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마치 금붕어가

물 없는 어항에서 퍼덕이듯

사방이 꽉 막힌 상자에서

겨우 숨을 뱉어내는

질식 직전의

얼굴에는 수분 충만한 팩을 부치고

 

고즈넉한 저녁과 밤의 중간쯤

배웅도 마중도 없이

기다리지 않는다고 그립지 않은 건 아닌데,

속절없이 빗소리는

지붕 위에서 탭댄스를 춘다.

 

현재 기온 섭씨 32

긴긴 밤의 길목을 지키는

갈색의 개는 무료를 견디다가 엎드려

꿈과 잠꼬대의 경계에 있는지

냅다 발차기를 한다.

 

써큘레이터의 날개는 돌고 돌아

축 쳐진 빨래에 숨을 불어넣는다.

절대 고독의 열대의 밤이다.

7월의 정원에는

검은 모기떼가 기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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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길

이른 저녁 즈음

지친 걸음을 재촉하는 시간

골목 어딘가에 쓰레기가 쌓이고

 

 

흩어지고 밟혀 내장을 드러낸

들짐승의 사체처럼

악취와 파리 떼 꼬이고

그 쓰레기 옆 수명이 다한 폐기물들이 놓이고

 

누군가는 개똥이 더럽다고 손가락질을 하는데

개똥은 단지 개의 배설물이지

인간의 버려진 양심에 비할 바가 아니지

파렴치하고 구차스런 쓰레기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

개에 대한 모독이지

 

오늘도 개와 산책을 하며

배설물을 수거하며

개에게 이르길

쓰레기 옆은 피하 개

저런 인간은 따라하지 마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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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은 선이 있고

누군가 그어놓은 선이 있다

배척하거나 당하거나

멸시하거나 모멸감을 느끼거나

부자는 빈자가 넘는 선을 예민하게 주시 하고

가차 없이 분명하게 조용히 선을 내리 긋는다.

사람 좋은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

서늘하게

 

냄새가 난다는 말을 쉽게 뱉은 기억이 있다.

말하는 자의 우월감?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후,

냄새가 난다에 드리운

말의 잔인함과 배려 없음, 무시, 오만에 대해 자각했다.

 

남자 기택의 자존심이 파열음을 내며 부서지는 순간,

무계획적인 살인 본능이 합리적인 이성을 짓밟는 때,

삶에, 몸에 밴 냄새를 지울 수 없다는 자괴감에 무너질 때

저 깊은 지하세계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가 있었다.

 

한없이 평평한 세상을 꿈꾸었다.

계단이 없는

사다리가 필요 없는

우박 같은 소나기가 쏟아져도

침수되지 않는 땅

가난이 오물처럼 쏟아지지 않는

불가능한 세상

 

지하에 갇힌 아버지를 위해

꾸는, 아들의 꿈은

그래서 먹먹했다.

죽거나, 죽이거나

파국이 아니면 전복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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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산 중턱에

또 다른 산 하나가 섰다.

사람들은 그 산을 쓰레기 섬이라고 불렀다.

 

오갈 데 없이 버림받은 존재와

찌꺼기들이 밀리고 흘러

다다른 골목은 출구가 없고

오물과 악취, 폐수가 모여 산다.

 

극에 달한 유전자의 이기가

잉태한 저주받은 그것은

백신도 없는 질병의 모태

치사율 100퍼센트의 바이러스

희망 없는 죽음, 종말이다.

 

스스로의 잘남에 취하고

겉멋에 파묻혀

쉬지 않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동물, 아니 곤충,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을 향한 신의 계시일까.

 

쓰레기가 모여

산을 이루는 시대

외로움이 쌓여지면 섬이 된다던

옛날이야기는

쓰레기 섬을 짊어지고 가는

인간에 대하여

연민하거나, 배려하거나

이해하거나, 용서하거나

 

그토록 독한 사랑 때문에

병든, 타락한 세상을 향하여

십자가를 진 한 인간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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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아래 개 두 마리

 

화가이자 은둔자인 토니오는 3년에 걸쳐 지은 작은 오두막에 살고 있다. 해발 1000미터의 산록에 기대어선 무덤처럼, 혹 테이블의 끝에 웅크려 앉은 사람처럼 서 있는 집이다. 그 계곡에는 또 다른 남자 소몰이꾼 안토닌이 종종 모습을 보였다. 그는 글을 읽을 줄도 모르고, 말하는 법도 서툰 사람이었다.

 

전혀 접점이 없는 그들은 그저 멀리서 경계하거나 경외하며 바라보지만 대화라고는 나눠보지 못한 관계였다. 어느 날 토니오가 안토닌을 식사에 초대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저 아무생각 없이 날씨가 어떤가라고 묻듯, 가볍게 식사를 하자고 청하는 토니오에게 아마도 안토닌도 아무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그런데, 그 식사는 안토닌이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깨끗하고 정갈한 풍경이었다. 테이블에는 접시와 나이프와 포크가 있고, 잔과 포도주, 빵이 있었다. 토니오에게는 별거 아닌 일상이 안토닌에게는 생경하고 엄숙한 경험이었다. 창 밖에는 안토닌의 개 두 마리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토니오의 부드럽고 조용한 배려가 안토닌을 점점 평화롭게 했다. 식사가 끝난 후 안토닌은 머뭇거리다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내 놓았고, 토니오는 놀라서 손을 내저었다. 안토닌은 모자를 양손에 잡고 서 있다가 어느 순간 가만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토니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두 남자의 조용한 눈물과 포옹, 이를 지켜보는 두 마리의 개가 있는 풍경이 이 짧은 에세이의 전부다.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이미지가 새겨진다. 인적도 드문 깊은 산 속, 도시에서 온 화가와 일생을 그 계곡에서 살았을 소몰이꾼은 이후 어떤 생을 살았을지 상상할 수 있다. 오랜 우정을 지속했을 수도 있고, 사정이 생겨 곧바로 헤어져 다시는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든 그들은 서로를 응원하고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공유한 그 짧은 오후의 식사는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멋지고 감동적인 순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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