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기억에 있는 호밀밭은 내 키의 두 배는 넘는 푸른 줄기가 너울너울 춤을 추는 풍경이다. 수확철이 되면 동생들과 함께 숨박꼭질도 하고 부모님이 베어 놓은 호밀을 나르고 쌓는 작업을 했다. 벼나 보리와는 달리 쑥쑥 멀대처럼 자라는 호밀의 운명은 그 단단한 열매가 아닌 연한 잎과 줄기를 베어 소에게 먹인다는 사실에 '쓸모없는 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그리고 멋모르고 읽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의 그 호밀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동네 어귀에 있는 작은 공터에 사철 각양각색의 채소를 재배하는 누군가가 올 해는 보리를 심었다. 기억에 가물거리는 보리의 형태와 이것이 같은 것인가 긴가민가해서 동생을 시켜 확인한 결과 그것은 보리가 확실했다. 짙은 초록색의 무릎정도 되는 키만큼 자란 보리를 보고 신기해 하다니, 익으면서 고개를 숙이는 벼와는 달리 익어서도 뾰족한 수염한 하늘로 세우는 보리를 상상하고(그런가?) 가슴이 뛰다니, 나도 어지간히 한심한 인간이 되었구나. 누군지 보리를 키우는 그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며 제발 무탈하게 자라달라고 빌었다.

그렇게 기억에서 가물거리는 보리 대신에 지금 시골에서는 호밀 수확이 한창이다. 네 마지기 남짓한 들판에 무성히 자란 호밀밭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계실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아프다. 어버이날을 기해서 동생과 함께 가서 일을 돕겠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평생을 땅을 파고 사신 부모님의 고달픔을 이런저런 이유로 몰라라했다. 값비싼 사료에만 의존해서 가축을 키우는 일이 점점 더 버겁다고 한다. 축협에서 외상으로 사는 사료는 일년 정산을 하는데 농사를 짓는 소득과 맞먹는다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그렇다고 평생의 업에서 손을 놓는 것도 능사가 아니고, 손해을 감수하면서도 가축을 기르고 곡식을 심고 가꾸는 고된 노동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자식들 중 아무도 선뜻 그것을 하겠다고 나서지도 않고 하길 바라지도 않는다. 비극이다.

도심에 있지만 시시때때로 마음은 기억 너머 고향으로 달려가곤 한다. 그리움, 추억, 회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고 몇 년을 발걸음을 뚝 끊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돌아가는 곳은 늘 거기였다. 부정도, 자르지도 못하는 질기고 질긴 뿌리. 주말, 하룻동안은 따가운 햇살을 견디며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할 생각이다. 내 기억의 호밀과 실제의 호밀이 똑같은지도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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