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의 비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추지나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베 미유키의 장편도 좋지만 단편이 훨씬 좋았다.
경쾌한 스토리의 흐름 속에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사유가 번쩍이며
시선을 멈춰 세운다. 
원래 단편은 그래, 라고 말하기엔 많이 아쉬운 것이, 
작가의 단편이 그 누구의 이야기보다 산뜻하고 명쾌하며
아름다웠던 것이다.  

모든 단편이 좋았지만, 딱 하나의 단상을 짚자면,
안녕 기리하라씨, 의 할머니.
내게도 할머니가 있었다.
무척 건강하고 활달하며 목청이 청청한 할머니였다.
한데 할머니는 손자손녀들이 커가면서 점점 멀어져갔다.
같은 집 안에 살면서도 할머니와 오손도손 얘기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할머니는 밖으로 돌아다니는 식구들과 함께 사는 이유로
식구들과 얘기하기보다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계시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족 구성원 누구든 외로울 수 있다.
하지만 할머니는 늙어가는 시간 속에서
그 외로움의 두께가 훨씬 두꺼웠을 것이다.
안녕 기리하라씨, 에서는 오래 전 나의 할머니가 있었다.
점점 귀 어두워지고 눈 깜깜해지지만
기억과 생각은 날이 갈수록 또렷해지고
외로움은 휘장처럼 둘러지는 시간 속의 할머니.
이제 와서야 그 모습이 그리 나와 다르지 않은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흐르는 것이므로.  

미야베 미유키의 아름다운 단편은 솔직히 의외였다.
사건을 파헤치면 어김없이 나오는 추악한 사람을 거침없이 다루던 작가라는
선입견이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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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려준 책들 중에 이 책이 분명 있지만 그건 양장본이었다.
아기가 보기에는 제법 큼직한 보드북으로
새로 나온 걸 보고 맨 처음 골랐다.
쿵 떨어진 사과를 맛깔스런 의성어로 먹어치운 이야기는,
아기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걸. 

사과가 쿵, 처럼 꼭 사야 할 것처럼 생각되는 책.
열두 띠를 알려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동물에 애정을 보이는 그맘때 아기에게
재미나게 읽어주었던 추억을 생각하면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새로 나왔나 보다. 한데 너무 귀여운 말, 잘잘잘, 에
앞뒤 볼 것도 없겠다 생각되었다. 
물론 우리가 아는 잘잘잘 전래동요와는 조금 다른 글이지만
그래도 흥얼거리며 읽어주기엔 부족함이 없겠다. 

어쩜 이렇게 귀여운 책이 나왔나, 감탄스러웠다.
공처럼 모난 데 하나 없이 동글동글한 아기와
뒹굴거리며 놀기엔 정말 좋겠다. 



아기에게도 위로가 필요한가 보다, 뜬금없이 이 책을 보고 생각했다.
내가 아기를 키울 땐 옆집 아기가 돌 전에 말하는 게 부러웠고,
금세 걷고 기저귀 떼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다 쓸데없는 생각이란 건 그때도 모르지 않았건만, 그랬다.
그런 점에선 이 책이 아직 어린아기를 둔 엄마를 위로해주는 건 분명하겠지.
다 괜찮다. 아기가 활짝 웃을 수 있다면. 
봄이가 온 가족의 사랑을 모아내고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거면 모든 게 만족스러운 것이다. 
괜찮아, 의 작가가 만든 또 다른 책.
괜찮아, 가 썩 괜찮았다면,
나도나도, 도 물론이다.
아쉬운 건, 두 책 모두 보드북이 없다는 점.  


달님 안녕, 은 지금 초등학생이 된 조카도 아기 적에 무척 좋아했다. 
하야시 아키코의 네 권은 모두 귀엽고 예쁘다.
조금 오래 된 그림 같고 이게 뭐? 하고 어른은 의아하게 보는 책이지만
이 책 밀쳐두는 아기는 별로 못 봤다.
모두 보드북이라 물고 빨아가며 열심히 봐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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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파 해법 수학 5-1 - 2011
최용준 외 지음 / 천재교육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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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 전에 교내 수학경시대회가 있었다.
그동안 아이는 혼자 수학을 공부해왔다.
선행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고, 여름방학 때 2학기를 조금 준비한 게 다였다.
그래도 학기 중에 문제집을 난이도를 달리 해서 세 권을 꾸준히 풀어
나름대로 문제해결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학경시대회를 보고 와서 하는 말은 이랬다. 
나, 선행을 좀 해야 할까봐. 
아이가 선행을 어디까지 생각하고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제 스스로 필요성을 느낀다고 하는 말이라 나도 곰곰이 생각해봤다.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 문제 수준을 풀어본 건,
작년 겨울방학 때 영재교육원 문제집 두 권이 다였다.
아이가 선행을 굳이 얘기한 건, 문제해결력이 자기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는 깊이 있는 선행은 심화도 아우른다는 말을 했다.
무조건 앞으로 나가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앞서 나간 진도는 심화의 문제를 조금 더 쉽게
풀어낼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조금 더 일찍 한 학년 수학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선택하게 된, 5학년 첫 문제집이다.
혼자서 공부하기에 적당하다.
문제수는 그동안 꾸준히 써왔던 센수학과 비슷한 양이다.
문제의 난이도도 골고루 배치된 것도 비슷하다.
수학 선생님을 하는 지인이 작년 말쯤 이 문제집이 혼자 공부하기 좋다며 추천해주었다.
아이도 혼자 진행해야 하는 문제집이라 나름대로 애착을 가지고 선택하는 편인데
꽤 마음에 들어했다.  

만족스러운 공부는 결과 이전에 과정에 있다.
스스로 문제집을 펼쳐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아이의 시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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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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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이 무겁고 삐걱거리는 겨울이라 한의원에 갔다.
엄청 대기시간 긴 곳이라 이 책을 들고서 첫장부터 읽다가 
내 이름 부르는 소리에 서둘러 들어가느라 뚝 끊었다.
그런 류의 뚝 뚝 끊는 일을 몇 차례 겪다가 다시 소설을 들었는데
앞부분 이야이가 하도 뒤엉켜서 누가 그랬다는 거지, 하고 혼자 헤맸다. 
그러면서 마르케스의 <백년간의 고독>처럼 이리저리 누구의 얘긴지도 모르고
헤맬까봐 조금 걱정이 됐다.  

한데 기우였다. 
식구들의 이야기에 한번 몰입이 되고 나니
아, 삼촌이 그랬지, 고모가 그랬어, 할머니는, 또 외할머니는,
하고 정리가 되었다. 
삼촌이니 고모니 하는 이름 없는 호칭도 적응이 되었다.
소설 한 권에 뭐 이리 적응씩이나 하나, 싶었던 마음도 없어지고,
나는 작지만 소중하고 어리둥절하지만 나름 영리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동화되었다.  

하긴 이 작가의 단편도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물고, 돌돌 말아진다.
그래서 단편을 읽어도 돌돌 말려진 이야기를 쭉 펴내면
적어도 중편은 될 거다, 하고 혼자 이 작가의 특징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을 생각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잘 알고 있나, 의문스럽다.
지금 살아계신 엄마도 마찬가지. 
그러면서도 엄마의 삶을 잘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제 만나고 온 고목 같은 피부가 되어버린 시어머니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은 마찬가지.
특히나 시어머니는 딸에게는 아니나, 내게는 어떤 유년을 보냈는지,
굳이 얘기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도 나는 흘려들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은 오롯이 소중한 것, 유일한 것, 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누구 하나 온전히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지금 금이야 옥이야 기르는 아이도,
사실은 날 자세히 모를 거야, 아니, 하나도 모를지 모른다, 는
생각에 서글퍼진다.  

이 작가는 다만 허허 소리나 내는 할아버지에게도 이야기를 넣었으며,
하다못해 스쳐지나가는 편의점 직원에게도,
아니, 물 건너 만난 어느 후미진 곳에 사는 인생에게도,
나와 닮은 꼴인 인생을 넣었다.
하긴 모든 생명 있는 것에는 인생이 있다. 
그렇게 보면, 가을에 산 상추에서 만나 우리 집 창틀에서 고치를 만들어
푹 자는지 숨을 거뒀는지 알 수 없는 애벌레도, 이야기는 있다.
그 많은 이야기가 고치의 실처럼 자아져서 내 주위가 만들어진다. 
조금도 허투루 내치거나 잊어도 되는 맘놓고 미워해도 되는 삶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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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그림책 4
다비드 칼리 지음, 세르주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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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네!
한데 실제로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해가 되었고,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인간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잊혀졌고,
또 아무 감정 없이 되었다. 그걸 용서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그림책에서는 적이 곧 나와 똑같은 존재란 걸 일러준다.
나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으로, 전혀 다르게 존재하며, 심하게는
같은 인간이 아닌 개체 정도로 이해되는 적, 이
실은 나 같은 사람이며, 심지어 나라고도 말한다.
그러니까 적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양산해낸 것일 수 있다.  

앞뒤 상황 없이, 걔들 왜 그런 거야, 라고 물었지만
이유는 분명 있다.
그걸 분석하고 따지자는 말이 아니라,
걔들도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으며,
나도 걔들과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다.  

저쪽에서 치고 나왔다고 해서 따끔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면 안 된다.
왜 저쪽에서 치고 나왔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응징이 응징을 낳게 되어 결국 어리석은 참호에서
눈 어두운 두더지처럼 상상의 적을 키우게 된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보는 그림책이라지만,
그래서 무척 쉬운 이야기지만,
아이가 적, 이라는 개념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오히려 어른인 내가 그 개념을 깊이 생각하며 우리의 기이한 모순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하지만 이처럼 깊이있는 성찰을 수월하게 풀리는 매듭처럼 명쾌하게 하는
그림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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