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천년 만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고 계속 얘기한다.
아마 그가 만들어낸 리심이 사람들의 기억에 천년 만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았음 하는 맘이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의 리심은 그리 오래 기억되지 않을 듯하다.

 신경숙씨의 <리진>을 먼저 읽었기에,그것도 너무나 감동적으로 잘 읽었기에 자꾸 비교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처음에 <리심>을 잡았을 땐 <리진>과 조목조목 비교가 되면서 '아 남자가 쓴 글이라 그런가보다'했다.그러나 책이 중권을 넘어 하권에 이르렀을 때 알았다. 작가가 남자이기 때문에 리심의 감성,리심의 고뇌가 잘 담겨지지 않은게 아니라 작가의 역량 자체가 이것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김탁환씨 스스로 책 상,중권에 리심의 여행기로 채운 것이 모험이었다 한다.회고나 감상으로 이 여인의 타국살이를 얼버무리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용납하지 않았다고..뭐 작가적 양심까지 운운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이런 정도의 글을 쓸거면 작가적 양심은 버려줘도 괜찮았다.그놈의 작가적 양심 살리려다 상,하권의 리심의 여행기는 기나긴 사족이 되어버렸다.

 <리진>을 읽을 땐 그녀의 아픔에 동화되어 그녀를 조금이라도 붇잡고 싶어 책이 끝나지 않기를 바랬다.동시에 그녀의 불행이 너무 맘이 아파 빨리 책이 끝나기도 바랬다. 베스트셀러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국문학이 죽었다는 이 시대에 <리진>이 베스트셀러인 것은 신경숙의 브랜드네임 때문이 아니라 독자들이 <리진>에 반했기 때문이다.그만큼 글이 좋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같은 여인을 다룬 김탁환씨의 <리심>에는 뭐가 남았나?
읽는 내내 책이 빨리 끝났음 하는 맘뿐이었다.이미 잡은 책 중도에 포기하긴 싫고 '그래 이 작가가 역사소설을 얼마나 많이 썼는데 설마 끝까지 이렇겠어?' 이런 마음으로 책 상,중,하권을 지났다.

 발로 뛰는 역사소설가를 자칭하며 은근히 신경숙씨를 꼬았던 작가(나와 현숙 여사는 작가 후기에 그 대목이 신경숙씨를 일컷는 것이라 제멋대로 해석중이다.ㅎ) 리심을 쓰기 위해 많이 조사하고 많이 다녀본 것은 알겠다.(신경숙씨라고 그만큼 조사 안했겠냐만은..)그러나 작가가 다닌 곳을 그렇게 억지로 다 구겨 써낼 필요는 없다.

 <리진>으로 내가 사랑했던 여인,내겐 그리움 같았던 여인이 <리심>으로 이런 식으로 변질되는가 싶어 분통이 터진다.책을 덮고 알라딘에 사볼까 말까 담아두었던 <리심>을 삭제했다.김탁환씨의 <불멸의 이순신>도 삭제했다.(불멸의 이순신은 장장 8권이다.이건 또 얼마나 늘어진단 말이냐구..) 빌려서 읽어보긴 해도 소장을 해가면서 읽기엔 시간과 돈이 아깝게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역사소설을 쓰실 거면..작가님 그냥 지금처럼 신문에 칼럼만 쓰시고 이 나라 컨텐츠 개발을 위해 카이스트에서 계속 스토리텔링 가르치는 일만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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