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거타임
오가와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각자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사는 청춘들의 이야기..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미셸 투르니에의 <뒷모습>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에두아르 부바라는 사진 작가가 찍은 각종 뒷모습 사진들에 투르니에가 글을 쓴 책인데, 사람의 뒷모습에서부터 거리의 뒷모습까지 각종 뒷모습들이 많은 이야기들을 던진다. 그 책에 이런 말이 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그 귀절을 읽고 한 며칠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옛날 사랑하던 그와 전화기 너머의 뒷모습 보이기 싫어 서로 먼저 끊으라며 미적거리기를 되풀이하던 늘 달콤하기만 하던 연애 시절, 그리고 언제인가부터 불쑥 차디찬 뒷모습을 보이던 그를 애써 담담하게 혹은 전혀 모른 척 하던 그가 떠날 준비를 하던 쓰디 쓰던 연애의 종말기.. 그 때 너무나 힘이 들던 그러나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눈 깜짝할 사이에 녹아버린 내 청춘이 생각이 나 미열이 있는 감기 환자처럼 뒤척이며 며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책 <슈거타임>을 읽고 나서도 그러한 과정을 되풀이 해야 했다.

 거짓말 하지 않는 뒷모습.. 이별을 준비하는 남자 친구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도 어쩌지 못하는 주인공 가오루. 그녀는 3주일 전부터 달콤한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청춘의 마지막은 결코 달콤하진 않았다. 매일 원인을 알 수 없는 상실감에 엄청난 식욕을 발동하여 많은 것들을 먹어 제끼고, 그것들을 하나 하나 일기에 작성을 하지만 그녀의 청춘의 가을은 설탕과자처럼 부서지기 쉽고, 달콤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녹아버리기 쉽상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슈거타임>인 것이다. 달콤함 이면에 손에 꽉 쥐어버리면 녹기 쉽상에 찐득함에 찜찜함을 안길 수 있는 그 것..청춘!!

 다른 여자와 유학을 가겠다고 하는 남자친구. 그 남자친구의 뒷모습을 부여잡고 내 청춘이 녹아 내릴까 미열을 동반한 감기 환자마냥 아파하는 가오루.. 참 씁쓸하고 쓸쓸했지만 또 동시에 잔잔하게 반짝여서 그녀를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동시에 그 옛날 그이의 변해가는 뒷모습에 아파하던 어린 나도 안아주고 싶었다.

 설탕과자처럼 부서지기 쉬운, 독점하면 가슴 아픈, 달콤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녹아 버리는 청춘! 하나의 계절이 끝나면 조금 더 어른이 된 자신이 그곳에 존재하듯, 은은하고 쓸쓸한 감동이 마음속에 자리잡는 이야기...

(요말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책 뒷날개에 적혀 있는 말이다. 여시깽이같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 잘도 표현해 내었다.)

 나는 아직 설탕과자처럼 부서지기 쉽고,독점하면 가슴 아픈, 달콤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녹아 버릴 듯한 시간을 살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끊임없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청춘이라 믿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은은하고 쓸쓸한 그러면서도 잔잔히 반짝이는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좋아하는 걸까?

 뱀다리 하나 더 붙이자면 작가 오가와 요코가 읽은 사람마다 좋은 평을 내리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그 작가란다. 이 좋은 느낌 그대로 고스란히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사뿐사뿐 살랑거리게 만든 괜찮았던 책읽기의 시간 <슈거타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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