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미친 듯이 책을 읽던 시절.

십대에서 이 십대로 넘어가던 

사는 게 힘들어, 어떻게 살아야할 지 몰라서, 너무 외로워, 또 어느 때는 행복해서

사는 게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책에 더 가까와지려 안간힘을 쓰던 시절

이기적이거나 착하거나 그 중간 어딘가에 양다리 걸쳐놓고

자도자도 부족한 잠,

허구헌날 날밤을 센다고 야단치던 할머니의 쨍쨍하던 목소리가

서럽도록 그립구나. 

 

두꺼운 책이 마치 자존심인냥, 적당한 허영과 허세도 젊다는 이유로 봐줄만 했다. 

제각각 비극적인 사연 하나 씩은 가슴에 품고서

술 한잔에 찔끔찔끔 비집고 흘러나와 눈물 바다를 이루고

죽지 말고 살아남자고 맹세하던 손가락들

그 거리, 식당, 커피전문점들

이제는 마음에 묻어둔 기억이고 추억이다.

 

노안으로 침침한 눈은 돋보기가 없으면 절망이고

체력, 기력에 노력까지 딸려 포기도 쉬워졌다.

더 이상 꿈도 이상도 찾아지지 않는 널널한 현실이

당연하다고 말하고

오래된 책을 골라 버리는 게 일상이 되고

책장이 텅 비어 가면 갈수록

나의 뇌도 텅텅 비어 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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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수리하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녹슨 철대문을 칠하는 일은 일생일대의 사건이랄 수 있다. 내 집의 입구이면서 얼굴인 까닭에 칠이 벗겨진 대문은 화장기 없는 칙칙한 민낯이나 다름 없다. 색은 블랙의 에나멜로 결정했다.

 

 블랙은 이유없는 로망이기도 했다. 주변의 어떤 색도 싹 휘어잡을 수 있는 무겁고 고고한 무광의 블랙 대문은, 적당히 빈티지한 느낌으로 완성됐다. 기술이나 기교도 없는 시간과 노력과의 묵묵한 전투였다.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일은 약간의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어도 만족도가 높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집을 수리할 때 가능한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 이유다. 완성도 면에선 떨어져도 성취감은 크다는 것.

 

페인팅의 후유증은 계속해서 칠할 거리를 찾는 다는 거.

오늘은 날이 흐리고 비가 와서 쉬고 있지만, 날이 좋은 오후가 되면 또 다시 붓과 통을 들고 어슬렁거릴 것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듣는 오후다. 무겁고 깊은 울림이 마음 속을 휘젓고 있다.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다시 가라앉는 마음이 자꾸만 밖으로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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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나치게 마르고 시크한 신인이었다. 대사도 연기도 서툰 타고난 비주얼이 아니라면 지극히 평범했을, 딱 그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본 그는 기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과하지 않은 근육이 잡힌 마른 듯한 몸에 깃든 형형한 눈빛의 남자는 영화 속의 싸이코패스 살인마 그 자체였다. 악역이지만 한 인간의 성장을 목격하는 감동은 컸다.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가 있구나 싶었다. 나왔을 때 반짝 떴다가 계속해서 퇴보하는 연기자들을 너무 많이 봐온 탓일까. 형사보다 악인을 보면서 감탄하고 그 연기 자체를 응원하는 경험은 생경했다. 오랜만의 팬심이었다.

 

영화는 한 인간의 뒤틀린 인격이 어떻게 악마를 탄생시키는지 보여준다. 불우한 가정, 부의 폭력, 그리고 가난이라는 삼종셋트 안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살인마로 성장한 청년이 있다. 그에게 살인은 밥 먹는 것처럼 쉽고 간단하다. 운 좋게 들키지도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살인을 제 입으로 죽였었노라 실토하게 되는 과정은 평법하다.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던 죽음이 있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없는, 사라졌지만 찾는 가족이 없고, 늙은 가족은 빽도 돈도 없어 압력도 부탁도 하지 못하는 서글픈 죽음들. 살아서도 죽어서도 존중받지 못할 죽음에 가지는 작은 호기심과 정의감이 어떻게 거대한 악을 추적해 가며 결론에 이르는지 영화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살인으로 구속 수감된 살인자의 오만이 파열음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순간의 희열. 성과와 실적 쌓기에 급급한 안일과 무관심 대신 고집과 투지에 불탄 열혈형사와 악마의 대결은 선의 승리였다. 댜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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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별러

이런 저런 핑계 끝에 집 수리 중이다

사랑하던 가족을 잃고 떠났던 마음이

시간과 함께 돌아와 정 붙였나보다

봄이 좋은 건 메마른 땅을 뚫고 파릇한 싹이 나고

비쩍 마른 나뭇가지 끝에 초록빛 순이 돋아나기 때문이다.

 

죽은 듯 앙상하던 수국나무에 엄지손톱만한 움이 텄다

그 옆의 라일락나무에도 새끼 손톱만한 흔적이 보였다

그보다 더 먼저는 수선화가 이파리를 끌어 올렸고

냉이며 돋나물은 탱글탱글 먹음직한 물기를 머금었다

시골 엄마는 쑥버무리를 만들테니 밀가루를 사 보내라 하시고,

중언부언 하시던 아버지는 대뜸 집을 수리하자고 기별하시었다.

 

겨울이 떠나자마자

그 옷자락이 사라지기도 전에 봄이 불쑥 고개를 내밀어

당혹해 하는 찰나였다, 그 모든 시작은.

겨울은 굿바이

봄은, 수리중

비오고 바람 불어, 바쁜

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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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보이는 저마다의 상호를 가만히 불러볼 때가 있다. 가치가 있는 커피, 소녀감성, 나무상자, 오후, 또바기 기타등등. 길게 한참을 보고 설 때도 있고 스치듯 지나가기도 한다. 각각의 이름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 카페를 가면 꼭 묻는 질문 중의 하나기도 하다. 이유가 뭐예요? 호기심이 많아 질문을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대답하는 이가 귀찮아 하거나 사교성이 부족하면 퉁명한 대꾸가 돌아오지만 열에 아홉은 친절히 이름의 숨은 의미를 풀어놓기 마련이다. 사람들 각자에게 쌓인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물건이나 장소에 얽힌 스토리를 듣는 것도 재밌다. 천성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하는 습성도 있지만, 관계의 시작이나 사귐에서 질문하고 답을 듣는 방법보다 확실한 게 또 있을까.

 

이름 없이 그져 커피라는 커다란 간판만 내걸고 있던 작은 가게에 드디어 이름이 생겼다. 블루문. 보는 순간 기뻤다. 블루도 문도 내가 친애하는 단어들이고, 그 작은 가게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어린 20대 초반의 청년이 야심차게 시작한 가게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마도 마음 속의 좋아요를 백번은 눌렀을 만큼, 그렇게. 나는 너를 사랑할 거야라는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첫 눈에 반하고 말았다. 안녕, 블루문. 종종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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