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미친 듯이 책을 읽던 시절.
십대에서 이 십대로 넘어가던
사는 게 힘들어, 어떻게 살아야할 지 몰라서, 너무 외로워, 또 어느 때는 행복해서
사는 게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책에 더 가까와지려 안간힘을 쓰던 시절
이기적이거나 착하거나 그 중간 어딘가에 양다리 걸쳐놓고
자도자도 부족한 잠,
허구헌날 날밤을 센다고 야단치던 할머니의 쨍쨍하던 목소리가
서럽도록 그립구나.
두꺼운 책이 마치 자존심인냥, 적당한 허영과 허세도 젊다는 이유로 봐줄만 했다.
제각각 비극적인 사연 하나 씩은 가슴에 품고서
술 한잔에 찔끔찔끔 비집고 흘러나와 눈물 바다를 이루고
죽지 말고 살아남자고 맹세하던 손가락들
그 거리, 식당, 커피전문점들
이제는 마음에 묻어둔 기억이고 추억이다.
노안으로 침침한 눈은 돋보기가 없으면 절망이고
체력, 기력에 노력까지 딸려 포기도 쉬워졌다.
더 이상 꿈도 이상도 찾아지지 않는 널널한 현실이
당연하다고 말하고
오래된 책을 골라 버리는 게 일상이 되고
책장이 텅 비어 가면 갈수록
나의 뇌도 텅텅 비어 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