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세계문학의 숲 48
앙드레 지드 지음, 이상해 옮김 / 시공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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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봄으로써, 마치 거울을 보듯, 거기서 우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볼 수만 있다면! 타인의 마음을 우리 자신의 마음처럼, 우리 자신의 마음보다 더 잘 읽을 수만 있다면! 애정은 얼마나 평온하겠는가! 사랑은 또 얼마나 순수하겠는가!" (p.53)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각자의 선택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세상에 내 사랑만큼 애틋하고 아름답고 때론 눈물 겨운 일도 없다. 드라마로 순간적인 대리 만족은 할 수 있을지언정 드라마가 끝나면 헛헛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 사랑은, 끝나도 마음 아프고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돌이켜봐도 뭔가 마음이 말캉 혹은 물컹거리는 것이 있다. 사람들마다 모두 저 마다의 사랑이 있으므로 사실 이 사랑은 반대라고 외치며 말려보겠다고 머리끄댕이를 잡아도 소용없다.

그걸 알면서도 제롬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정신차리라고 소리치고 싶다. 알리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같아선 물 한 바가지 시원하게 끼얹으며 뭐하는 짓이냐고 꾸짖고 싶다. 하지만 이 역시 타인의 사랑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 막장 드라마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두 사람의 다른 접근이며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이. 그리고 아마도 그런 이유로 <좁은 문>은 현재까지 고전으로 손꼽히며 많은 해석과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일 테다.

 

앙드레 지드의 개인적인 체험에 대해 알게 된다면, <좁은 문>이 등장인물 제롬에게서 작가를 보게 될 것이다. 숭고함에 대한 갈망으로 깊어진 인간과 문학에 대한 지드의 관심은 이 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알리사는 주님께 향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서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자신의 사랑, 기쁨, 그 모든 것이 덧없어 보인다. 그리고 제롬은 자신의 사랑을 완성시키는 좁은 문을 열기 위해 기다린다. 표면적으로는 알리사가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피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제롬 역시도 그렇다. 끊임없이 알리사를 갈구하지만, 그는 자신의 덕양을 쌓아가는 것을 포기하면서 그녀를 손에 넣고 싶지는 않아한다. 그는 그녀가 없이도 그녀 생각만으로도 잘 살 수 있다. '기다리는 것' '멀리서 보고 좋은 것'이 그에겐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알리사와 제롬의 이 상반된 감정의 충돌을 보며 답답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계속 지켜보게 되는 것은 우리도 하나를 위해 하나를 포기하는 삶을 끊임없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편으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숭고하게 삶을 마감한 것처럼, 한편으론 자신과 제롬의 삶을 망쳐버린 것처럼 엘리사가 보이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돌아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처럼 선택의 문제에 따라 그리고 시각의 문제에 따라 모든 삶은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다.

 

앙드레 지드라는 작가가 하나의 인물로 다가온다. 내가 그 시절, 그를 알았다면 그리고 그가 제롬과 정말 비슷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를 한심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엔, 이런 작품을 남겨놓은 그에게 고마워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를, 그의 작품을 찬양하지 않았을까. 그 두 상반된 모습이 지드를 향한, 그리고 이 작품을 향한 나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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