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직톤의 초상 이승우 컬렉션 1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의 신성한 정원에는 숲의 요정들이 둘러싸며 놀던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에리직톤은 요정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그 나무를 도끼로 쓰러뜨렸다. 분노한 데메테르는 리모스를 보내 그에게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저주를 내렸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음식을 먹어치웠지만 배고픔을 면할 수 없었다. 부자였던 그는 음식을 구할 돈이 더 이상 없게 되자 자신의 딸까지 팔았다. 아버지에 의해 팔려진 그녀는 예전에 자신의 순결을 앗아갔던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청했다포세이돈은 그녀에게 원하는 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변신의 능력을 주었다. 그녀는 모습을 바꾸어 그녀의 주인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그녀의 능력을 알게 된 에리직톤은 되돌아오는 딸을 다시 팔아가며 허기를 채워나갔다. 그러나 그의 끝없는 배고픔은 자신의 몸을 모두 뜯어먹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설은 데메테르가 아닌 시어리어스의 숲이라고 적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저격사건을 모티프로 창작된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병욱('나')를 제외하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정상훈 교수와 그의 딸 혜령으로 대표되는 수직지향적 인물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며, 수직적 관계의 회복 없이 수평적 관계의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혜령은 후반부에 가서야 이를 명시적으로 드러낸 듯 보이지만 이전의 모습에서도 이런 세계관을 지니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정상훈 교수의 설교를 잠시 보자.


그런데 눈치채셨겠지만 인간이 인간을 향해 저지르는 이런 수평적 폭력은 신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폭력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아벨이 카인에게 무슨 짓을 해서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둘 사이에 분리가 일어났을 뿐입니다. 아벨은 카인이 아니고 카인은 아벨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신과 인간 사이 관계의 궤멸이 인간과 인간 사이 관계의 궤멸을 불러냅니다. (...) 절대자와의 비뚤어진 수직 관계를 방치하고 인간 사이의 평등한 관계만을 기획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21쪽)


이와 반대로 형석과 태혁, 델브루케로 대표되는 수평지향적 인물들이 있다. 이들의 눈에 신이나 신화로 대변되는 수직과 초월의 논리는 현상 구조의 영구화에 기여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들의 동기는 각각 달랐지만, 절대자의 논리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닮아있고, 에리직톤의 초상(肖像)들이다. 결국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신화의 해체이며, 그를 통해 실현되는 해방이다. 태혁이 쓴 글처럼.


이 에리직톤의 신화와 기본적으로 구조가 같은 설화가 「출애굽기」에서 발견된다. 출애굽의 영웅 모세는 에리직톤의 다른 이름으로 읽을 수 있다. 에리직톤이 실패한 싸움에서 모세는 승리한다.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두 사람의 차이는 그것뿐이다. (...) 그리하여 비로소 인간을 억압하는 잘못된 신화가 해체되면서 경이적인 새로운 신화가 싹트기 시작한다. 새로운 신화 속에서 신적인 힘은 이제 더 이상 억압적인 절대 권력을 후원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잘못된 권력 구조를 영속적으로 보장해주는 대신 억눌린 자들의 옹호자, 노예들의 구원자로 다시 태어나는 신적 권위를 만난다. 신화에 기댄 권력은 사실상 붕괴되고, 안정과 질서의 신화는 자유와 해방의 삶으로 대치된다. 모세에게 와서 비로소 에리직톤은 명예를 회복한다. 그러니까 모세는 비신화화한 에리직톤이다. (244-245쪽)


나는 기꺼이 에리직톤이기를 원한다. 에리직톤의 신화를 부수기 위해 더 많은 에리직톤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에리직톤들이 결속하여 마침내 신화를 부수게 되는 순간에 얻게 될 빛나는 이름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모세이다. 즉 해방자이다. (...)

그러니까 신은 신화를 거부한다. 신화를 창조하고 신화 속에 안주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들, 신과 신화를 이용해 현실을 유지시키려는 자들이다. 신을 신화 속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246-247쪽)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근거한 작품이고, 그만큼 관념적인 색채가 짙다. 하지만 1부에서 중심을 이루던 신과 인간의 관계는 2부에서 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과 결합하며 새로운 의미들을 파생시킨다. 81년에 발표했던 1부에 2부가 붙음으로써, 정확히 말하면 태혁이라는 인물이 추가됨에 따라 관념들이 형체를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태혁이 에리직톤에 새롭게 부여하는 의미들, 더 큰 악의 제거를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볼 수 있는지의 문제 등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고민하게 되고 의문을 던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수직의 회복과 붕괴를 놓고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운다.


신이 아닌 인간들의 결말은 처참하다. 그들의 이름은 모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형석과 델브루케의 교황 암살 시도는 두 번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노동운동을 하던 태혁은 방화 사건의 주범으로 경찰에 끌려갔다. 수녀원으로 들어가 수직의 회복을 지향하던 헤령 역시 경찰들의 수녀원 습격으로 또다시 상처를 입고, 그들을 지켜보던 주변인 병욱도 외압으로 인해 신문사에서 해고를 당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고아원에 들어간 헤령과 그녀를 찾아간 병욱이 보여주는 태도는 수직과 수평의 공존을 지향하는 듯하지만, 내가 보기엔 수직 안에서의 수평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생의 이면』과도 연결된다. 성(聖)이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속(俗)의 한복판에 있다는 태도.


"(...) 사람들 속에서가 아니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이 단순하고 소박한 진리를 깨닫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어요. 애초에 신앙과 삶을 별개인 양 구별해서 생각한 게 착각이었다고 해야 할까? 믿음이 삶과 떨어져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잖아요. 삶에서 떨어져 나간 신앙이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인간에게서 떨어져 나간 신 또한 무의미하겠지요." (294쪽)


나는 비로소 성(聖)의 뜻을 이해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인도인들은 평범한 바윗덩이에 붉은 고리를 걸어 놓음으로써 그 바위를 성별(聖別)시킨다. 붉은 고리에 무슨 특별한 힘이 있어서는 아니다. 그것은 그냥 붉은색의 평범한 고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 붉은 고리는 그 바위를 성역이라고 선언한다. 그리하여 그 바위는 거룩한 바위로 화한다. 성은 속(俗)의 한복판에, 하나의 문으로 구별되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생의 이면』, 154쪽)


이는 개혁과 형식 사이에서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병욱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개혁과 형식의 포섭은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이기에 둘 사이의 긴장을 항상 유지하는 지향성.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결국 절대자와의 수직적 관계 아래에서 수평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신화를 전복하지 않고 유지하겠다는 태도가 아닐까. 이는 정 교수에게 주례를 부탁한 뒤 약혼자 희수에게 전화를 거는 마지막 장면에서 더욱 굳어지는 듯하며, 이후의 병욱은 결국 목회자의 길을 걸을 것 같다는 암시를 내게 준다. 1부의 결말과 2부의 결말이 주는 느낌은 분명 다르지만(정말 다르다. 첫 중편소설인 1부에서 끝났다면 나는 별로 좋은 평가를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유의 끝은 비슷한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을 준다. 1부의 결말이 수평을 지향하는 자의 몰락을 보여준다면 2부의 결말은 수평마저 포섭해버린 수직의 느낌이랄까... 내 짐작이 맞다면 정말 기독교적인 결말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런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까..


그의 다른 소설이 그렇듯,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사유는 치밀하면서 치열하고, 관념적인 색채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주제와 관념의 무거움을 문장의 힘으로 극복할 줄 안다. 읽으면서 얼마나 밑줄을 많이 그었는지..(물론 원래도 많이 긋는다) 유려하게 읽히는 문장을 빠르게 따라가다 보면, 깊은 사유가 담긴 묵직한 질문들이 에리직톤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형석의 꿈과 사상, 태혁의 손으로 재해석된 신화, 주변인으로서 고뇌하는 병욱의 시선 등 각각의 사유들은 날카롭게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려는, 기존의 신화를 해체하고 자유와 해방의 삶을 찾으려는 시도는 오늘날에도 좌절될 수밖에 없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