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났더니 글쎄, 토마토가 풀썩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가느다란 몸체가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간 줄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주저앉은 것이다. 아뿔싸! 싶어 지지대를 두어 개 세워 묶어 바로 세워 놓고 바라보니 쑥쑥 자라주는 건 고마운데 열매는 안 달리고 언제까지 덩치만 키울 건지 궁금하다. 곁눈을 따주라는 얘기에 대충 어림잡아 댕강 댕강 씩씩하게 기지개를 켜는 녀석들을 따 놓자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정원에 한두 그루씩 키우는 고추나 토마토 등은 사실 식용이라기보다는 화초 대용이기에 죽지 않고 살아있어 주는 걸로 만족한다. 어버이날 동생이 사온 카네이션 화분도 구석에 옮겨 심었더니 꽃망울을 활짝 피웠다. 아침마다 꽃잎 위에 물을 주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예쁘다, 예쁘다 말하면 싱그레 웃는 듯도 하다.




빨랫줄엔 한 가득 흰 빨래를 널어놓고 목련나무를 휘감아 돈 으름나무 줄기가 공중을 가로지른 인터넷, 케이블 선을 따라 슬금슬금 영토 확장을 꾀하려는 낌새를 살핀다. 조만간 저 녀석을 잘라주지 않으면 거미줄 같은 전선줄을 따라 매달린 으름 넝쿨을 봐야할 것이다. 감나무는 일 년마다 한자가 큰다던가? 집 한쪽 면을 감싼 형태로 선 녀석의 위용은 날로 높아간다. 지나치게 자라기 전에 윗부분을 잘라주라는 이웃 분들의 충고를 귓등으로 흘려들을 수가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감잎, 감꽃, 감꼭지를 쓸어 모아 담는 수고야 이미 통달을 했지만 나무에게 먹히는 집을 상상하면 괴롭다. 하지만 녀석이 있어 뜨거운 여름날의 직사광선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이점만은 인정해야 한다. 집 안팎을 둘러싼 커다란 나무는 무엇보다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선물한다는 것. 자질구레한 화분 몇 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파트에 사는 동생은 주택의 이런저런 불편함은 싫어도 땅에 뿌리내린 나무의 축복만은 부럽다는 말을 종종 한다.

 

 

김훈은 어느 글에선가 쪼개면 쩍 갈라지며 빨간 속살을 드러내는 수박을 예찬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수박도 참외도 복숭아도 아닌 토마토다. 제철 따라 물 많은 과일이라면 가리는 거 없이 다 좋아하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은 과일의 대열에도 오르지 못한 토마토다. 그것도 간질 나는 방울토마토가 아닌 어른 주먹만 한 덜 익은 토마토. 아린 듯, 비린 듯, 새콤한 것도 달콤한 것도 아닌 소박한 듯 때로는 투박하기까지 한 토마토라면 밥 대신 세끼를 먹어도 질리질 않는다. 그래서 고향집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토마토 농사만은 푸짐하게 져서 철마다 따 나르신다. 토마토 중의 토마토를 고르라면 상품으로는 부족하지만 그 맛은 별미인 직사광선에 실금이 간 줄기에 매달린 토마토다. 익을 대로 익어 터질 듯 부풀다 못해 속살을 드러내며 갈라진 그것을 갓 따서 베어 먹는 맛은 냉장고에서 막 꺼낸 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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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6-04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에 선하게 풍경이 맺힙니다.

겨울 2007-06-04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지내시나요. 일상을 보여주세요.^^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우리는 먹이를 무는 순간에 낚싯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 낚시를 발려먹고 먹이만을 집어먹을 수는 없다. 세상은 그렇게 어수룩한 곳이 아니다. 낚싯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천장이 꿰여져서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또한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명랑해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돈과 밥을 위해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러니 돈을 벌어라. 벌어서 아버지한테 달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다 써라. 난 나대로 벌겠다. (p. 15)


김훈의 책을 읽으며 하는 딴 생각 중의 하나는 그에겐 아마도 딸이나 여자형제가 없지 않을까 라는 거다. 딸이 있었다면 형평성을 고려해서라도 글에서 보여주는 아들에 대한 편애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여자형제는 있더라도 위로 있는 누나가 아니라 여동생이거나.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는 그의 호통 속에는 가장으로서 짊어진 남보다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남자라고 해서, 가장이라고 해서 누구나가 그처럼 반듯하게 살진 못한다. 얼마나 엉터리 남자와 가장들이 많은 세상인가. 마누라와 자식을 버리고 때리는 남자들 부지기수다. 올곧게 밥벌이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남자로서는 아름답지만 그렇지 못한 남자들에 대한 부끄러움도 가끔은 말했으면 좋겠다. 네가 다 써라. 나는 나대로 벌겠다. 아버지로서의 그가 너무 멋있어서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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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7-06-03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 네가 다 써라.
근데. 딸이 있답니다.^-^
딸은 영화 쪽 일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것도 참 묘합니다.-.-

겨울 2007-06-03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딸이 있었군요. 전 분명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영화 일을 한다니, 정말 의외입니다.
 

 

남성성의 본질이란 아마도 결핍일 것이다. 스스로 결핍이 아니라면 남자들이 여자를 그리워할 리가 없을 것이다. 오입을 하고 바람을 피울 수밖에 없는 남자들도 다 그 결핍 때문인 것이다. 나는 남자의 ‘특권’을 이 사회에 반납하고 싶다. 그리고 마누라보다 오래 살아서, 내 마누라가 죽을 때 마누라를 이 세상의 가장자리까지 배웅해 주고 싶다. (‘남자도 오래 살고 싶다’ p.43)

 

흥, 소리가 저절로 나는 글이다. 세상의 친부모, 시부모를 둔 자식들에게 물어보라. 누가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느냐고. 자매들끼리의 얘기지만, 엄마가 병원에 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버지보다는 더 오래 사셔야 하는데, 라는 말이 탄식이 나온다. 아무리 마음에 사이가 좋지 않은 엄마라도 아버지보다는 함께 살기 낫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래서 건강 체질이신 아버지에 비해 잔병을 달고 사는 엄마를 보는 시선은 위태롭다.




결혼해 사는 동생이 조만간 시골에 계신 시아버지를 모셔와 살아야할 모양인데, 가족이건 이웃이건 이구동성으로 시어머니도 아니고 어떻게 시아버지를 모시느냐다. 사실 성품 좋기로 소문 자자하신 분이고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만큼은 아닐 지라도 여동생과 시아버지와의 관계는 아주 좋았다. 입버릇처럼 장남은 아니지만 언젠가 모셔야겠다는 각오도 할 만큼 했고, 담배를 많이 피우신다는 것만 빼면 어지간히 까칠한 시어머니 보다야 백배는 낫다고 했으면서 막상 모셔야할 상황에 다다르자 말이 많다.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 이르도록 홀로 끼니를 끓여 드신 그동안의 고생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의 불편쯤이야 감수하는 게 당연하지 싶은데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제가 무슨 순교자인 냥 군다.

말나온 김에 동생은 아주 열렬한 기독교도인데, 자칭 봉사활동이 지나쳐 교회업무로 인해 가정을 소홀히 할 정도다. 아이들보다 신앙생활을 우선 순위에 둘 때마다 몇 번 큰 소리로 다투기도 하고 적당히 자제하라는 충고를 거듭했는데, 이번 시아버지 건으로 다시 말이 나왔다. ‘그 교회에서는 연로한 시아버지를 빨리 모셔 효도하라’고 가르치는 일은 없느냐고 억지소리를 좀 했다.

종교가 없는 나는 가능하면  교회 얘기를 않는 주의지만 신앙의 유익함에 비례한 해악도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뭘 알고 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어떻게 라는 방법의 문제겠지만 현대에서 교회라는 공간은 특히 요즘 텔레비전에 종종 등장하는 유명인이 목사로 있는 교회는 예배와 헌신이라는 신앙의 개념보다는 사교의 장 같은 번잡함이 먼저 떠오른다.

초기에는 동생의 부탁으로 이끌려 나가 신자등록을 했는데, 그 낯설음이라니.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 불시착한 이방인처럼 겉돌았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교회가 경건함이란 단어가 어색하리만치 소란스러워졌을까. 목청껏 외치는 기도소리, 찬양 소리, 마이크를 통해 쾅쾅 울리는 설교 소리, 농담과 현란한 비유들, 장식적이고 화려한 내부 인테리어, 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클래식 악기들의 향연, 아, 정말이지 어지러운 곳이 아닐 수 없다.



 교회에 대한 좋은 기억도 물론 있다. 서울에서 잠시 거주하던 시절. 지인을 통해 새문안교회를 잠시 다녔는데, 김동익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낮고 울림있는 목소리로 막힘없이 풀어나가시는 설교가 어찌나 멋지고 감동적이던지, 그곳에 계속 머물러 그 교회를 다녔다면 지금쯤 아무도 말리지 못할 기독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게 최초이자 마지막 기억이다. 이후, 아무리 명성이 대단한 교회라도 설교가 아니다 싶으면 다시는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서민이 선이고 귀족이 악인 것도 아니다. 가난뱅이가 선이고 돈 많은 놈이 악인 것도 아니다. 그 반대도 아니다. 진보가 선이고 보수가 악인 것이 아니다. 물론, 그 반대도 아니다. 부자가 부자의 악덕에서 헤어나기 어렵듯이 가난뱅이에게도 가난뱅이의 악덕은 있다. 또 부자의 미덕이 있듯이, 가난뱅이의 미덕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전면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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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01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이야기에요. 난리법석, 시끌벅적, 사교의 장..
저도 그곳이 낯설고 이물감 느껴져요. 그래서인지 완전 이름만 기독교인이지요.

마법천자문 2007-06-01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컷들이 오입질을 하는 이유는 이기적 유전자의 번식 욕구 때문이고, 먹사들은 극히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전부 사기꾼들입니다.


아... 즐찾 줄어들면 어쩌려고 이런 댓글을... ㅎㅎ

겨울 2007-06-0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전자의 번식 욕구라 그거야말로 충분히 납득이 가는 걸요? 설마 이 정도로 즐찾이...



배혜경님. 참으로 민감한 얘기가 아닐 수 가 없는데요. 주변을 둘러봐도 교횔 다니는 사람 수가 훨씬 많아서 따 당하지 않으려면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돼요.
 

 

모기장을 샀다. 파란색과 연두색의 줄무늬는 몇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도 없다. 디자인도 근사하고 색도 예쁜 다른 것도 많았지만 내가 산 것은 구시대의 유물 같은 고전적인 스타일의 것이다. 한쪽 벽에 척 걸쳐놓고 나니 왜 이리 행복한 건지. 건강은 물로 환경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아늑해서 불면의 밤이 생길 리 없고, 무엇보다 여름다워서 좋다. 그래서 은근히 주변사람들을 부추겨 하나씩 장만하라고 유혹하는 중이다.  



집에서 슬프거나 따분할 때면 가볼 만한 곳이 공항이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것이 아니다. .... 그림,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발레를 감상하러 가듯이 공항을 감상하러 가는 것이다. (‘공항에 가기’ p.20)


공항으로의 산책이라니 별스럽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단, 저 글에, 공항이 집에서 가까울 때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었으면 좋겠다. 이 도시에선 공항은 어렵지만 전철역이나 기차역은 고려해볼만할지도.

까마득한 시절, 가족이나 집보다 친구와 밖이 좋았던 때, 먹고 놀다가 지치면 보통씨처럼 우리도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돌 벤치에 앉아 어디론가 떠나거나 돌아오는 혹은 마중하거나 배웅하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구경하고 앉아있는 것이다. 떠나고 싶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렵고 불안하기만 했던,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여행가방과 기차시간에 늦을까 종종거리는 걸음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모른다.

그리고 혹여나 우리가 아는 누군가가 여행에서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어림없는 기대감에 설레며. 정신없이 웃고, 놀고, 새로운 것을 찾아 다녔지만 뭘 해도 채워지지 않아 불안했던, 마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처럼 시리고 허전했던 때이다.

밤이 깊어 버스가 끊어지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럽게 느껴질 만큼 서늘한 밤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서의 유희는 달콤했다. 차비를 구걸하는 허우대 멀쩡한 청년들을 이상한 눈으로 흘기며 깔깔거리며 웃으며, 근처 노점에서 산 노란 귤을 쉼 없이 먹으며, 보내버린 철없고 유치찬란했던 20대였다.

훗날 단짝이었던 친구가 서울로 직장을 잡게 되면서 그렇게 소원하던 기차역에서의 배웅과 마중은 실현되었다. 서울역에 내려 까마득한 계단을 밟아 올라가면 손을 번쩍 들고 선 작은 그녀가 서 있었다. 우린 생이별을 한 자매처럼 팔짝팔짝 뛰며 눈물을 글썽였다.

배웅을 받고 돌아서는 순간은 또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는지. 돌이켜보니 내 눈물의 가장 서러웠던 기억은 전부 역에서였다. 역에서의 가슴이 미어지는 헤어짐의 순간들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혹은 기차에 올라 내가 사는 도시에 다다르기까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 당황했던 기억과 함께한다.

 

'동물원에 가기'는 얇디 얇은 책이다. 너무 얇아 억! 소리가 날 정도. 시작은 그렇다. 다섯 살 난 조카가 막판에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홀로, 처량히, 풍선까지는 아니지만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본격적인 동물 탐색에 나선 보통씨. 그런데 웬 걸, 시간이 갈수록 동물은 인간 같고 인간이 마치 동물처럼 느껴져 어지럽단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장식용 수집품도 아니고 살아있는 야생의 동물들이 눈을 껌벅이며 감정을 죽이고 좁은 울 안에서 불안해 하는 것을 보는 건 진짜 유쾌함과는 거리가 먼 경험이니까. 정해진 구역에서 먹고 자고 짝짓기를 하는 권태로운 동물의 일상을 동정하는 인간의 짓거리도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씁쓸한 비애를 안고 동물원을 나오면서도 그는 조만간 다시 또 오리란 예감을 한다. 닮은꼴을 통해 얻는 무언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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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야, 왜 이렇게 재밌니? 만화를 읽기 시작한 건 서른 전후, 늦어도 너무 늦은 바람이다. 순정에서 시작한 만화 읽기는 소년만화에서 성인만화에 이르기까지 점점 그 영역을 확대시키고 있다. 문제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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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올시다! 4
니시모리 히로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6월
3,500원 → 3,150원(10%할인) / 마일리지 170원(5% 적립)
2005년 07월 31일에 저장
절판
오늘부터 우리는~ 의 작가. 읽다가 웃다가 읽다가 웃다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헌터x헌터 HunterXHunter 19
토가시 요시히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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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도 내가 이 만화를 재밌어할 줄은 정말 몰랐다. 이런 만화를 읽으려고 기를 쓰는 아이들과 그것을 말리느라 피 터지는 전쟁을 치루는 부모님들이 한번쯤은 같이 읽었으면 싶은 만화다. 이 만화를 보고 재미없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테니까.
괴로울 땐 별님에게 물어봐! 25- 너의 미래에 내가 있니?
아베 미유키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7월
4,500원 → 4,050원(10%할인) / 마일리지 2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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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유치찬란한 제목만큼이나 유치찬란한 소년들의 우정, 사랑, 삶, 미래.
스나이퍼 14
마츠모리 타다시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5년 7월
3,500원 → 3,150원(10%할인) / 마일리지 1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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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결코 밝힐 수 없는 과거를 가진 사나이가 숨어든 곳은 비경의 온천장. 미스테리한 주인공을 둘러싼 훈훈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곳.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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