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중독된 사랑이 남긴 흔적을 바라본다.

한때는 정염의 불꽃으로 피어올랐다 연기가 되어 사라져갔을.

허연 대리석 바닥을 온몸으로 기어 다니는

구더기마냥 불쾌하고 혐오스런 것들

천하고 박한 입술의 기억과

무심하게 폭력적인 발자국

 

마치 지독하게 사랑해서 때렸노라

떠벌리는 그 놈의 아가리처럼

책임, 도덕, 양심이 없는

무법자의 무자격 일탈일 뿐,

애면글면 물고 빨리고

금지된 장소만 찾아다니다

, , , 던지기

거리는 부끄러워 몸살이 날 지경

 

그토록 매순간을 미치도록, 죽도록 사랑한다면서

꽁초라고 무시하고

꽁초라고 집어 던지니?

꽁초까지 씹어 삼키고

꽁초라고 새길 수 있어야

완벽한 피날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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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게는 길이 있다. 그 길에서 거센 바람이 회오리를 일으키고 머문다. 나뭇잎, 먼지, 전단지 등의 쓰레기가 만나는 장소가 그 길이다. 거리의 청소 하는 이들은 안다. 매일 아무리 쓸고 치워도 어김없이 쓰레기가 소복히 쌓이는 이유는, 바람이 머물다 갔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느, 무더위가 덮친 날, 우연히 땀을 식히려 멈춘 편의점 앞에서 얼음골이 연상되는 차가운 기세를 느꼈다. 하늘로 솟구친 커다란 두 그루의 나무 사이였다. 생경하고 청랑한 공기 냄새가 났다. 대형 빌딩 사이의 작은 휴식공간에 대리석 석판이 있어 잠깐 쉬어가기에 좋았다. 녹음 짙은 나무 때문인가 보다 했다. 차갑고 낯선 공기에 스미는 촉촉한 바람 냄새의 이유를. 

 

올 들어 최고 기온을 찍은 날이었다. 아이스커피의 시린 맛 같은 바람이 공중을 휘감았다. 서늘하다 못해 춥고, 나무 줄기들이 요동을 쳤다. 하늘은 시퍼렇게 쨍쨍하고 그늘 밖은 따가운 햇살이 눈부셨다. 단지, 알 수 없는 징조처럼 거기만 그랬다.  

 

이 나무 꼭대기 어딘가에 요괴가 살 것 같아.” 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요괴? 넌 만화책을 너무 많이 봤어.”

아냐, 여기 분위기를 봐. 뭔가 으스스 하잖아. 보통 이런 공간에 요괴가 산대.”

그녀는 픽픽 웃어댔다. 더 이상의 부정도 없이, 네가 하는 말은 다 그렇지 뭐. 라는 듯.

 

한때 열렬히 일본 만화책을 보던 시절, 세상 모든 요괴가 등장하는 그 책이 나오는 날만을 기다리곤 했다. 보통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 보여도 안 본척 지나쳐야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불 수 있는 눈을 가진 인간이 있다.  아이의 할아버지는 인간이 아닌 것들은 보여도 아는 척을 하지 말라고 누누히 가르친다. 하지만 어리고 미숙한 소년은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척 하기 어려웠고, 결국엔 요괴들에게 정체를 들킨다.

 

오래되고 키 큰 나무 위, 인간사를 내려다보는 요괴 한 마리를 상상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상상에서는 현실이 보여주지 않고 말해주지 못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 다음에는 소나기 오는 날에 여기 앉아 있을까?”

그러던지. 나쁘진 않겠네.”

여기, 정말 특별한 공간 같아. 아주 재미있는 곳이야.”

나도 그래. 도심 속 숲속 같달 까. 계절마다 와서 앉아 보고 싶네.”

 

일기예보와도 무관하게 불가사의한 날, 악동 요괴 한 마리를 꿈꾸는 것은 꿈꾸는 자의 자유였다. 물론 현실은 이가 시린 커피 한 잔과 몽상을 좋아하는 여자 옆에 적당히 비현실적인 사고의 동행이 있었다. 어쩌면 바람 때문일지도 몰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말도 안 된다는 말을 아끼고, 닮은 곳은 전혀 없는 타인이지만 별 것 아닌 소소한 것들에 웃어주고 대꾸를 해주는 그녀와는 길 위의 동지가 되었다. 멋진 어느 날, 바람에게 고마웠다고 편지를 써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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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우리 동네에는 거대한 교회들이 유독 많다. 건축물로서의 교회가 가진 상징성이 있다. 유년시절 이웃 동네에 있던 딱 하나의 교회가 그랬다. 작고 낡았지만 따뜻했던 기억, 크리스마스가 되면 작은 트리가 빛나고 소소한 다과와 선물이 기다리는 곳, 작은 오르간과 음악, 성경 구절이 적힌 작은 메모장을 손에 꼭 쥐고 달려가던 그 곳이 진심 하느님의 나라였다. 그 교회는 대문이나 울타리가 없었다. 아무리 허름한 옷을 입고 있어도 마음 편히 쉬어가는 곳이었다.

 

반면 지금의 교회는 곳곳에 울타리를 치고 외부인 접근금지를 선언한다. 그중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외부인 주차금지라는 표시다. 외부인도 주차금지도 과연 이 곳이 하느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곳이 맞는지 의문이다. 거창하게 종교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누구의 교리가 옳은가를 두고 피터지게 싸우는 모양새도 우습다. 비종교인이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고 피장파장,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식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본질적인 진리는 안중에 없는 싸움이다.

 

강아지들과 산책을 하다 교회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 하루는 그 교회의 전도사라는 청년이 나와 어린아이들 어쩌고 하면서 완곡하게 금지했다. 교회와 어린이에게 강아지가 그렇게 큰 폐해일까. 모든 땅이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소견도 우습고, 잠재적 위험성을 따지는 비논리와 편견에 화가 난다기 보다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증오와 용서의 기본 개념도 없는 철옹성에 순간 이런 세상이 희망이 있을까 싶었다. 무언가에 대한 대책 없는 혐오는 무섭다. 그것이 인간이건 동물이건 혐오에는 잠재적 범죄성이 있다. 교회에 들어가면 선하고 그 외는 악이라는 이분법의 극대화다. 산책하는 강아지를 몰아내는 그 전도사의 눈빛과 행위가 증오라는 악이라면, 교회 주변과 마을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아저씨의 얼굴은 사랑이라는 선이었다.

 

톨스토이 단편선 첫 째 이야기 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는 종교와 신의 본질에 대한 아주 쉬운 성찰이다. 천사 미하일은 하느님에 의해 인간세상으로 쫓겨나 살게 되었다. 하느님은 그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시고 답을 찾아 돌아올 것을 명하셨다. 첫 번째는 <인간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 가>, 두 번째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세 번째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였다.

 

나는 모든 인간들이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낳고 죽어가던 그 어머니는 아이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는 힘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 그 신사는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사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살아서 신을 장화인지 아니면 죽어서 신을 슬리퍼인지 그것을 알 수 있는 힘은 허락되지 않는다. (중략)

내가 사람이 되었을 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내 스스로 자신의 일을 걱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길을 가던 한 사람과 그의 아내의 마음에 사랑이 있어 나를 불쌍히 여겨 보살펴 주었기 때문이다. , 두 고아가 잘 자랄 수 있었던 것도 한 여자의 진실한 사랑이 있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저 인간들의 착각일 뿐이고 실제로는 인간은 사랑의 힘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자는 하느님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고 하느님은 그 사람 속에 계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천사가 다시 하느님의 곁으로 돌아가는 이 짧은 이야기는 간결하지만 명확하다. 톨스토이는 가난과 불운으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통해 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부를 축적하고 과시하며 천국이라는 성채를 짓고 있는 대형교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 우화 같은 소설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성경과 하느님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는 그들의 장황한 설교에 벌써 질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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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더위가 시작되었지만 오월은 산책하기에 좋은 시절이다. 골목길 잿빛 담장에는 붉은 넝쿨 장미가 불타오르고 수십 년은 되었을 감나무의 녹음은 점점 진해지고 있다. 마치 신이 주는 선물마냥 이 계절, 이 시간이 오면 어김없이 하나 둘 피어나다가 어느 순간 만개하고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 장미꽃이 지천에 피었다. 색색의 꽃들이 뿜어내는 향과 그늘을 따라 걷는 산책은 걷기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화려하고 눈부신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오월의 이면은 상처투성이다. 굳은 살 박힌 오래된 상흔을 품고 통곡과 아우성을 꾹꾹 눌러 화라는 지병이 된 가슴들이 있다. 어설픈 위로는 가 닿지 못할 심연이다. 오월의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그런 기억들을 꾹꾹 밟는 것이다.

 

발길 닿는 대로 뚜렷한 목적지도 없다. 걷기는 목이 마르고 다리가 아파지면 멈출 수 있다. 쉴 타이밍이다. 걷다가 멈추고 바라보는 그 곳에 운이 좋으면 멋진 풍경이 있다. 낡은 하늘색 지붕의 단층집,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나이 든 노부부가 어깨동무하며 살 것 같은 곳. 정갈하게 가꾼 정원을 가득 채운 꽃과 나무들 사이로 목줄에 매어진 개 한 마리가 있다. 느리게 껌벅이는 눈에 게으름이 가득한, 별천지다.

 

걷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그늘막이 있고, 나무가 인접하고, 번잡한 도로에서 거리를 두는 편의점이다. 요즘 편의점은 편리함을 넘어 카페의 안락함을 지향하고 있다. 고급 커피를 합리적 값에 마실 수 있고, 더불어 점주님이 애견인이라면 기분 좋음을 넘어 감동이다. 테라스 의자에, 달이, 콩이, 별이, 콩이, 토리까지 다섯 마리의 개와 여자 인간 둘이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 있으면 그 자체로 그림이다. 간혹 동물에게 호의적인 분들은 걷다가 멈춰서 말을 건넨다.

 

그들이 품은 개에 관한 흥미로운 스토리에 호응하고 위로하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과정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익숙함을 발견하고 말을 건네는 순간, 타인은 그냥 타인이 아닌 익숙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웃사람이 된다. 소통의 조건은 열려있는 마음이다. 대화가 이루어지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된다. 비슷한 환경, 생각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외롭다는 생각을 품었던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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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내 삶은 그동안 잠재력을 쌓아왔으나 그 잠재력은 결국 빛을 보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정말 많은 걸 계획했고, 그 계획이 곧 성사될 참이었다. 내 몸은 쇠약해졌고, 내가 꿈꿨던 미래와 나 자신의 정체성은 붕괴되었으며, 내 환자들이 대면했던 실존적 문제를 나 역시 마주하게 되었다. 폐암 진단은 확정되었다. 내가 신중하게 계획하고 힘겹게 성취한 미래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무척 익숙했던 죽음이 이제 내게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죽음과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지만, 아직 죽음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치료했던 수많은 환자들이 남긴 발자국을 보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기로에 선 내 앞에 보이는 거라곤 텅 비고, 냉혹하고, 공허하고, 하얗게 빛나는 사막뿐이었다. 마치 모래 폭풍이 그동안 친숙했던 모든 흔적을 쓸어간 것처럼 (148-149페이지)

 

청년 의사 폴은 성공과 명예를 눈앞에 두고 폐암을 선고 받는다.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며 버틴 레지던트 최고참으로 머잖아 모교 스탠퍼드에서 교수가 될 수 있었다. 그가 위대한 의사이자 과학자의 반열에 오르리란 걸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이제 겨우 서른여섯 살이다. 꿈이, 미래가 산산조각이 났다. 돌아갈 길이 없다.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최대한 느리게 천천히 읽어갔다. 단번에 읽어치울 수가 없다. 그동안 읽어온 흥미진진한 여타의 소설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신경외과 의사로서 전도유망하던 청년의 실제 상황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을 모습을 상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읽는 것도 이렇듯 고통스러운데,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정리하는 마음은 얼마나 비장했을까.

 

그럼에도 문체는 유려하다. 막힘없이 흐르고 성찰하고 통찰한다. 건강하던 시절의 생을 향한 의지와 열정은 불처럼 뜨겁고 먼 바다의 심연처럼 깊다. 건강을 잃고 병과 마주하는 순간조차 반성하고 회고하며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한다. 죽음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계속해서 슬플 정도로 들여다본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우리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숨쉬고, 대사 작용을 하는 유기체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속수무책으로 살아간다. 죽음은 당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142페이지)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지만, 죽음 없는 삶이라는 것 없다(161페이지)

 

폴은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한다. 계속 나아가야할지, 멈춰서 다른 설계도를 그려야할지 실존적 진정성과 마주한다. 그는 늘 치료과정의 고통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했지만 그 고통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의사였던 그는 역시 의사인 아내와 함께 끊임없이 암과 수많은 치료법들, 수반되는 고통과 망가지는 육체와 정신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려 한다. 삶에는 죽음이 필연으로 따르므로 어떤 상황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의사이자 과학자, 문학도를 꿈꾸었던 그는 자신의 짧은 생을 기록하고 정리하면서 점점 죽음에 이르지만, 한순간도 무너지진 않는다. 슬픔에 잠겨 통곡은 할지언정 불안에 떨진 않는다. 그는 가족들 동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아내가 있고 8개월 어린 딸이 있어 완벽한 삶이었노라 말한다. 마지막 순간, 호흡이 불안정할 때에도 삽관 대신에 존엄한 의미 있는 이별을 위해 산소마스크를 벗고 가족들과 마주한다.

 

안타깝고 슬픈 그리고 아름다운 죽음 앞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져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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