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나치게 마르고 시크한 신인이었다. 대사도 연기도 서툰 타고난 비주얼이 아니라면 지극히 평범했을, 딱 그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본 그는 기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과하지 않은 근육이 잡힌 마른 듯한 몸에 깃든 형형한 눈빛의 남자는 영화 속의 싸이코패스 살인마 그 자체였다. 악역이지만 한 인간의 성장을 목격하는 감동은 컸다.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가 있구나 싶었다. 나왔을 때 반짝 떴다가 계속해서 퇴보하는 연기자들을 너무 많이 봐온 탓일까. 형사보다 악인을 보면서 감탄하고 그 연기 자체를 응원하는 경험은 생경했다. 오랜만의 팬심이었다.

 

영화는 한 인간의 뒤틀린 인격이 어떻게 악마를 탄생시키는지 보여준다. 불우한 가정, 부의 폭력, 그리고 가난이라는 삼종셋트 안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살인마로 성장한 청년이 있다. 그에게 살인은 밥 먹는 것처럼 쉽고 간단하다. 운 좋게 들키지도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살인을 제 입으로 죽였었노라 실토하게 되는 과정은 평법하다.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던 죽음이 있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없는, 사라졌지만 찾는 가족이 없고, 늙은 가족은 빽도 돈도 없어 압력도 부탁도 하지 못하는 서글픈 죽음들. 살아서도 죽어서도 존중받지 못할 죽음에 가지는 작은 호기심과 정의감이 어떻게 거대한 악을 추적해 가며 결론에 이르는지 영화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살인으로 구속 수감된 살인자의 오만이 파열음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순간의 희열. 성과와 실적 쌓기에 급급한 안일과 무관심 대신 고집과 투지에 불탄 열혈형사와 악마의 대결은 선의 승리였다. 댜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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