, 그래도 이 책은 둥글게 커뮤니케이션 하기를, 서로를 이해하기를 권유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좁혀가고 있다. 실제로 생활중에 소통이 부족하여 서로간에 감정의 폭이 생긴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많은 문제들은 '한마디'의 말로 해결된다. 왜 우리는 서로를 넘겨짚으며 오해하고 미워하는 걸까. 오해를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쉽지 않지만, 우리의 하루하루를 한결 풍족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가치가 충분하다.

​정신폭력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먼저 나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 깨달음에서 정신폭력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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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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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언제, 왜 술을 마시는 걸까. 알코올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내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쓴다는 건 역시 말이 안되지만, 간만에 읽은 단편소설집이 몰입도가 너무 좋아 소개를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길지 않은 경험에 의하면, 슬퍼서, 괴로워서, 힘들어서 그리고 즐거워서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는데, 아마도 술을 마시면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은 흥청망청 취해버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물론 정말 깔끔하게 잘 마시고, 즐겁게 잘 취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독, 어느 모로도 씁쓸한 그것이 나는 싫다.

​ 이 책은 7편의 단편들로 이뤄져있고, 그 모든 글이 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면서도 어떤 글도 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하지만 모든 그들의 삶은 '술에 취한 듯' 비틀비틀거리며 흘러간다. 갑작스레 찾아온 병,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 연인과의 이별 ..... 그리고 오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잘못이 아니며, 그렇다고 쉽게 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마주한 상실 앞에 비틀거린다. 술 한 잔이 주는 순간의 망각과 함께.

 인간의 삶은 늘 희노애락이 함께하고 있고, 그 운명의 방향이란 것은 생각보다 쉽게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일반적인 서민들의 삶이란 소소한 행복이 첨가된 큰 상실과 고통인 경우가 많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마치 취한 사람처럼 그렇게 비틀비틀 위태하게 살아가는 것,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안녕 주정뱅이'가 아닐까.

 

 술에 취하면, 모든 생각을 잊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술'은 모든 상황의 만병통치약처럼 느껴진다. 어색한 첫만남의 자리를 유연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도 술, 지루한 상황을 즐겁게 바꾸어 줄 수 있는 것도 술, 즐거움을 배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슬픔을 견디고 잊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도 술. 하지만, 결국 흥청망청했던 밤은 지나가고 아침은 온다. 그리고 그 아침과 함께 어색함도, 지루함도, 슬픔도 다시 찾아오고야 만다. 술 한 잔의 시간을 말끔히 잊어버리고, 그래도 우리의 상실과 고통은 계속해서 우리와 동행한다.

​ 그리고 그 밤이 오면 또 다시 고통을 잊기 위해 그들은 술을 마신다. 이것은 우리는 결코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일종의 암시인 것일까.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230p.) 그게 우리의 탓은 아니지만, 운명의 실타래 위에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이다. '애주가'가 될지언정 '주정뱅이'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조금은 가볍게 들뜬 마음으로 걸어갈지언정, 비틀비틀 위태롭게 걸어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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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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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내게 주어진 날들은 앞으로 1년이야.'

 지금 ​나에게는 '죽지 못한 탓에 맞이하게 된 시간'밖에 없다. 나는 지금부터의 시간을 '남아 있는 목숨'이라 부를 것이다.

 그날부터 내 인생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46p.)​

​  나는 그다지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받아들여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조금 빨리 나이를 먹었으면.. 하고 바라는 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이 쌓여간다는 것이고, 적어도 나는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성장해가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과거의 나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선택하라면 오늘의 나를 더 좋아한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의 '성숙함'을 사랑한다.

 그런데 실제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나이를 먹어감에 대해서 슬픈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그러니까 지금 내 나이가 내년이면 반오십이라고 하는데, 다들 틈만 나면 그 이야기를 꺼내며 한숨을 쉰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씁쓸한 감정을 주는 순간은 9가 0으로 바뀌는 순간이 아닐까. 실제로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는 그 해에 많은 친구들이 10대가 끝나간다는 것에 슬퍼했다. (나는 이상하게 21살이 되어 첫 대학 후배들을 받을 때 내가 20대임을 실감을 했었다.) 그리고 10대의 끝자락과 20대의 끝자락은 그 뉘앙스부터가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는 듯 하다.

법적으로는 만19세가 넘어가면 ​더이상 미성년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20대(특히 초중반)에게는 학생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며, 실제로 사회도 딱히 그들을 성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30대라는 단어에서는 어디서도 '학생'이라는 느낌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개인의 변화로 치자면 대부분이 취업을 끝낸 상태, 그리고 결혼을 맞이하는 순간일테니. 이제는 단순히 자신을 책임지는 단계를 넘어 타인을 책임지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통념과 편견들. '평범하게' 살지않으면 ​타인이 오히려 더 불안해하는 이상한 사회구조 속에서, 스물아홉 생일을 맞은 저자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꽤나 불순한 의도의 연애이긴 했지만) 결혼을 생각했던 연인으로부터 급작스러운 이별통보를 받고, 마땅한 직장도 없이 3개월짜리 파견사원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으며, 소중히 지켜가야할 꿈도 없는. 내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조차 없을 거라는 씁쓸한 생각속에서 혼자 맞이하는 스물아홉의 생일날. 바닥에 떨어져버린 딸기 한조각은 비참한 기분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긴 학창시절 동안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수없이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올리고 많은 공부를 한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직장을 구하고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도 대부분 인생의 수단을 갖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 다음'은 가르쳐 주지 않고, 또 그럴수도 없다. 그것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다. 만일 텔레비전 화면에서 라스베이거스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나마 지금 같은 시간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86p.)​

​ 저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읽는 내내 소설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책에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는 지금도 누군가가 겪고 있을 지극히 현실이지만, 전체를 한번에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은 기적과 같이 느껴진다. 그것은 1년 뒤에 죽음을 결심했기 때문에 실행될 수 있는 계획이었고, 지켜질 수 있는 결심이었다.

 꿈도 없이, 그냥 고속열차처럼 학창시절을 내달리다가 어느날 '툭'하고 세상에 내던져진 그런 사람들이. 그러니까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언젠가는 한번쯤 부딧히고야 말 문장. '나란 인간, 과연 살 가치가 있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남들은 각자의 행복을 위해서, 꿈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데, 나 혼자서만 그저 세상에 떠밀려서 살아지고 있다는 느낌.

 그런 절망 끝에 한 손에 식칼을 집어들고 자신의 손목을 노려보던 아마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TV속의 '라스베이거스'였다. '불쌍한 나에게 죽기 전 한번쯤 저런 희열을 맞볼 수 있게 해주자. 그리고 스물아홉이 끝나는 날 나는 죽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거잖아. 쓸데없는 감상 따윈 집어치워!' (94p.)

​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결심한 아마리에게 찾아온 것은, 삶에 대한 의욕과 새로운 희망이었다. 1년짜리 단기 목표, 그것을 위해서 아마리는 쓰러져 병원에 실려갈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다. 낮에는 파견사원으로, 밤에는 호스티스로, 주말에는 누드모델로, 그리고 틈틈히 라스베이거스와 블랙잭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일이, 1년 뒤의 그 하루를 생각하니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피로한 하루들이 정신없이 흘러갔지만, 오히려 아마리는 모든 것을 더욱 완벽하게 해냈다.

 아름답건 어떻건 사람이 자기 몸을 자주 본다는 건 좋은 일인것 같다. 자주 보면 볼수록 정이 들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기 몸을 싫어하는데 누군들 좋아해 줄까. (105p.)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만으로도 인도 있을 때보다 훨씬 보수를 많이 받거든. 그러다 보니 자꾸 나 스스로 계획을 미루게 되더란 말이지. 미나코, 아마리 너희들을 만나고 나서야 아차 싶었아. 고향에 있을 때 나한테 요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적의 행군을 막으려면 술과 고기를 베풀어라.'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인 것 같아.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그래서 오늘 이 만찬을 계기로 다시 나의 오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어. (168p.)

​ 그래서 스물아홉의 마지막날, 라스베이거스에서 아마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우리는 그 결과를 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알고 있다. 서른의 아마리가 세상에 없었다면, 이 책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아갔던 하얀색 알약들을 깨끗하게 털어버린 그녀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자신의 1년을 가득 채웠던 모든 생활들을 말끔히 정리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한바탕 힘차게 달린 후, 그 목표 너머의 세계는 꽤 공허하고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하지만 이미 골인지점까지 달려본 사람들은 아마 곧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그녀는 서른한살이 되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사회 통념으로 인한 선입견은 어쩔 수 없다. 그래,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하지만 저마다 흘리는 땀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다. (165p.)

​ 스물아홉의 아마리는 멋지게 자신의 1년을 살아내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나 알만한 회사의 정직원도 아니고, 남들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어느 누가 아마리의 그 1년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녀가 흘린 땀의 가치를 폄하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녀의 1년은 대다수 우리들의 1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고귀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꿈과 목표라는 것이 반드시 타인에게 보이기에 그럴듯 해야만 하는 걸까. 1년 뒤 라스베이거스에서 블랙잭을 하며 화려한 하룻밤을 보내보겠다는 목표도​, 나는 충분히 훌륭했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하는 것은 현재의 안정적인 삶에 자신이 품어왔던 꿈을 흐지부지 잊어버리고 안주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하루 살아갈 의지와 의미를 갖는 것이며, 자신의 하루하루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제목과 다르게 '죽음'보다는 '꿈'에 중심을 두고 읽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아마리를 진정으로 살아가게 한 것은 '죽음을 결심'한 사실이라기보단,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겠다'는 꿈이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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