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살아났다. 뭐, 죽었던 건 아니지만 죽을 것 같았으니까 살아났다는 말이 맞다. 요 몇 년 크게 아파보질 않아서 이번에도 금방 나으려니 했는데, 독하게도 나흘이나 아팠다. 그래도 병원에 안가고 버텼으니 장하다고 해야 하나 아님 미련하다고 해야 하나. 가족 누군가 있었으면 병원가라고 엄청 잔소리를 들었을 터이지만 큰 병 아니라는 생각에 아침저녁으로 아스피린 하나씩 삼키며 제발 떨어져 나가라고 기원했다. 몸살이 나면 무엇보다 괴로운 건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다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억지로 먹다보면 체하거나 토한다. 김치 냄새도 싫고 기름 냄새도 싫고 밥 냄새도 싫어진다. 그러다보니 며칠 만에 얼굴이 반쪽이 됐다. 혈색이라곤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과 검은 다크써클이 귀신 저리가라다. 내가 봐도 무섭다.
나이 드신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을 뵈러갔던 지난 주말에 무리를 하긴 했다. 그러나 내 체력이 약하다는 핑계를 대고 마냥 놀고 먹다가 올 수가 없음이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게 확연히 보이는 부모님을 보면서 마음도 복잡하고 그래서 괜히 씩씩한 척 팔을 걷어 올리고 좀 심하게 노동을 한 결과가 요 모양이라는 것이 한심할 뿐이다. 설거지 조금에 청소, 할머니 머리 감겨드리고 몸 좀 닦아드렸다고 몸살이 났다는 게 창피할 지경이라 아프다는 말도 못했다. 그렇잖아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성화셨는데, 아팠다고 하면 얼마나 지청구를 하실까.
돌아오는 주말에도 시골엘 간다. 할머니 생신을 겸해서 온 가족이 모이는 자리라 필히 참석해야만 한다. 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건만 빠졌다가는 내년이 평탄치 못하다. 그런 고로 일찍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