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흔치않은 일이 생기면, 난 비교적 빠르게 운명 내지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근래에 현관문을 긁으며 우는 고양이를 집안으로 들인 사건도 그랬다. 마르고 초라하긴 했지만 분명 길에서 사는 고양이는 아니고(겁도 없이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도둑고양이는 없으니)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집 혹은 길을 잃은 고양이임이 분명했다. 일단은 집에 있는 검은깨 두유를 먹여 놓고 고심 하다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시킨 다음, 계속 배가 고파보여서 사다놓은 빵을 잘게 부셔서 먹였다. 처음엔 뭐든 맛있게 먹는 게 예뻤는데 그렇게 아무거나 주면 안 된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살면서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시골에 살 때에 마당에서 기르던 개나 고양이 말고는. 사실 키우는데 따르는 책임감에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해 본적이 없다. 남의 개나 고양이를 보면 안아주고 귀여워는 하지만 거기서 끝. 하지만 이제 눈앞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연민을 자아내는 맑고 순진한 눈망울을 가진. 내 발뒤꿈치를 물다시피 따라다니고 손짓, 눈짓 하나에도 반응을 보이는. 저를 위해 놓아준 방석 위에서 저녁 내내 쿨쿨 자다가도 한밤중이 되면 내 요 위로 슬그머니 올라와 옆구리로 파고드는. 이질적이지만 팔딱팔딱 숨을 쉬는 한 생명. 어찌할까.
이 녀석 날래기가 보통이 아니다. 색연필 한 자루를 던져주니 족히 십여 분을 놀고, 그러다 심심하면 모니터 위로 올라가 빼꼼 바라보고 앉았다가, 방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전력질주를 몇 번 하다가(왜 그러는지 궁금했지만 묻는다고 대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제 꼬랑지를 잡으려고 공중 제비돌기를 시도하는가 하면, 밥솥 위에 올라앉는 건 기본이요, 식탁 위, 싱크대 위, 책상에서 화분으로 도움닫기, 등등 졸거나 잘 때 빼고는 종일 야단법석이다. 어쩜 이렇게 어린 애기들 노는 것과 같을까. 용변 보는 모래를 신발장 근처에 놓아두었지만 녀석이 볼일을 볼 때마다 신경이 쓰여 죽겠다. 나도 모르게 녀석을 끌고 욕실로 가서 씻겨주고 있음. 깔끔 떠는 결벽증은 없지만 이불이며 옷에 묻어나는 털도 아직은 신경 무지 쓰인다. 근데 참을 수 없이 귀여운 짓 하나. 이 녀석은 잠들기 전 제 앞발바닥을 한참동안 쪽쪽 빤다(아주 심하게). 어미젖을 무는 아기처럼. 덩치를 보건데 아기고양이 시절은 한참 전에 졸업했을 텐데. 그렇다면 애정결핍증을 가진 정서적으로 불안한 고양이?
여기저기 뒤져 고양이 키우는 법을 찾아보았는데 보통 일이 아니던데. 일단 인간의 먹이는 가능한 먹이지 말아야할 것과(당장 전용사료를 샀는데 꽤나 맛있게 먹는다) 늘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용변처리만 잘하면 될 듯. 그런데 이렇게 정들여 놓고 슬그머니 다른 집 찾아가면? 그런 경로로 왔으니 그럴 가능성 상당히 농후하지만 그것도 너의 운명이라면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