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가진 이 책의 발행 연도는 1983년이고 값이 3000원이다. 헐, 언제적 이야기냐. 누렇게 변색된 것은 둘째치고 겉표지가 너덜너덜한 것이 보기가 눈물겹다. 고서적으로 간직한다면 모를까, 다시 읽기에는 무리가 많다. 다시 구입해야지, 생각은 했다가도 귀찮기도 하고 낭비같기도 해서 여직껏 버텼는데 5월이 되어 다시 꺼내니 왠지 가슴이 짠한 것이다.
이 책은 당시 대학생이었던 오빠의 서가에서 슬쩍 한 것인데, 읽은 것을 후회한 몇 권의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타인의 삶으로 인해 끔찍할 정도로 가슴이 아파했고, 평전 속의 그와 다를 바 없는 나를 자각한 것도 괴로웠고, 그럼에도 그가 느낀 분노와 열정의 1%도 내게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기 때문이다. 고작 내가 한 거라곤 그가 했던 일 속으로 무모하게 뛰어드는 정도였달까. 그리고 그 시도는 무참한 실패로 끝났다.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돌다가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에서 길을 잃었을 뿐, 내게 파업은 무섭고 추운 밤이었다는 기억 뿐이다. 지식으로써의 노동운동은 삶에서의 이상을 실현시키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케 하지만 노동자로서의 현실은 무력감과 무료, 무지와의 질긴 싸움일 따름이었다. 노동은, 고된 밥벌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고용인의 의식화는 피고용인의 의식화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고통만이 가중될 뿐이라는 거다.
지금이라면 싸우는 방법도 알고 피하는 요령도 알겠는데, 시간은 너무 흘렀고 돌아가는 것은 더구나 불가하다. 함께 일하며 웃고 울던 그 시절의 친구들은 무엇이 되어 살고 있을지. 다시 만나면 얼싸안고 눈물부터 흘릴 것 같은데, 세월에 무뎌진 기억 한 모퉁에 죽어도 지워지지 않을 얼굴들이 있다. 현주, 재희, 미희, 용자, 영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