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수리하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녹슨 철대문을 칠하는 일은 일생일대의 사건이랄 수 있다. 내 집의 입구이면서 얼굴인 까닭에 칠이 벗겨진 대문은 화장기 없는 칙칙한 민낯이나 다름 없다. 색은 블랙의 에나멜로 결정했다.

 

 블랙은 이유없는 로망이기도 했다. 주변의 어떤 색도 싹 휘어잡을 수 있는 무겁고 고고한 무광의 블랙 대문은, 적당히 빈티지한 느낌으로 완성됐다. 기술이나 기교도 없는 시간과 노력과의 묵묵한 전투였다.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일은 약간의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어도 만족도가 높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집을 수리할 때 가능한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 이유다. 완성도 면에선 떨어져도 성취감은 크다는 것.

 

페인팅의 후유증은 계속해서 칠할 거리를 찾는 다는 거.

오늘은 날이 흐리고 비가 와서 쉬고 있지만, 날이 좋은 오후가 되면 또 다시 붓과 통을 들고 어슬렁거릴 것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듣는 오후다. 무겁고 깊은 울림이 마음 속을 휘젓고 있다.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다시 가라앉는 마음이 자꾸만 밖으로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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