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2011.1.14) 

 원래 '발전'이라는 말은 잠재력이 잘 발현되어 종국적으로 자연스럽고 모자란 데 없는 난숙한 상태에 도달하는 과정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이 말이 진보, 진화, 경제 성장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왜소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이런 세속적 의미의 발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총망라한 듯한 느낌을 주는, 아주 두툼한 책이다.

자그마치 18가지 측면(환경, 평등, 도움, 시장, 요구, 한 세계, 참여, 계획, 인구, 빈곤, 생산, 진보, 자원, 과학, 사회주의, 국가, 기술)으로 나누어 발전의 핵심을 여러 학자들이 낱낱이 까발리고 있다. 이 책은 이 세속적 의미의 발전을 고발할 뿐만 아니라 발전에 대한 추도사의 냄새를 풍기는 책이다.

이 세속적 의미의 발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직후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취임 연설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이 책은 보고 있는데, 이 연설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세계의 저발전 지역을 없애기 위한 '발전의 시대'를 열자고 선언하였다고 한다. 미국이 발전의 깃발을 높이 쳐들고 모든 나라에게 내 뒤를 따르라고 소리쳤으며, 신기하게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 깃발의 뒤에 줄을 섰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전의 시대가 열렸고 지난 반세기가 발전의 시대가 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이 선언한 발전의 개념은 요컨대 경제 성장이나 경제적 생활수준의 향상을 의미한다. 경제 성장이나 경제적 생활수준의 향상은 국내총생산이나 1인당 소득수준으로 표현된다. 이런 양적 잣대를 들이대면 발전의 정도를 금방 식별할 수 있다. 국내총생산의 규모가 크고 1인당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는 발전된 나라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발전되지 못한 나라(저발전 국가)다. 발전의 정도에 따라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으로 줄 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부자로부터 극빈자까지 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이 발전의 시대를 선포한 바로 그날 세계의 20억 인구가 '저발전인'으로 낙인 찍혀버렸다. 이제 저발전과 가난은 치욕이 되었다.

국내총생산으로 따지면 한국은 세계 15위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이지만, 겨울철 연탄 한 장이 아쉬운 판자촌 빈민에게는 이 말이 믿겨지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발전의 뒤안길에서 이제까지 오롯이 살아온 남아메리카 오지의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가 후진국이요 빈국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알고는 의아해할 것이다. 옛날 라다크를 방문했던 어떤 서양인이 원주민에게 당신의 나라에는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고 물었더니, 그 원주민은 그런 사람을 알지 못한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단다. 그러나 라다크가 일단 발전의 대열에 끼어든 후에는 사정이 아주 달라졌다. 이곳의 많은 원주민들은 이제 자신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잘 사는 나라들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세속적 의미의 발전을 이 책의 한 필자는 "엽기적으로 변형된 발전"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세속적 의미의 발전이 그렇게 엽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정의의 핵심인 평등 사상으로 포장되어 있어서 누구나 추구해야할 규범적인 것이 되었다.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잘 살 권리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똑같이 잘 살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서 평등주의가 이 세상에 실현되기 위해서는 저발전 국가는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하며,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따라 잡아야 한다. 따라 잡기 위해서는 발전해야 한다.

1974년에 채택된 '신국제 경제 질서 확립 선언'에서 유엔(UN)은 "불평등을 시정하고 불의를 바로 잡아 발전국과 발전도상국 사이의 점점 벌어지는 거리를 없애고 경제 발전의 속도를 책임지고 꾸준히 끌어올리고자 한다"라고 천명하였다. 발전이라는 말과 평등주의가 합쳐지면서 세계의 발전을 통해서 평등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품위 있게 포장된 발전의 담론에서는 하향 평준화라는 말은 없고 오직 상향 평준화라는 말만 흘러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선진국이나 후진국 모두 발전을 위한 경쟁으로 빨려 들어갔다. 특히 후진국의 급선무는 저발전의 오명을 빨리 벗어 던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빨리 발전할 것인가?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꼽혔다. 특히 동구권이 무너진 후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범지구적 확산은 더욱 더 탄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도입되고 정착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후진국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나 전통적 생활양식, 특히 공동체 의식이나 끈끈한 인간관계는 시장 경제의 활성화에 큰 장애물이므로 깨끗이 청산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오직 합리적으로 자신의 득과 실을 계산하는 경제인만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은 이 장애물 제거 과정을 "사람의 뿌리를 잘라서 경제인으로 도려내는 작업"이라고 표현하였다.

애당초 미국이 발전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기 때문에 발전의 숨은 의지는 자연히 서구화(미국화)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식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확산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제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한 행동과 생활양식을 목격하게 된다. 비슷한 쇼핑몰에서 쇼핑하고, 똑같은 첨단 전자제품을 사용하며, 똑같은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똑같은 모습의 관광객이 되어 세계를 부비고 다니며 돈을 뿌려댄다. 심지어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에서조차 코카콜라와 햄버거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양복과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인들이 자동차 소음과 매연으로 뒤덮인 길거리를 활보한다.

이제 지역별 고유의 문화와 전통적 생활양식을 제대로 보려면 아주 낙후된 지역(저발전 지역)을 찾아 가야만 한다. 발전의 시대에 이런 전통적이고 고유하고 토착적인 것들은 발전의 장애 요인으로 지탄받으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기껏해야 눈요기 감에 불과하게 되었다. 세계 어디에서나 미래에 대한 희망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요, 마음껏 소비하고 즐기는 것이다. 이제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민족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자신들의 독자적 생각에 따라 자신들 나름대로 정의할 기회마저 빼앗겨버렸다.

그러면 발전을 통한 평등주의가 약속대로 실현되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40년도 넘은 지금 발전은 지독한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이 책은 단정한다. 우선 각종 통계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 책은 세계은행의 1988년 <세계 발전 보고서>를 인용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1986년 20개 자본주의 부자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만3000달러였고 1965년 이래 연평균 증가율은 2.3%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해마다 약 300달러씩 증가한 셈이다. 반면에 같은 해 가장 가난한 33개 후진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70달러였으며, 그 증가율은 3.1%였으니 해마다 약 8.4달러씩 증가한 셈이다. 한 쪽에서는 소득이 매년 300달러씩 불어나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8.4달러씩 늘어나니 부국과 빈국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빈국의 경제성장률이 부국의 경제성장률보다 조금은 높기 때문에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빈국이 부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때가 과연 언제쯤일까? 과거의 성장률이 미래에도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127년 후 빈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986년 부국의 1인당 국민소득에 이르게 되며, 약 500년이 지나야 빈국이 부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 설령 빈국의 연평균 소득증가율이 5%라고 가정해도 약 150년이 지나야 빈국이 부국을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으며, 이쯤 되면 세계의 1인당 국민소득은 40만 달러가 된다. 말하자면, 방글라데시나 아프리카 최빈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40만 달러 수준으로 올라서야 비로소 이 지구에 평등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중국과 인도를 제외한 빈국이 연 5%의 성장률을 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의존하는 발전으로는 범세계적 평등주의 약속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빈국은 부국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가 없다"고 이 책은 단언한다. "따라잡기를 통한 평등은 현실의 불평등을 조직하고 합리화하는 신화에 불과하다." 사실, 오늘날에 와서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도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일부 경제학자들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빈국이 부국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고 이 책이 단언하는 데에는 더 큰 이유가 있다. 바로 지구의 한계가 그것이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에 퍼진 자본주의 시장은 원래부터 화석연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생산 방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은 자연자원의 고갈을 경시하며 환경오염을 무시하는 체제다. 마치 신용카드가 보편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외상으로 사는 사회가 되었듯이 자연자원에 관한 한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외상으로 유지되는 체제다.

발전의 원동력으로 전 세계에 퍼진 자본주의 시장은 결과적으로 막대한 자연자원을 소모하면서 엄청난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함으로써 이미 지구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세계적 발전이 계속된다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음으로써 전 세계적 평등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지구가 네댓 개 더 필요하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장을 업은 발전을 통하여 전 세계적 평등주의를 구현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대답이 없다는 점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큰 아쉬움이다. 하기는, 자본주의 시장을 바탕으로 한 발전을 설득력 있게 구체적으로 까발리는 것만 해도 벅찬 일이니 일단 그렇다고 해두자. 이 책은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발전 전략을 택함에 있어서 저간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별 차이가 없었다고 보고 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밑바탕에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탐욕이 작용하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 탐욕이 이제 지구인의 생존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무한한 탐욕을 억제함으로써 옛날처럼 시장이 경제적인 영역을 벗어나지 않도록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결국 이 책은 발전으로 인해서 소탕되었거나 뒷전으로 밀린 것들을 다시 살려낼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주장한다. 미국식 생활양식에 젖은 세계의 다수인에게, 특히 세계의 부유층에게 과소비에 대한 부끄러움과 과시 소비의 유치함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자발적 빈곤이 찬양되어야 하며 우리가 잃은 자기 절제력을 복원해야 한다고 이 책은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 발전의 시대는 이제 서서히 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나 세속적 의미의 발전을 신봉하는 사람들, 특히 경제학자들은 이 책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쏟아낼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 책은 마치 선진국이 세속적 의미의 발전의 개념과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후진국의 입에 억지로 쑤셔 넣은 것처럼 서술하고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스스로 원해서 자발적으로 채택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에 걸쳐 이 발전의 개념과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성공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고 이들은 주장할 것이다.

경제학자가 늘 주장하듯이 만일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인 사람들이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것을 어떻게 나쁜 것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아쉽지만, 이 책에서는 이런 식의 질문에 대한 분명한 해명을 찾기가 어렵다.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1011413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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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붕괴시나리오 - 삼성은 애플이 아니라 시대에 밀리고 있다!
안광호 지음 / 다산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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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박사급 엔지니어로 5년간 근무했고 지금은 정부 산하기관에서 기술기획담당으로 근무하는 저자가 삼성이 갖고 있는 문제를 진단하고, 앞으로 계속적인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 인가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삼성이 그간 '관리의 삼성'으로 불릴 만큼, 조직과 생산관리에서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지만 오히려 그점이 자신의 장점과 강점, 성공에 안주하게 만드는 위험한 요소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그간 삼성의 성공은 모두 시장에서 돈이 될 만하다 싶은 아이템을 찾고 적절한 시점을 판단하여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경쟁자들을 앞지르는 전략들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같은 경주에서 남보다 빨리 뛸 수는 없지만,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낼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SW의 MS나 스마트폰의 애플, SNS의 페이스북과 같이 전혀 새로운 개념의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조직문화를 삼성은 갖추지 못하고 있고, 콘텐츠와 스토리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부터 그러한 시대적 요구에 맞도록 혁신해야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삼성에서 근무했고, 삼성 출신들과의 만남을 통해 현장감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지만, 딱히 새롭다거나 무릎을 치게 만드는 지적이나 대안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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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리셋 - 아이디어 중심 창조경제로 비즈니스의 새판 짜기
리처드 플로리다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 비즈니스맵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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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리셋이란 경제와 사회질서가 근본적이고 대대적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와 사회, 주거와 근무양식 등 경제와 사회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저자 플로리다 교수는 1870년대 불황과 1930년대 대공황이 경제와 사회, 생활양식을 바꾼 것처럼 최근의 금융위기로 인해 새로운 경제와 사회 시스템이 등장할 것으로 진단한다. 각각의 대 위기는 새로운 기술과 인프라를 낳았고 그것이 경제의 풍경(landscape of economy)를 바꾸어 놓았음을 보여준다. 1870년대 위기 직후 전력과 철도가 발달하고, 공장지대가 생겨나고 여가문화가 등장했다. 이러한 변화에 따른 공간적 해결책으로 산업도시화가 등장했으며, 이는 주거지의 계층화를 가져오고, 새로운 여가문화 등 삶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이루어진 2차 리셋은 '교외 생활방식(suburbia)'라는 형태를 통해 현실화되었다고 본다.  

저자는 이번 금융위기 이후 3차 리셋이 나타날 것으로 보면서, 이번 리셋은 '거대지역(megaregion)'이라는 공간적 해결책이 그 답이 될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1000만명 이상의 규모를 갖는 거대지역들이 더욱 성장하고 있으며, 다양성과 유동성을 바탕으로 거대지역들이 위기극복에 더욱 유연하고, 도시의 신진대사도 활발하여 더욱 풍부한 혁신역량을 가지기 때문에 이러한 거대지역 조성과 밀집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갈 것이라는 것이다. 그를 위한 사회적 과제로 그의 전작들-창조계급의 부상, 후즈 유어 시티 등-에서 꾸준히 주목해왔던 창조적 직업의 창출과 이를 위한 교육개혁,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 고속철도를 비롯한 인프라 건설과 교통체계 개선 등을 제안하고 있다.

경제불황과 그에 뒤이은 사회적 변화들을 공간적 해결책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그의 배경이 되는 기술발전과 사회적 이동에 대해 흥미롭게 풀어가면서, 여러 가지 사례를 제시하고 있어 쉽게 잘 읽히는 책이다. 다만, 사례들이 대부분 미국의 도시들이라 우리나라 사정과 좀 맞지 않는 점은 어쩔 수 없겠지만, 거대지역에서 중심되는 도시의 밀집화와 근교지역과의 연계강화가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그 외 원거리의 중소도시들이 쇠락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그에 대한 대안 내지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어, 계속 인구가 줄어드는 국내 중소도시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마땅한 시사점을 찾기가 어려운 점은 아쉽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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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전쟁 - 환율, 무역 그리고 원가를 둘러싼 21세기 세계대전!
랑셴핑 지음, 홍순도 옮김 / 비아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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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책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신제국주의의 계획에 의해 중국이 큰 위험에 빠져있다는 주제로 경제, 기후변화, 탄소배출 문제 등을 짚어보고, 신제국주의의 첨병이라고 할 기업들-골드만삭스, BHP빌리턴, 몬산토-의 획책에 대해서 그 계략을 날카롭게(?) 파고들어간다.  

저자는 워튼스쿨에서 금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시카고 대학 교수를 거쳐 홍콩 중문대 석좌교수로 계신 분이라는데, 보통 이런 경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들게 강한 음모론적 시각에서 논의를 풀어나가고 있다.  

일본의 장기침체와 아시아 금융위기가 미국의 치밀한 계획-자본시장 개방, 금융기관 진출, 자산가격 상승유도와 철수, 해당국 경제의 붕괴-에 의해서 벌어진 것이고, 온실가스 논쟁도 결국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광대한 중국시장에 팔아넘기기 위한 기획의 일환이며, 골드만삭스나 BHP빌리턴, 몬산토 등도 미국 정부의 사주 아래, 자본시장, 자원시장, 식량시장을 차지하려는 전위부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중국과 미국간의 환율을 둘러싼 싸움도 결국 미국이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을 얻어내기 위한 눈가림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한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G2로 추켜세워지고 있지만, 기실 2006년부터 중국 제조업의 위기는 시작되었으며, 과잉설비로 인해 갈 곳 없는 자금이 자산시장으로 계속 유입되면서 조만간 인플레이션 문제가 본격화 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음모론을 다룬 책들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런 책들의 경우 논리비약이 심한 경우가 많지만- 이 책도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태양흑점이라는 소수설을 지지하고 있는 데서 약간 당혹스럽기도 하고, 기후변화 논쟁을 사기극으로 보는 논의들과 유사한 내용들을 반복하고 있기는 한데- 중국을 새로운 슈퍼파워가 아니라 미국의 손 안에서 놀아날 수 밖에 없는 힘없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살펴보는 내용들이 그런가 하면서, 쉽게 잘 읽혀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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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것이 미술사일까? - 서양미술사 400년의 편견과 오류
제임스 엘킨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아트북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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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처음 공부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면 대체로 E.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상당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명성을 바탕으로 처음 택하게 되는 책일듯 싶다. 또는 과거에는 잰슨(H.W.Janson)의 <미술의 역사>도 눈에 띄었던 듯 싶다. 미국에서는 미술사 개론서 시장의 49%를 헬렌 가드너의 <Arts through the ages>가 차지하고 있다는데 우리와는 조금 다른 듯 하지만, 곰브리치 책 역시 광범위하게 읽히고 있다고 한다.  

 다만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의 원제가 <Story of Art>이기도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보편적으로 읽히고 있는 미술사 개론서들의 공통점은 서양, 특히 유럽 중심의 시각과 작품을  미술사의 거의 전부인 것으로 다루고 있으며, 서술방식도 연대기적 방식에 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양이나 비유럽 서양의 미술들은 극히 일부만 다뤄지거나 아예 배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그것이 미술사일까>의 저자 제임스 엘킨스는 이러한 미술사 서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저자가 갖고 있는 문화적 정체성이 본질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문화다원주의의 한계와 연대기적 서술방식 보다 더 나은(더 체계적으로 쓰일 수 있거나, 최소한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기 용이한) 서술방식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밝히고 있다.  

특히, 이 책은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외에 다양한 미술사 서적들을 소개하고, 그 한계를 지적하는 동시에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사에 접근할 수 있는 길들을 소개해 주고 있는 점만으로 일단 일독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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