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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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이 무겁고 삐걱거리는 겨울이라 한의원에 갔다.
엄청 대기시간 긴 곳이라 이 책을 들고서 첫장부터 읽다가 
내 이름 부르는 소리에 서둘러 들어가느라 뚝 끊었다.
그런 류의 뚝 뚝 끊는 일을 몇 차례 겪다가 다시 소설을 들었는데
앞부분 이야이가 하도 뒤엉켜서 누가 그랬다는 거지, 하고 혼자 헤맸다. 
그러면서 마르케스의 <백년간의 고독>처럼 이리저리 누구의 얘긴지도 모르고
헤맬까봐 조금 걱정이 됐다.  

한데 기우였다. 
식구들의 이야기에 한번 몰입이 되고 나니
아, 삼촌이 그랬지, 고모가 그랬어, 할머니는, 또 외할머니는,
하고 정리가 되었다. 
삼촌이니 고모니 하는 이름 없는 호칭도 적응이 되었다.
소설 한 권에 뭐 이리 적응씩이나 하나, 싶었던 마음도 없어지고,
나는 작지만 소중하고 어리둥절하지만 나름 영리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동화되었다.  

하긴 이 작가의 단편도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물고, 돌돌 말아진다.
그래서 단편을 읽어도 돌돌 말려진 이야기를 쭉 펴내면
적어도 중편은 될 거다, 하고 혼자 이 작가의 특징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을 생각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잘 알고 있나, 의문스럽다.
지금 살아계신 엄마도 마찬가지. 
그러면서도 엄마의 삶을 잘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제 만나고 온 고목 같은 피부가 되어버린 시어머니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은 마찬가지.
특히나 시어머니는 딸에게는 아니나, 내게는 어떤 유년을 보냈는지,
굳이 얘기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도 나는 흘려들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은 오롯이 소중한 것, 유일한 것, 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누구 하나 온전히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지금 금이야 옥이야 기르는 아이도,
사실은 날 자세히 모를 거야, 아니, 하나도 모를지 모른다, 는
생각에 서글퍼진다.  

이 작가는 다만 허허 소리나 내는 할아버지에게도 이야기를 넣었으며,
하다못해 스쳐지나가는 편의점 직원에게도,
아니, 물 건너 만난 어느 후미진 곳에 사는 인생에게도,
나와 닮은 꼴인 인생을 넣었다.
하긴 모든 생명 있는 것에는 인생이 있다. 
그렇게 보면, 가을에 산 상추에서 만나 우리 집 창틀에서 고치를 만들어
푹 자는지 숨을 거뒀는지 알 수 없는 애벌레도, 이야기는 있다.
그 많은 이야기가 고치의 실처럼 자아져서 내 주위가 만들어진다. 
조금도 허투루 내치거나 잊어도 되는 맘놓고 미워해도 되는 삶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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