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꽃이 드디어 피었다. 새끼손가락 한마디만한 봉오리가 진흙 속에서 빼꼼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 순간부터, 날마다 들여다보고 또 보는데, 그 감질 맛이란. 숨이 꽉 막히는 기분이랄까. 하긴 꽃뿐이 아니라 잎도 마찬가지다. 뾰족한 잎 끝이 보이는 순간부터 돌돌 말린 잎을 물 위에 꼿꼿이 세우고 있다가 서서히 잎을 펼치는 과정을 아침 점심 저녁으로 바라보는 것은 감동 그 자체다. 또, 편하게 누울 자리를 찾아서 줄기를 뻗치다가 물 위에 납작 눕거나 허공에 서 있을 때, 그 반들반들 윤이 나는 짙은 초록의 잎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타인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팔불출의 짓이다. 꽃은 이른 아침 노란 속살을 내보이다가 점심이 지나면서 꽃잎을 하나둘씩 오므리기 시작하고, 급기야 저녁이 오면 봉오리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을 발견하고 탄성을 지르고, 그 봉오리가 연잎 밑으로 숨었을 때 또 감탄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만나는 사람마다 연꽃이 피었노라 자랑하고 구경 오는 사람마다 작은 즐거움을 나눠준 것도 착한 일이라면 착한 일일지. 이 동네에서 기르는 연꽃은 실상 두어 달 전에 이미  피고 졌다. 그러니 이 아인 귀염을 독차지하는 늦둥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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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두 송이가 피었다가 지고, 오늘은 여섯 송이가 활짝 피어 눈이 부시다.

딱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운명이 안타깝지만 그 화사함에 비추어 여한이 없다.

지는 꽃 뒤에는 새 꽃이 필 준비를 한다.

그녀는 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피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일일초. 성장은 늦되더니 자그마한 키로 열심히 꽃을 피워 올린다.

화단에 심었는데, 월동을 위해 화분에 옮겨야 할지 고민 중이다.

울타리 아래 화단은 빛 보다 그늘이 많아 여러모로 열악한 환경이지만 

좁은 화분보다 선호한다.



비에 젖은 이름모를 얼룩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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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의 세계는 다른 차원처럼 극명하다.

이 소설 속에는 내가 좋아하고 연민하는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깨어 있어야 하는 혹은 잠 잘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다. 밤의 매혹은 무거운 눈까풀을 밀어 올리며 새벽을 기다려본 사람만이 안다. 노동을 하건, 책을 읽건,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시건 깊은 밤을 지나 새벽이 오고, 푸른빛이 나는 회색의 하늘을 바라보며 공중에 떠가듯이 걸어갈 때의 오묘한 충만감이란. 몸은 천근이지만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 이 세상이 아닌 딴 세상을 유영하는 착각마저 든다. 밤사이 머리를 짓누르던 삶의 고민, 실연의 고통, 죽을 것처럼 괴롭던 일상의 저주로부터 잠깐이지만 해방이다. 그건 밤을 지나온 새벽의 마법이다.






딱히 하루키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만 그의 소설은 기껍게 읽는다. 명성에 중독된 것일까. 타성일까. 엄청 재미있다거나, 골이 아프게 딱딱하면서도 감동이 물밀듯 밀려온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감성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나 보다. 그 매력이 그의 책에게로 끌어  당긴다.






드디어, 부레옥잠의 꽃이 피었다. 연한 보라색의 화사한 꽃이다. 기대했던 이상으로 아름답다. 옥잠화의 하얀 꽃과 어우러진 달콤한 향에 밤새 취하고 또 취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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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 사이, 감나무 잎 사이사이, 벽의 틈새, 처마가 있는 모든 공간마다 거미는 집을 짓는다. 하룻밤 아니 한나절, 뚝딱 하는 순간일런지도. 거미도 종족간의 혹은 생김이 다른 놈과의 영역다툼이나 파벌 전쟁을 치룰까. 거미줄에 앉아있는 우아한 여왕거미도 어느 음습한 구석엔가 저를 닮은 새끼를 낳아 퍼트리겠지? 후미진 구석구석 벽을 따라서 팔랑개비처럼 달음박질 하는 쪼끄만 녀석들이 그 증거다. 세상구경이 즐거운 건지, 겁을 집어먹은 건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아주 잽싸다. 꼬랑지에 보이지 않는 줄 하나는 매달린 것 같은데, 도통 불안한 움직임을 보노라면 마구 괴롭혀주고 싶다. 약육강식의 세계로 온 걸 환영한다. 어서어서 자라서 근사한 거미줄을 뽑아 환상적인 집을 짓기를.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인간이 변덕의 널을 뛰는 순간 에프 킬라나 빗자루의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거. 부디 만고에 후덕한 주인장을 만나라.  

거미는 허공에다 집을 짓는다. 내장을 꺼내 집을 짓는다. 거꾸로 매달려 집을 짓는다. 짐이 무거우면 벗어 던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벗어 던지면 삶이 없다. 누가 당신에게 짐을 짊어주었는가. 스스로 짊어진 짐이다. 자기가 감당할 만큼 지면 된다. 자기 몸에 알맞는 지게를 선택해서 알맞는 짐을 져야 한다. 오래 걸으려면 멜빵을, 굳건한 어깨와 강인한 장딴지가 필요하다. 당신이 짊어진 짐은 가벼운가, 무거운가. 거미는 까마득한 허공에 거꾸로 매달려 집을 짓는다.   (유용주,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42쪽~43쪽) 

지금 몸은 전쟁 중이다. 가벼운 몸살이 길어지면 깊은 병을 의심한다. 더위 탓으로 돌렸는데 아닌 듯 하다. 그래서 불안하다. 어떤 병원을 가야할지를 이미 결정했지만 미룰수 있다면 미루고 싶다. 그 와중에 읽는 유용주 시인의 산문은 어떤 기억을 환기시킨다. 잊고 있었던 기억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시인은 자신의 삶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부어라 퍼라 노래까지 부르면서. 대단한 낙천가다. 놀라운 생존력이다. 그의 글은 오직 그만이 쓸 수 있는 비밀의 언어처럼 차마 맨정신으로 바라볼 수 없는 기억을 들려준다. 이렇게 살았노라. 죽지않고 살았노라. 그러니 당신들도 살아라.  

긴 동지섣달 밤에는 삼십 분이나 한 시간 단위로 아내와 아이의 코앞에 귀를 대고 확인하면서 새벽을 맞이했다. 나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어 서러울 것도 없지만 저 여리고 순한 보살들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다른 건 몰라도 연탄가스로 죽게 할 수는 없었다. (105쪽)

바뀌벌레는 안이건 밖이건 발견 즉시 가차없이 후려치는 해충이다. 개미는 집 안만 아니라면 마당 어느 곳이건 살건 말건 나름 귀여운 곤충이다. 그런데 거미는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몇 번이나 고민 한다. 집 밖의 거미줄도 걷어 치워야 할지 내버려둘지 고민 한다. 개미는 검지 손가락으로 꾹 눌러 잡아 죽이고도 전혀 미안하지 않는데, 바퀴벌레는 죽일수록 시원하고 통쾌한데, 왠지 이 거미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영 마땅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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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지 않는다. 그냥 만나진다. 연민과 동시에 잔잔한 감동을 건네는 다니엘 타멧과의 소중하고 긴 만남이다. 그러므로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그가 말하고 들려주는 한순간도 쉽게 흘러 가거나 평범하지 않았던 삶들을 뭐라 말할까. 이해나 납득, 혹은 아주 작은 긍정의 표시도 조심스럽다. 그져 어렵고, 고되지만 조금은 신비한 삶일 것 같다는 정도? 

타멧씨, 만나서 기뻤어요. 가급적이면 행복하기를. 보통의 거북이보다도 훨씬 느리게 걷는, 특별한 거북이지만 당신이 다다른 곳에서 기다리는 인생은 정말 멋져요. 그렇게 앞으로도 당신을 막아서는 모든 벽을 타고, 기고, 넘어 서기를.  

다니엘 타멧의 여정을 따라 걸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상상도 못할 그런 세상과 만날 것이다.  그리고 돌아볼 것이다. 살아오면서 만났던 다니엘 같았던 아이, 어른을. 그리고 미안해서 눈물이 날 것이다. 왜 좀 더 알려하지 않았을까. 왜 좀 더  가까이 가지 않았을까. 왜 손을 내밀어 주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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