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 '1년, 내게 주어진 날들은 앞으로 1년이야.'

 지금 ​나에게는 '죽지 못한 탓에 맞이하게 된 시간'밖에 없다. 나는 지금부터의 시간을 '남아 있는 목숨'이라 부를 것이다.

 그날부터 내 인생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46p.)​

​  나는 그다지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받아들여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조금 빨리 나이를 먹었으면.. 하고 바라는 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이 쌓여간다는 것이고, 적어도 나는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성장해가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과거의 나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선택하라면 오늘의 나를 더 좋아한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의 '성숙함'을 사랑한다.

 그런데 실제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나이를 먹어감에 대해서 슬픈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그러니까 지금 내 나이가 내년이면 반오십이라고 하는데, 다들 틈만 나면 그 이야기를 꺼내며 한숨을 쉰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씁쓸한 감정을 주는 순간은 9가 0으로 바뀌는 순간이 아닐까. 실제로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는 그 해에 많은 친구들이 10대가 끝나간다는 것에 슬퍼했다. (나는 이상하게 21살이 되어 첫 대학 후배들을 받을 때 내가 20대임을 실감을 했었다.) 그리고 10대의 끝자락과 20대의 끝자락은 그 뉘앙스부터가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는 듯 하다.

법적으로는 만19세가 넘어가면 ​더이상 미성년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20대(특히 초중반)에게는 학생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며, 실제로 사회도 딱히 그들을 성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30대라는 단어에서는 어디서도 '학생'이라는 느낌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개인의 변화로 치자면 대부분이 취업을 끝낸 상태, 그리고 결혼을 맞이하는 순간일테니. 이제는 단순히 자신을 책임지는 단계를 넘어 타인을 책임지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통념과 편견들. '평범하게' 살지않으면 ​타인이 오히려 더 불안해하는 이상한 사회구조 속에서, 스물아홉 생일을 맞은 저자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꽤나 불순한 의도의 연애이긴 했지만) 결혼을 생각했던 연인으로부터 급작스러운 이별통보를 받고, 마땅한 직장도 없이 3개월짜리 파견사원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으며, 소중히 지켜가야할 꿈도 없는. 내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조차 없을 거라는 씁쓸한 생각속에서 혼자 맞이하는 스물아홉의 생일날. 바닥에 떨어져버린 딸기 한조각은 비참한 기분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긴 학창시절 동안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수없이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올리고 많은 공부를 한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직장을 구하고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도 대부분 인생의 수단을 갖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 다음'은 가르쳐 주지 않고, 또 그럴수도 없다. 그것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다. 만일 텔레비전 화면에서 라스베이거스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나마 지금 같은 시간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86p.)​

​ 저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읽는 내내 소설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책에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는 지금도 누군가가 겪고 있을 지극히 현실이지만, 전체를 한번에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은 기적과 같이 느껴진다. 그것은 1년 뒤에 죽음을 결심했기 때문에 실행될 수 있는 계획이었고, 지켜질 수 있는 결심이었다.

 꿈도 없이, 그냥 고속열차처럼 학창시절을 내달리다가 어느날 '툭'하고 세상에 내던져진 그런 사람들이. 그러니까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언젠가는 한번쯤 부딧히고야 말 문장. '나란 인간, 과연 살 가치가 있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남들은 각자의 행복을 위해서, 꿈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데, 나 혼자서만 그저 세상에 떠밀려서 살아지고 있다는 느낌.

 그런 절망 끝에 한 손에 식칼을 집어들고 자신의 손목을 노려보던 아마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TV속의 '라스베이거스'였다. '불쌍한 나에게 죽기 전 한번쯤 저런 희열을 맞볼 수 있게 해주자. 그리고 스물아홉이 끝나는 날 나는 죽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거잖아. 쓸데없는 감상 따윈 집어치워!' (94p.)

​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결심한 아마리에게 찾아온 것은, 삶에 대한 의욕과 새로운 희망이었다. 1년짜리 단기 목표, 그것을 위해서 아마리는 쓰러져 병원에 실려갈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다. 낮에는 파견사원으로, 밤에는 호스티스로, 주말에는 누드모델로, 그리고 틈틈히 라스베이거스와 블랙잭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일이, 1년 뒤의 그 하루를 생각하니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피로한 하루들이 정신없이 흘러갔지만, 오히려 아마리는 모든 것을 더욱 완벽하게 해냈다.

 아름답건 어떻건 사람이 자기 몸을 자주 본다는 건 좋은 일인것 같다. 자주 보면 볼수록 정이 들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기 몸을 싫어하는데 누군들 좋아해 줄까. (105p.)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만으로도 인도 있을 때보다 훨씬 보수를 많이 받거든. 그러다 보니 자꾸 나 스스로 계획을 미루게 되더란 말이지. 미나코, 아마리 너희들을 만나고 나서야 아차 싶었아. 고향에 있을 때 나한테 요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적의 행군을 막으려면 술과 고기를 베풀어라.'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인 것 같아.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그래서 오늘 이 만찬을 계기로 다시 나의 오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어. (168p.)

​ 그래서 스물아홉의 마지막날, 라스베이거스에서 아마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우리는 그 결과를 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알고 있다. 서른의 아마리가 세상에 없었다면, 이 책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아갔던 하얀색 알약들을 깨끗하게 털어버린 그녀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자신의 1년을 가득 채웠던 모든 생활들을 말끔히 정리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한바탕 힘차게 달린 후, 그 목표 너머의 세계는 꽤 공허하고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하지만 이미 골인지점까지 달려본 사람들은 아마 곧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그녀는 서른한살이 되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사회 통념으로 인한 선입견은 어쩔 수 없다. 그래,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하지만 저마다 흘리는 땀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다. (165p.)

​ 스물아홉의 아마리는 멋지게 자신의 1년을 살아내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나 알만한 회사의 정직원도 아니고, 남들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어느 누가 아마리의 그 1년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녀가 흘린 땀의 가치를 폄하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녀의 1년은 대다수 우리들의 1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고귀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꿈과 목표라는 것이 반드시 타인에게 보이기에 그럴듯 해야만 하는 걸까. 1년 뒤 라스베이거스에서 블랙잭을 하며 화려한 하룻밤을 보내보겠다는 목표도​, 나는 충분히 훌륭했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하는 것은 현재의 안정적인 삶에 자신이 품어왔던 꿈을 흐지부지 잊어버리고 안주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하루 살아갈 의지와 의미를 갖는 것이며, 자신의 하루하루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제목과 다르게 '죽음'보다는 '꿈'에 중심을 두고 읽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아마리를 진정으로 살아가게 한 것은 '죽음을 결심'한 사실이라기보단,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겠다'는 꿈이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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