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들을 보면서 뭔가 시원한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얼마 전 성당 아이들과 다육이 테라이움을 만들어 나눔제를 했다.
작은 다육이를 유리용기나 토분에 아담하게 심어 저렴하게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기부하는 걸로 성탄제를 대신한 것인데,
꽃시장을 들락거리면서 준비하는 과정이 무척 난감했다.
이름을 모르는 다육이는 인터넷을 뒤져 찾아보려는데
당최 실물을 식별하기 어려웠던 것.
마찬가지로 식물이 시름거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도통 그 이유를 알아낼 수가 없다.
누런 잎이 보이면 뭐? 하고 찾아보지만
그건 무척 일반적인 이론이라서
더 구체적인 사안, 예를 들어 개운죽에 흰줄무늬가 죽죽 생기는 현상,
혹은 아데니움의 잎끝이 갈변되며 말라가는 건
책의 어떤 대목에서 그 해당 현상을 찾아낸담.
우리 집에서 정말 꼼짝도 않고 일 년을 버틴 식물들이 있다.
하나는 팔손이, 또 하나는 녹보수.
팔손이는 손가락이 여덟이어야 하는데 우리 집에 올 때부터 다섯 손가락밖에 없었다.
게다가 녹보수는 정말이지 꿈쩍도 않고 그렇다고 시드는 것도 아니고
살았나 죽었나 물어보고 싶을 지경.
하도 답답해서 어느 날 둘을 나란히 놓고 말을 걸었다.
너희들 뭐~ 하는 거니?
뉘앙스로 굳이 그 행간을 말하자면,
대체 왜 이래? 이 엄동설한에 베란다로 확 쫓겨나고 싶어?
이쯤되는 노여움이 있었던 거다.
한데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나 깜짝 놀랐다.
둘 다 드디어 꼼짝거렸던 거다.
연둣빛이 생생한 팔손이의 손과 길다란 녹보수의 움이
꼼지락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매일 들여다보며 응원했다.
아니, 넌 다섯손이가 아니라 칠손이네?
넌 완전히 기지개를 켜는구나?
그러면서 팔손이 공부까지 했다.
난 우리 집에 있는 것이 팔손이가 아닌 다른 식물인가 보다 하며
잘못 샀나 하고 체념했는데, 알고 보니
팔손이는 다섯손이부터 구손이까지 그때그때 상황따라 다를 수 있었다.
그걸 알고 난 후에는 스스로 뿌듯해지며 그 이유까지 만들어냈다.
내가 손이 많아질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 거지? 하면서.
그 후에 이 책들을 다시 한가롭게 들여다보는데, 웬걸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예전과 달리 내용이 분명하게 다가오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한데 묘한 자신감으로 쓱쓱 페이지가 넘어갔다.
다시 말하면, 이제 정말 취미용 책이 된 것이다.
그렇지, 이런 내용을 공부하려들면 얼마나 힘든데, 하며
기분이 마냥 좋아졌다.
그러니까 이런 책들은 정말 식물의 속내를 알 수 없을 때는
보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이해는커녕 식별력조차 떨어지니까.
하여,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런 것.
식물을 숱하게 이해 못하고 내 손에서 장례치르면서 보낸 시간들이
이 책을 재미있게 하는 거라, 지금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