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메이트'-영혼의 동반자
흔히들 이 단어를 남녀 관계에 많이 쓰곤 하나 나는 '소울 메이트'가 꼭 그런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영혼이 통하고 뜻이 통하는 데 이성관계니 나이니 이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가지 연유로 제스와 할아버지가 서로에게 소울 메이트라고 생각했고 지난해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오는 해에 여섯살이 되는 큰 조카의 관계를 많이 떠올리며 읽었다.
까다롭고 엄하기로 유명하셨던 아버지는 당신의 첫 손자가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 조금 섭섭해 하시었으나 곧 그 손녀와 죽이 잘 맞아 수십년을 아버지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을 놀래키곤 하시었다.어찌나 손녀를 이뻐하시었는지 독한 항암 주사와 진통제로 쓰인 모르핀의 여파로 섬망이라는 치매가 오셔서 기억을 놓으셨을 때도 그 손녀만은 어찌나 이뻐하셨는지 주위에서 참 짠해 했었다.그 손녀가 이제 여섯 살이 되는데 아직도 어렴풋이 할아버지를 기억하는지 지난 추석에 가족 사진을 보더니 '저기 사진 속 사람 중에 부산 할아버지만 안 계시네..내가 조금 더 호 해 드렸으면 하늘나라 안 가셨을 수도 있었는데..'라며 듣던 이들 눈물을 훔치게 했었다.한갓진 오후에 집안 사람들 낮잠 잘 때 아버지와 내 큰 조카 둘이서 아무말 없이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마냥 그렇게 오도카니 앉아 있는 모습을 많이 보았던지라 짠한 마음이 더하였었다.
<리버 보이>를 읽으며 그 한갓진 오후에 내가 보았던 내 조카와 아버지의 뒷모습이 자꾸 떠올랐었다.조카가 커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다며 아마 내 아버지도 책 속 할아버지가 제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손녀에게 리버 보이를 만나게 해 주려 노력했었겠지? 책 속 할아버지와 제스가 그랬듯 내 아버지와 조카도 소울 메이트였으니까 리버보이를 통해 손녀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내 주고 싶어 하셨을 것이다.
책 속 제스가 리버 보이를 찾아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록 나의 기억도 1년 전, 2년 전 내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또 제스가 강을 헤엄쳐 내려올 수록 내 안 깊숙한 곳에 고여 있던 눈물들도 더 이상 고이고 고여 곪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어디에선가 흘러내려 정화되어지는 것을 느낀다.그것으로 성장 소설이라는 이 책의 할 일을 충분히 한 것이리라. 성장 소설이라는 것이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소설 속 주인공이 성장하는 것도 있겠지만 책을 덮을 즈음엔 읽는이의 생각도 같이 성장하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분명 많이 아프고 힘든 일이다.나 역시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요즘도 가끔 많은 눈물을 흘리고 길을 가다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보고 무의식 중에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그런 날 밤이면 베게가 흥건히 젖곤 한다.아직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담담하기 일러 그런 것일것이다.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제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 말했던 그랬던 것처럼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 흘려 두어야 마음에 고이는 것이 없음을 알기에, 몇 번의 눈물 후에 나와 나의 가족도 죽음 앞에 담담하게 슬퍼할 수 있을 것도 알기에..
10년쯤 지나 내 조카가 제스의 나이 즈음 되었을 때 '너의 어린 시절 너에게 영혼의 동반자가 있었으니 그 분이 더 살아계셨으면 아마 너에게 책 속 할아버지처럼 리버 보이를 만나게 해 주려 노력하셨을 것이야'라며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그 때가 되어도 내 조카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러리라 믿는다.그들은 정말 영혼의 동반자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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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환의 책 읽는 아침 07,12월13일 선정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