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인가, 엄마가 보내주신 청국장 한 덩어리가 냉장고에서 먹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먹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두부도 없고 호박도 없고 필요로하는 것마다 없는 바람에 묵혀 버린 청국장을 드디어 오늘, 꺼내 놓았다. 물론 서브 재료가 있을 턱이 없다. 마트나 시장에 간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니까. 냉장고에 있는 거라곤 쉬어터진 석박지 정도? 너라도 재료로 써야겠다 마음 먹으니 어쩐지 그럴싸 하다. 푹 익은 석박지를 송송 썰어 만들어진 육수에 넣고 한소끔 끓였다. 청국장 반 덩어리를 넣어 주고, 마늘 파 고춧가루 등을 넣고 끓이면 끝.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청국장 끓이는 법이라면 진짜 요리사들이 어이없어 할 지도. 버릴 수는 없어 끓였노라면 나름 변명이 될까나. 사실, 청국장은 정말 좋아하지 않는 요리고, 고기도 두부도 즐겨먹지 않는다. 잘 먹는 음식보다는 안 먹는 음식이 더 많은 입 짧은 인간이라는 실토다. 그럼에도 건강을 생각해서 이제부터라도 먹어보려고 노력이라는 걸 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건 현재의 화두는 첫째도 둘째도 건강이 됐다.  건강하게 살고 싶다. 다른 이들에게 민폐 끼치는 일은 죽어도 없어야 한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고 운동의 효과와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음식과 요리에 대해서도 운동처럼 되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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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여지는 모든 게 글이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나는 쓰고 있지만 넋두리라고 부르고 싶다. 어디다 쏟아부을 곳이 없어 이곳에 배설하는 중이다. 마음이나 머리에 쌓아 놓으면 병이 될까봐서 주저리주저리 문법도 맞춤법도 안맞는 걸 쓴다. 생각하는 것을 글자로 만드는 과정은 정말 어렵다. 쓰고는 있는데 이렇게 쓰는 게 맞을까 의심할 때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학교가 있는 건데, 배운 적도 없으면서 아는 척 한다. 배움에는 끝도 시작도 없다고 지금 여기서부터라고 하겠지만, 태생이 느리고 게으른 인간이다. 적당히 흉내내어 쓰는 척을 하면서 뭐라도 된냥 즐거움을 느낀다. 사실 누가 뭐랄 것은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 살다 글을 알고 배우고 쓰는 것 뿐.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한 생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뿌려지는 모양새다. 사실 관계없다. 여기에서 얻어가는 소소한 만족감이면 된다. 읽기를 좋아하다보니 쓰는 건 자연스럽게 따라다녔다.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쓰면서 정리아닌 정리를 한다. 생각 정리. 사람 정리. 일과 정리. 기타등등.

 

삼월도 곧 끝이다. 완연한 봄의 계절이 온다. 설렌다. 나이들수록 겨울의 매력을 덜 느낀다. 겨울이 좋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종자였는데, 이제 봄봄을 부르는 나이가 됐다. 춥고 헐벗은 겨울이 좋았다니, 철 없는 시절이었다. 아니, 젊음이라는 특권을 누린 것이었다. 나이드니 겨울도 별루더라. 봄이 좋더라. 여름은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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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시작한 지 일년이 좀 넘었다. 무기력과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한 건 오래 되었다. 내가 처한 현실의 무거움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막연하게 짐작만 하였지 적극적으로 돌파하여 개선할 의지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학교 담벼락에 붙어있는 요가관련 광고판을 보고 이거구나 했다. 살아오면서 숨쉬기와 걷기 말고는 운동을 모른다는 다수의 사람들과 똑같이 나도 운동이란 나와는 무관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다. 생각만으로 나는 맞지 않아, 못해, 결코 가까이 하지 못할 무엇처럼 단정하고 고개만 절래절래 젓곤 했는데... 이러한 내가 운동을 시작했고, 일년을 넘겼고, 지금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필요에 의한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다면 기꺼이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주변인이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떠들어도 소귀에 경 읽기처럼 남의 일로 들렸는데, 직접 체감하는 운동의 효과는 실로 컸다. 느슨하게 풀려있던 정신의 고삐도 바짝 조여지고, 일단은 몸이 가벼워지고 유연해졌다. 몸무게의 변화는 없다. 오히려 1키로그램이 늘었다. 요가는 일차적으로는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몸의 균형을 잡고, 목과 척추 골반을 똑바로 세우니 자잘하게 드나들던 통증들이 사라졌다. 아프지 않은 몸은 삶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활력은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얼굴의 표정까지도 바꾸어주었다. 

 

이제는 누구에게나 운동을 권하고 있는데, 스스로 자각하여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 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절대 알지 못했다. 안타깝지만 방법이 없다. 알아서 할밖에. 자기 인생은 자기 것이고, 나고 죽은 것도 마찬가지다. 운동을 평생 모르고 사는 인생도 있고, 운동밖에는 모르는 인생도 있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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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는 햄이 들어가는 순간 인스턴트 맛이 났다. 신김치 특유의 군내와 짠내와 감칠 맛을 기대했는데, 아뿔싸, 과유불급이었다. 호박이며 가지, 표고 등 질좋은 재료를 듬뿍 넣어놓고서는 마지막에 귀신에 홀린 것처럼 스팸을 넣어버렸다. 그건 망조였다. 당연하지만 인스턴트 햄의 감칠맛은 기본 재료의 본연의 맛을 모조리 빼앗아갔다. 무서운 녀석이었다. 

 

짭짤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가공된 고기맛을 정말이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선물용으로 들어온 것들이 쌓이곤 해서 가끔은 김치찌개용으로 사용한다. 먹으면서 찡그리고 실망하면서도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이상한 현상이다. 결국은 싫어하는 척은 했지만 내면 어딘가에서 좋아했던 것일까. 아마도 맞을 것이다.  

 

언제나 요리는 예측불허의 세계였다. 과한 의욕이 만든 요리는 이상한 맛이 났다. 일생 요리 잘 하는 여자를 우러러 보지만 그들처럼 되고싶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입을 만족을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서 손이 마를 새 없이 요리를 하고 차리는 여자의 삶은 고난의 행군 같아서다. 주방, 그리고 요리의 세계가 즐겁다는 입장도 있지만 살아오면서 본 대부분의 여자들은 어쩔 수 없는 의무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였다. 지금이야 핵가족이 대세고 1인이나 2인 가족도 많아져서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과거 가부장적 대가족 속 여자들은 부엌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그 시절의 기억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나는 부엌, 주방, 요리를 결코 사랑하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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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미친 듯이 책을 읽던 시절.

십대에서 이 십대로 넘어가던 

사는 게 힘들어, 어떻게 살아야할 지 몰라서, 너무 외로워, 또 어느 때는 행복해서

사는 게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책에 더 가까와지려 안간힘을 쓰던 시절

이기적이거나 착하거나 그 중간 어딘가에 양다리 걸쳐놓고

자도자도 부족한 잠,

허구헌날 날밤을 센다고 야단치던 할머니의 쨍쨍하던 목소리가

서럽도록 그립구나. 

 

두꺼운 책이 마치 자존심인냥, 적당한 허영과 허세도 젊다는 이유로 봐줄만 했다. 

제각각 비극적인 사연 하나 씩은 가슴에 품고서

술 한잔에 찔끔찔끔 비집고 흘러나와 눈물 바다를 이루고

죽지 말고 살아남자고 맹세하던 손가락들

그 거리, 식당, 커피전문점들

이제는 마음에 묻어둔 기억이고 추억이다.

 

노안으로 침침한 눈은 돋보기가 없으면 절망이고

체력, 기력에 노력까지 딸려 포기도 쉬워졌다.

더 이상 꿈도 이상도 찾아지지 않는 널널한 현실이

당연하다고 말하고

오래된 책을 골라 버리는 게 일상이 되고

책장이 텅 비어 가면 갈수록

나의 뇌도 텅텅 비어 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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