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읽기를 마치고 든 생각. 아니, 이렇게 악덕한 인간이 있을 수가. 설령, 덜 사랑하는 딸이라고 해도, 그 딸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라는 인간이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죽은 사람은 죽었으니 산 사람은 살자, 그건가?


신선하고 매끄럽게 흐르는 글에 맹목적으로 빠져 재미나게 읽는 것은 좋다. 좋은데, 기분은 영 아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아버지가 딸이 가족이 정말 이렇게 막 가도 되는 건지. 단지 재미있자고 이런 소설을 일부러 선택해서 읽지는 않겠다. 말 그대로 게임이라면 마지막까지 유쾌한 게임이었으면 좋았겠다.


어쩌면 취향차이인가. 그런가.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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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자신의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동시에 이런 생각도 했다. 자신이 누군가의 분신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걸까, 하는. 오히려 누구나 자기 분신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걸 발견하지 못해 사람들은 고독한 것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긴 숨이 터져 나왔다. 꽤나 긴장을 하고 읽었던 모양이다. 결국 두 사람은 만나지는구나. 세상에 오직 둘 만이 남겨진 것 같이 고립된 상황에서 그 둘은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안도했다. 수줍게 레몬을 꺼내 갈증을 해소하며 마주보고 선 자매, 가족, 너인 동시에 나. 라벤더 꽃밭에 선 그들의 미래는 한없이 투명하다.


히가시노 게이고. 영화 비밀과 만화책 헤드를 통해 이미 접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선뜻 흥미가 동하는 작가는 아니었다. 이벤트가 아니라면 과연 내가 이 책을 샀을까. 소설은 물론 재밌다. 나에게 재밌지 않은 소설이 과연 있을 지가 의문이지만. 영화로 만들어졌다는데 소설 자체로도 영화를 보는 듯 실감이 나고 박진감이 있다. 도시에서 도시로 현재에서 과거로 뻗어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쫒다보면 마치 이전에 본 영화를 상상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은 생명공학의 최첨단이라는 현재, 아슬아슬한 그 경계에 선 문제를 다루고 있음이다. 솔직히 읽는 내내 무서웠다. 이게 현실이 되면 이미 현실이 되었다면 하는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과학이라는 맨 꼭대기 층에 군림한 사람들이 무소불위로 휘두르는 권력에 희생될 약자가 나일 수도 있다는 가정만으로도 오싹 했다. 소설속의 정치가가 권력을 연장하기 위한 도구로 선택한 방법을 막을 수 있는 존재가 과연 있을까.


후타바와 마리코, 그녀들은 용감했다. 과거의 망령에서 도망치지 않았고 끝까지 싸웠고 결국은 이겼다. 그들은 둘이라는 사실에 괴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어쩌면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긍정적 사고방식이 마음에 든다. 누구인들 어떤가. 나는 태어났고 살았고 앞으로도 쭉 살아야만 하는 것을. 소설의 끝은 마치 시작 같다. 두 여자가 떠나는 멋진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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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일요일 아침이 좋다. 덥고 잔 이불, 내다가 빨랫줄에 널어놓고 탁탁 털면서 하얀 먼지들이 폴폴 날아가는 거 바라보는 것도, 손끝은 시려 비벼대면서도 활짝 열어둔 현관문, 조금 만 더 하면서 닫기를 미루는 것도, 마른 걸레에 물을 적셔 냉기가 뚝뚝 흐르는 마루를 닦는 것도, 머리카락 한 올을 발견할 때마다 쓰레기통으로 달려가는 것도, 다, 일요일이어서 가능한 일들이다.


FM 98.5의 볼륨은 물론 최대다. 공복의 위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허기에도 서두름은 없다. 일요일엔 아침 걸러 점심이 딱, 이니까. 아, 오늘, 무얼 해야 잘했노라 칭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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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1-0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도 게으르지 않으신데요?
이불을 벌써 빨랫줄에 너셨다니....엄청 생산적이고 부지런한 일요일 아침이예요.^^

겨울 2006-01-08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수선님. 게으름을 자랑하는 페이퍼에 잘했다, 칭찬 하시네요. ^^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의 대부분은 쓰레기기에 가깝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날이 있다. 의도하기도 전에 말이 되어 나오는 말을 위한 말은 상황에 휩쓸려 쏟아지기 일쑤다. 좋은 글을 읽을 때마다 글처럼 말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멋들어진 글을 말로 하기 위해선 그 글을 이해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좋은 글은 거울을 향한 독백이 된다.


사춘기의 혹한에 시달릴 때 소통에 대한 심각한 번민에 빠져 일시적으로 입을 닫은 적이 있다. 말들의 가벼움에 진저리를 치며 말과 글의 일치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상을 품었었다. 그래서 죽어라고 편지를 썼다. 선생님에게 친구에게 혹은 빈 여백을 향해 쓰고 또 썼었다. 절친했던 단짝과는 교환일기를 썼다. 하루걸러 하루씩 나의 독백과 그 애의 독백이 번갈아 가며 노트를 채워갔다. 그것은 나눔이나 이해와는 거리가 먼, 입 밖으로 뱉어내지 못한 말들의 탑이었다. 왜 그렇게 말하기를 두려워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별나다는 거, 다르다는 게 미치도록 고통스럽던 시절, 단지 사춘기의 일시적인 증상이었노라 치부할 뿐이다.


사회에 나와 글보다는 말이 많아졌다. 하루 종일 얼마나 많은 말들을 뱉어냈는지, 저녁에 집에 돌아와 앉으면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생각도 나지 않곤 한다. 다르게 살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을 칠수록 말은 많아진다. 그렇게 이제는 무언가를 쓴다는 일이 어색하고 불편하고 귀찮아졌다. 글이 될 머릿속의 사념들은 언뜻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이 얇은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이라는 책은, 책 혹은 글에 대한 나의 집착과 동경에 대한 갖가지 생각들을 낳는다. 그래서 반복해서 읽고 또 읽게 된다.

 

나는 침묵의 형태로 부재하는 단어 속에 ‘붙잡혀 있는’ 아이였다. 유아 우울증이 생긴 것은 르아브르로 이사한 직후였는데, 이사로 인해 내가 무티라고 부르던 젊은 독일 여자와 헤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파서 누워 있는 동안 나를 돌봐주던 무티였다. 나는 실어증에 걸렸다. 나는 ‘무티’라는 이름 속에 빠져들었다. 그 이름이 내게는 엄마의 이름보다 더 소중했고, 불행하게도 지상명령이었다. 혀끝에서가 아니라 내 몸의 끝에서 맴도는 단 하나의 이름이었다. 오직 내 몸의 침묵만이 그 이름을 존재시키고, 실현시키고, 그것의 온기를 되찾게 할 수 있었다. 나는 욕망 때문에, 습관적으로, 의도적으로, 혹은 직업 삼아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나는 생존을 위해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썼던 이유는 글만이 침묵을 지키며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말을 거부하며 말하기, 말없이 말하기, 길목에 지켜서서 결여된 단어를 기다리기, 독서하기, 글쓰기, 이 모두가 동일한 것이다. 그 이유는 상실이 피난처였던 까닭이다. 왜냐하면 상실은 언어에서 완전히 추방되지 않으면서 그 이름 속에 피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그 자체로 외롭고 불행한 바윗돌처럼, 짐승처럼, 죽은 사람처럼. (p.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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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1-08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지 않고 간직하는 어이없음을 범하고 있지요..;;; 읽어야 할 터인데..;;;;

겨울 2006-01-08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천히 읽으세요. 서둘러 읽을 책은 아닙니다.
 
죽음의 닥터 - 전2권 세트 -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퍼트리샤 콘웰 지음, 허형은 옮김 / 노블하우스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케이 스카페타를 읽다. 공포 영화 절대로 안보는 사람이 공포 소설을 즐기는 것은 아이러니다. 고로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걸까.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것, 보이지 않는 것, 알지 못하는 것에는 무감각하다. 그것이 설령 허구의 이미지일지라도 일단 눈에 들어와 박히면 공포감은 배가 되어 버린다. 이상한 조화속이다.


두 번째로 읽는 스카페타 시리즈 ‘죽음의 닥터’도 역시나 흥미진진, 잠을 잊게 만든다. 왜 이렇게 재밌고 왜 이렇게 빨리 읽히는 거야, 투덜투덜 불평 아닌 불평을 하면서 읽어치우고 나니 다른 시리즈가 읽고 싶다. 늘 이게 문제다. 읽고는 싶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것. 사는 족족 쉽게 읽히지만 소장하고픈 욕망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 이것이 좋아하면서도 그다지 많이 읽지 않는 변이라면 변이다.


케이 스카페타의 매력이 누군가는 욱, 하는 성질에 있다고 했는데, 사실이다. 그녀는 그녀의 직업이 갖는 냉혹하고 무감각하고 무자비한 이미지와는 달리 엄청 감정적인 인물이다. 주변의 누구에게나 쉽게 감정이입을 하고 울고, 화내고, 번민, 초조해 한다. 참혹한 모양새로 부검실로 실려 온 희생자 개개인의 처지를 동정하고 연민하며 그들의 죽음에 깃든 비밀과 복수를 다짐한다. 그래서 그녀의 직업 속에 녹아든 사생활은 늘 혼란으로 걷잡을 수가 없다.


그녀에게 사랑은 일과 별개의 것이 될 수가 없어 벽에 부딪친다. 병든 엄마와 누이동생과의 불화도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아낌없이 그녀 자신을 던져 지켜주고자 하는 존재 ‘루시’도 그녀의 일과 너무 가깝게 있어 그녀에게는 크나큰 고통의 원천이다. 때때로 그녀의 징징거림에 짜증이 나서 주인공이 뭐 이러냐고 웅얼거리다가도 이내 그것 때문에 그녀를 좋아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무엇이든 다 가졌고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서 모든 이의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어야 하지만 케이 스카페타가 홀로 치루는 의식과도 같은 고통과 사색을 통해 독자인 나는 감동한다. 소설 속의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매력적인 잊을 수 없는 케이 스카페타를 만난 것, 그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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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1-08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고 싶어서 보관함에 넣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리뷰.^^

겨울 2006-01-08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다닥 쓴 거라, 약간의 오버가 없지 않은데요?
이거 전에 읽은 '카인의 아들'이 좀 더 재밌었어요.
시리즈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야 제맛인데, 어쩌다보니 거꾸로 읽어나가게 생겼어요. 이 다음엔 '사형수의 지문'을 읽을 계획입니다.

kleinsusun 2006-01-0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카페타, 정말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한번도 안 읽어봤는데....
보관함에 넣었어요.^^

겨울 2006-01-09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이 스카페타, 멋진 여성입니다. 그리고 현대 미스테리 소설계에서 독보적인 여주인공이라는 사실. 제가 좀 여성을 편애하는 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