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가 뜬다 - 제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권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올해의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무중력 증후군>을 읽으며 내 책장 속에 오래 잠자고 있던 한 권의 책에 눈이 갔다. 2년 전, 동일 상을 수상한 권리의 <싸이코가 뜬다>가 바로 그 책이었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방민호씨의 비평집 <행인의 독법>을 통해서였다. 그 비평집을 조금 자세히 읽어보고자 그 책 안에 쓰여진 책들을 한 권씩 읽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왠지 이 책에만큼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제목 때문에 조금은 거칠고 가벼울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을까. 책을 다 읽고 <행인의 독법>을 읽으며 방민호씨 역시 나처럼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쉽게 만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이 꽤 괜찮은 책임을 느꼈다는 것도 우리가 함께 느낀 감정이었다.

 

     싸이코. 그것은 혼란의 단어이다. 타인과 공존하지 못하고 뭔가 낯선 세계를 가지고 있는 타아를 우린 그렇게 부른다. 그리고 이 책 역시 싸이코 만큼이나 혼란스럽고 파격적이다. 사회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누군가처럼 이 책은 독자와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한다. 아니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음에도 거부하는 것이 분명하다. 작가는 자신의 지적인 에너지를 낯설고도 탁월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후 혼란스러워지고 당황스럽지만 쓸쓸하고도 답답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책과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에서 온 허무함이 아니라 이 책이 보여주는 세상이 우리의 현실이며, 그것이 무력하고 한결같기 때문이다.

     한국의 룰을 벗어나 기존의 대화가 통용되지 않는 낯선 곳으로 향했지만 결국은 그 곳도 낯익고도 낯선 혐오스러운 곳일 뿐이다. 그 낯선 곳 역시 인간을 구속하고 획일화하며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은 어디에서나 선택을 강요받는다. 같아지거나 싸이코가 되거나. 그 속에서 당신이 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평범'으로의 길이다. 하지만 그 평범 속에서 사실은 누구나 싸이코가 된다. 어찌보면 평범을 택하는 그 자체가 광적인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주인공은 마침내 자신의 말을 현실로 만든다. 모든 것으로 부터의 해방, 그것은 '자살'이다.

 

     책을 읽고 나서 서둘러 작가 정보를 찾아보았다. 수만의 사람들이 유영하고 있는 인터넷 세계에 접속 해 그녀의 이름을 친다. 다행히도 그녀는 살아서 또 다른 책을 냈다. 어쩌면 이 당찬 작가가 자신의 책을 'swan song'☆ 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던 듯 하다. 하지만 작가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그의 숨을 잡아 놓은 것은 창작에 대한 욕망일까. 그렇다면 그녀가 좀 더 그녀만의 작품을 많이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분명히 권리는 개인적인 의식의 흐름을 세계적인 문제로까지 확장시킬 줄 아는, 지금껏 우리 문학에서 봐왔던 흐름과는 조금 색다른 면을 지닌 작가이다. 그런 그녀를 싸이코라고 부른다고 해도 나쁘진 않다. 이 책에서 그녀의 분신 오난이는 사이코(책 속 또 다른 등장인물)이고 싸이코이다.

 

     ☆ 그녀의 작품을 읽는다면, 이 별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백조는 죽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래를 부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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