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카페 ‘캘커타’(02-322-2738)는 뜻밖의 공간이다. 마포구 연남동 주택가 초입에 있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출근하고 나면 햇빛이 외로운, 그들이 퇴근할 무렵이면 밝혀둔 불빛이 외로운, 그래서 출퇴근하면서 ‘어? 이런 게 있네!’ ‘나중에 한번 들러봐야지’ 하고 생각나게 만드는 곳이다.
저녁 8시. 한적한 골목에 격자 창문 너머 불빛이 정겹다.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왔다가 들렀다는 중년 남녀가 ‘뭐 이런 데가 있었누?’ 하면서 책을 뒤적였다. 턴테이블에 엘피판이 돌고, 벽에는 여행사진이 걸렸다. 창턱이 식탁이고 엎어진 항아리가 의자다. 미술학원 유아용 책상과 의자는 바라보면 소품이고 손님이 앉으면 탁자다. 두평쯤 될까.
한쪽 벽에 책들이 꽂혔다. 600권쯤? 기억력 좋은 사람한테는 외일 법하다. 론리 플래닛 30여권, 문학과 지성사 소설, 헬렌 니어링류의 책들, ‘작은 것이 아름답다’ 9월호 및 과월호들, 터키 그림·비잔틴 문양 등에 관한 손바닥책들…. 그리고 타이포그라피에 관한 책 몇 권. 주인의 성품으로 보아 종류가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이어진 방은 세 평쯤. 역시 비슷한 종류지만 더욱 세련되고 새것에 속하는 책들이다. 물론 바닥에는 책손과 먹거리손을 위한 탁자가 있다.
주인은 윤화용씨. 앞치마에, 예쁜 모자, 많지 않은 수염을 기른 그는 수줍다. 이름도 ‘코코넛’이라고 불러달라다가 실수로 밝혔고 나이는 그냥 30대다. 그는 인터넷카페 ‘캘커타코코넛’(cafe.daum.net/calcuttacoconut) 운영자이기도 하다. 2002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여행하는 모임’으로 꾸린 카페의 오프라인 모임장소로 가족과 함께 운용하던 미술학원의 일요일을 이용하다가 작년에 이곳에 헌책카페를 겸해 열었다.
그의 수줍음은 아이디로 통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태어난 탓일까, 아니면 95년 캘커타에서 자원봉사하면서 체득했다는 ‘봉사의 익명성’ 탓일까.
차림표의 유일한 밥인 ‘소박한 밥상’을 주문하자 현미잡곡밥에 유기농 채소로 만든 샐러드 한 접시가 나왔다. 현미밥이라 굳이 반찬이 필요 없거니와 밥에 간간한 삶은 야채를 얹어 먹을 만하다. 윤씨는 채식에다 환경주의자. 그리고 장애인과 함께사는 세상을 꿈꾼다. 주방에서 일하는 이도 장애인. 오후 4시에 교대한 주방장 김미진(22)씨는 ‘밥맛을 모르겠다’는 말에 기분이 상했다가 현미밥이 처음이라는 말에 표정을 풀었다.
지금껏 해외 일곱차례, 국내 세차례 여행을 다녀왔다. 벽에 걸린 휠체어 사진과 론리 플래닛이 그 흔적이다. 몽골, 티벳, 인도, 유럽 등 두 달이 걸린다. 그러니까 책과 밥의 수익금은 장애인과의 여행경비로 쓰이는 셈이다.
지금은 10월 경주 2박3일 여행을 모집중이다. 참여자격은 환경 관련 책 한권씩 사는 조건. 먹을 것은 채식으로 각자 준비하고 남은 여행비는 현지에서 기부할 예정이다.
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 한겨레신문 05.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