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깊은 그림책 4
다비드 칼리 지음, 세르주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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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네!
한데 실제로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해가 되었고,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인간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잊혀졌고,
또 아무 감정 없이 되었다. 그걸 용서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그림책에서는 적이 곧 나와 똑같은 존재란 걸 일러준다.
나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으로, 전혀 다르게 존재하며, 심하게는
같은 인간이 아닌 개체 정도로 이해되는 적, 이
실은 나 같은 사람이며, 심지어 나라고도 말한다.
그러니까 적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양산해낸 것일 수 있다.  

앞뒤 상황 없이, 걔들 왜 그런 거야, 라고 물었지만
이유는 분명 있다.
그걸 분석하고 따지자는 말이 아니라,
걔들도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으며,
나도 걔들과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다.  

저쪽에서 치고 나왔다고 해서 따끔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면 안 된다.
왜 저쪽에서 치고 나왔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응징이 응징을 낳게 되어 결국 어리석은 참호에서
눈 어두운 두더지처럼 상상의 적을 키우게 된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보는 그림책이라지만,
그래서 무척 쉬운 이야기지만,
아이가 적, 이라는 개념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오히려 어른인 내가 그 개념을 깊이 생각하며 우리의 기이한 모순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하지만 이처럼 깊이있는 성찰을 수월하게 풀리는 매듭처럼 명쾌하게 하는
그림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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