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이랑 채송화다. 마당에 깔린 대리석을 빼낸 자리다. 백일홍은 옮겨 심은 거고 , 채송화는 작년에 떨어진 씨앗에서 살아남았다. 여러모로 쓸모있는 근사한 화분 대용이다. 얘네는 비교적 빨리 핀 경우고, 이제 막 올라오는 싹이 대부분이다. 봄에 흙갈이를 해주느라 대부분의 씨앗들이 묻혔는데 생각만큼 많이 올라오지 않아 속상했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녀석들이 기특하다. 그래서 오며가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 채송화야.


 

 돌이끼? 보면 볼수록 신기.



이름을 알 수 없는 꽃. 다른 화초에 묻어왔길레 심었더니 작고 앙징맞은 노란색과 자주색이 섞인 꽃이 핀다. 그 옆에는 코스모스. 꽃이 피기 전의 모양이 닮았다.  



무화과. 첫 결실이다.

부드럽고 단 과육이 할머니 입맛에 맞아 익을 날을 고대하고 있다. 산자락에 심었다는 시골의 무화과나무는 겨울을 나지 못하고 죽었다. 혹시나 해서 비니루를 둘둘 말아 씌운 보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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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떠올리면 애잔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할머니를 엄마인 듯 치마꼬리에 매달려 쫓아다닌 기억은 하찮다. 할머니에게 나는 그렇고 그런 손녀 중의 하나일 테니. 내 기억과 애증은 일방통행일 가능성이 크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럴 것이다. 힘들게 살던 때였고 아이들은 넷이나 되었다. 젊다 못해 어린 부모는 자격미달에 직무유기였고, 싸우거나 일하거나 딱히 나쁜 부모는 아니지만 바람직한 부모와도 거리가 멀었다. 모든 기억이 할머니로 통한다는 건 무관심과 방임에 가까운 부모를 대신한 할머니가 늘 가깝게 있었다는 의미다. 




그런 할머니가 아프다. 아직은 할머니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고, 할머니를 필요로 하면 할수록 부재가 두렵다. 소풍도 목욕탕도 할머니를 따라서 갔구나. 처음 따라나선 새벽 감장도 우시장도 할머니 손을 잡고 있었다. 할머니의 회초리에 맞고 울기도 했고, 그 등에 업혀 잠이 들기도 했다. 할머니의 존재를 내 인생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들에게 뭐라 할 말이 없다. 그건 어쩌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무른 마음 탓일 수도 있고, 미처 성장하지 못한 나의 일부 때문일 수도 있다.




지인의 시아버지가 최근 요양원으로 모셔졌다. 집 문제, 며느리와의 소통, 기타 등등 사유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밖에 없나 라는 의문이 내내 들었다. 시어머니였으면 또 모르겠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중환자도 아닌, 단지 거동이 약간 불편한 정도의 노인을 굳이 이런저런 불편을 이유를 들어 다수의 아들 며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설로 보내야 하는가. 요양원에 방치된 수많은 늘고 병든 사람들을 보며 느낀 외로움과 서글픔은 유능한 의사가 있는 깨끗하고 좋은 시설이 환자가 아닌 보호자를 위한 게 아닐까하는 의구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마다의 사정이라는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기심과 허울인 경우가 많다.




할머니와 나의 동거가 언제까지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내 젊음과 시간의 가치가 결코 할머니보다 우위는 아니라는 거. 내 바람은 하나. 할머니의 여생이 부디 고통 없이 평안하기를.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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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의 나이가 익어간다.

더 이상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마흔에 마시는 술이 달다.

저녁마다 소곡주랑 오디술을 야금야금 마시면서 드는 생각.

나이와 술맛은 비례한다.

오늘은 맥주를 한 캔 마실까.

안주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

창문 열고 바라보는 하늘 한 조각이면 땡.

술맛을 알았으니 이제 철드는 일만 남았구나.

유년, 청년의 기억은 멀리 밀쳐두고 이젠 성장하고 싶다.

자기 연민도 혐오도 낡고 삭아 별 볼일 없으니

미련 한 조각 동동 떠다니는

내 바다로부터 개구리헤엄을 쳐야지.

죽을힘을 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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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요리의 대부분은 생애 처음인 것들이다. 오늘 끓여 먹은 감자국도 그러하다. 요리 앞에만 서면 덜컥 겁부터 나고 소심해지는 버릇이 있어 무조건 못해, 안해가 태반이다. 그러다가 문득 할 마음이 생기면 인터넷을 뒤져 레시피를 적어서 꾸역꾸역 만들어보곤 성공하면 자신감이 붙고 실패하면 그럼 그렇지 하면서 의기소침의 되풀이다. 세상에 쉬운 요리는 하나도 없다. 그 쉽다는 된장국도 매번 맛이 다르거나 이상한 걸 보면 내게 요리의 신은 분명 없음이다. 어쨋거나 오늘의 감자국은 성공했고 덕분에 약간 자신감이 상승했다. 나도 하면 되는구나라는.

그런데, 작년엔 절반의 성공을 거둔 감자찌기가 역시 대실패를 보고나니 다시 욕이 완전 상실. 문제는 무대포 정신이다. 기억이 안나면 다시 방법을 찾아 보든가 해야지 있지도 않은 뭔 감을 믿고 시작을 한 것일까. 남이 찌면 포실포실 맛난 감자가 내가 찌면 정체불명의 요상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덕택에 바퀴벌레 잡는 용도로 쓰기로 했다. 그렇게 위안을 삼아야지.

요리 못하는 인간의 특징 걸핏하면 손을 베인다는 거다. 지금도 엄지에 상처가 있지만 하루도 손가락이 성할 날이 없다. 혼자일 적에 뭘 먹고 살았나 싶다. 먹는 걸 즐기지 않는다고 하면 이상히 여기는데 수고에 비해 결과물이 형편없으면 점점 요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뭐든 대충 적당히 고픈 배만 채우자는 주의자가 살림이라는 것을 그럴듯하게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되었으니 지난 2년간의 날들은 손가락에서 상처가 가실 날이 없음이다.

요리 잘하는 친구를 보면 일단은 스스로가 즐긴다. 먹는 거든 만드는 거든. 난 그 둘다가 불가능하다. 내가 만들어 놓고도 먹고싶어하지 않는 딜레마.  일부는 유전적 요인도 무시 못한다. 엄마의 요리가 맛있었던 적이 없으니까. 맛이 없으니 음식에 관한 흥미도 관심도 없고, 기대도 없고, 체질로 굳어진 거다. 또 나이가 나인지라 음식 못하는게 무진장 창피할 때가 있다. 한때는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해도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니 죽을 맛이다. 요리도 배우는 때가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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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가까이 피고 지던 녀석의 이름이 ‘끈끈이대나물’. 오늘 꽃씨를 받아놓고서야 이름을 찾아보았다. 몹시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몰라도 그만이라는 무심함이 공존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알아야만 할 것 같은 묘한 어긋남이다. 꽃이나 사람이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관계가 돼야 신뢰와 친목이 다져지는 것을 간혹 잊는다. 편지봉투에  깨알보다 작은 씨를 받아 이름과 날짜를 적어놓았다. 내년 봄, 자그만 새싹으로 만나기를.




코스모스, 코스모스 노래를 불렀더니 이웃의 아주머니가 운동 다니러 오시는 둑길에서 슬쩍 하셨다면서 두 뼘 정도 큰 코스모스를 주셨다. 허연 뿌리가 햇볕에 드러나 축 늘어진 것을 오전에 심었는데, 저녁에 보니 바짝 곤두서 있다. 꽃을 보면 씨를 받고 싶어진다. 하나씩 하나씩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봄날에 뿌리고 싶다. 화원에서 예쁜 화분에 심어진 화초를 사다 놓는 것과 직접 씨를 받아 뿌려 크는 과정을 보는 건 천지 차이다.




몇 포기 얻어 심은 브로콜리도 무럭무럭 자란다. 파란 애벌레가 보여서 담배 우린 물을 아침저녁으로 분무했더니 다행히도 무탈하게 크고 있다. 시골에서 공수해온 대파도 부추 심은 사이사이로 모종했다. 흙냄새를 잘 맡아서 반듯하게 자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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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6-29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알만한 꽃씨에서 뿌리가 내리고 꽃잎이 생기고 꽃술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우몽님의 뿌리가 내리고 술이 익기 위해 아프시되 너무 깊이 앓지는 마요.
우린 모두 알고보면 아프면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끈끈이대나물, 여름까지 졌다 폈다 하는 모가지가 길어 예쁜 꽃이죠^^

겨울 2008-06-2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대 중간 중간에 끈적이는 갈색의 액이 묻어있어 벌레를 잡는다는데,
어쩌다 재수없게 걸리지도, 좋아라 달려들지도 않는 듯 해요.

혼자라서 아프지 말아야지 하는 것도 있지만,
일단 아프면 무력감이 밀려들어서 싫어요.
한없이 작아지고 낮아져 땅으로 꺼질 듯한 그 존재감 없는 기분 참 싫잖아요.
전 여우님 아프시다는 소식 들으면 특히 많이 놀라는데요.
왠지 큰일이라는 생각에 마구 당황스럽다는.
그러니까 누구보다 건강하시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